(치유의 샘물)
8월 19일
마 사 비엘 동굴 새벽 6시 미사를 참례했다. 성모님이 156년 전 발현하신 그 동굴의 바위를 만지며 벨라뎃다에게 오신 성모님의 모습, 마음을 생각해 본다.
치유의 샘물은 유리벽 같이 투명한 것으로 막아서 오염을 막고, 쉴 새 없이 바위틈에서 흐르는 물을 식수로 먹도록 파이프를 연결해 동굴 근처에 시설을 해놓고 , 또 저장해서 침수(물에 몸을 담그는)할 수 있는 시설도 근처에 해 놓았다.
*치유의 샘물: 성모님이 벨라뎃다에게 동굴의 밑을 파보라고 해서 파니 샘물이 나왔다. 그것을 먹거나 몸에 바른이가 치유되어, 전 세계적으로 치유를 받기 위해 많은 환자들이 와서 먹고, 바르고, 침수하는 물이다.
통 에는 받아가지 말라고 쓰여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큰 통들을 갖고 와 받아간다. 지금 생각하니 인근에서 장사하시는 분들이 성모 형상의 플라스틱통에 조금씩 물을 담으려고 받아가는 것 같다. 또한 순례자들도 각자의 물병에 담아 마시며 몸과 마음이 치유되기를 소망하는 듯하다.
나도 손으로 물을 받아 몇 번을 마셨다.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새롭게 태어나길 바라면서... 새벽 일찍 미사 참례를 시작으로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언덕을 올라 십자가의 길 기도를 하고 내려오며 우리 부부는 감격에 젖었다.
침수를 하기 위해 기다리는 줄이 이른 아침인데도 꽤 길었다. 여자 줄은 남자들 줄에 비해 거의 2배는 될 것처럼 보여서 나는 아예 침수는 포기하고 오후에 남편이 먼저 침수해 보고 나는 내일 새벽 미사하고 그때부터 자리 잡고 기다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새벽에는 그래도 사람들이 적겠지 하고. 남편도 4시간을 기다려 침수했다.
나는 기다리면서 휠체어에 환자들을 태우고 쉴 새 없이 다니는 봉사자들을 보았다. 청년만 있는 것이 아니라 꽤 나이 들어 보이는 노인부터 어린아이들까지 봉사자 옷을 입고 유쾌하게 휠체어를 밀고 끌고 있었다. 휠체어도 앞에서 끌 수 있고 뒤에서 밀 수 있게 특별히 만들어진 것이다.
모두 유쾌해 보여서 휠체어에 타고 계신 이곳의 노인환자와 한국에서 그저 병원 침대에 누워계신 노인환자가 비교되었다. 한국에도 이런 곳이 있으면 노인 환자들이 넓은 곳에서 신앙을 갖고 미사도 참례하고 여러 행사도 같이 하면 좋겠다 하는 부러움이 일었다.
피부색이 다른 여러 나라 사람들이 어색함 없이 마주 보고 미소 지으며 기도하고 봉사하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다. 그러나 한 가지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있었다. 초를 사서 촛불을 봉헌하는 봉헌 대가 있는데 너무도 굵고, 큰 초에 불을 붙여서 봉헌이 아닌 그냥 던져서 태우는 것 같은 모습은 문화적으로 충격이었다.
한국에서도 성당이나 절에 가면 촛불을 봉헌하는데 그때는 작은 초나 색깔 있는 조그만 컵 초를 깔끔하게 봉헌하고 기도한다. 그런데 이곳 성지는 지나치게 초를 태워서 꺼멓게 연기가 올라온다. 여러 나라에서 오다 보니 그런가 보다.
침수하고 나온 남편이 약간 흥분된 모습으로 상기되어 나왔다. 무슨 일이 있냐고 물으니 쑥스러운 듯 미소 띠며, 기도하면서 물에 들어갔는데 눈물이 막 쏟아졌다고 한다. 특별한 경험을 한걸 보니 나도 내일 아침에 꼭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부러운 마음을 갖고 숙소로 돌아와 쉬다가 저녁 6시에 다시 성지로 갔다. 9시에 있을 야간 묵주기도 행렬에 참여하기 위해서이다.
남아있던 먹거리를 싸 갖고 가서 대충 그것으로 저녁식사를 때우고 오랜만에 한가하게 벤치에 앉아 각국에서 온 사람들이 행렬을 준비하는 분주한 모습도 보고, 촛불도 2개 2유로에 무인판매대에서 샀다. 그사이 넉살 좋은 남편은 수녀님들이 봉사자들과 깃대를 잡고 계시자 얼른 가운데에 들어가 인사하면서 사진을 함께 찍었다.
드디어 행렬이 시작되었다. 루르드 성모성상을 여러 장정이 틀 위에 올려 어깨에 메고 출발을 하면 그 뒤를 나라 별로 국기를 든 기수와 순례자들이 따른다.
환자들을 태운 휠체어부터 노인, 청 장년, 어린이, 갓난아기를 팔에 안은 부부들까지 행렬의 뒤를 따르며 모두 촛불을 손에 들고 성가대의 묵주기도 선창을 따라 아베마리아를 합창했다. 광장을 가득 메운 긴 행렬의 불빛과 아베마리아를 부르며 뒤따르는 순례자들의 모습은 실로 장대한 광경이고 아름다웠다.
나도 그 대열에 들어가 걷고 싶었는데, 남편이 우리는 가운데 서서 길게 행렬하는 촛불행진을 보자며 연신 사진을 찍고 있었다. 나는 참여자가 되고 싶어 마음이 설레었는데, 할 수 없이 아쉬워하며 촛불 든 손을 흔들고 아베마리아를 따라 부르는 것으로 만족했다.
행렬은 장관이었고 10시까지 진행되어서 다리가 아팠지만 특별한 경험이었다. 이곳 사람들의 성모 신심이 대단하다는 것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