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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자상한 생장의 봉사자들

(영어 표현이 서투른 부부)

by 구슬 옥

8월 20일

대만 신자들 단체와 대만 신부님이 주관하시는 새벽 미사에 참석했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어 집중이 되지 않고 산만했다. 대만 신자들은 큰소리로 합창하며 미사에 참여했고 대단히 열정적이었다.


한국인 신부님과 한국인 단체 순례단이 없는 것이 아쉬웠다. 그래도 전 세계적으로 공통된 전례여서 끝까지 참례하며 기도할 수 있어서 좋았다.


어제 생각한 대로 다시 침수를 기다리러 갔다가 새벽부터 사람이 더 많아 그냥 포기하고 (애초에 침수를 하고자 하는 의지가 부족했다) 천천히 성지를 돌아보다 성모 성상 둘레에 많은 사람들이 꽃바구니, 꽃다발 등을 놓으며 묵상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우리도 꽃집에서 장미 한 송이씩을 사서 그 둘레에 놓으며 성모님께서 2달간의 순례 여정에 함께 해주시길 기도하고 아침을 먹으러 성지 근처 스낵바에 갔는데 뜻밖에 그곳에서 일하는 한국인을 만났다. 17년 전에 이곳 프랑스 인과 결혼하여 루르드에 정착하고 사신다고 했다. 용감한 한국 아줌마를 여기서 또 보니 기뻤다. 타국에서 비슷한 용모와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을 마주하면 첫 만남이라도 오래된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갑다. 맛있게 만들어 주신 오믈렛과 커피를 먹고, 동네 한 바퀴 산책하고, 숙소에 돌아와 배낭을 정리해 메고 성지에 다시 들어갔다.


언덕 아래 무염시태 성당을 바라보며 두 손 모아 기도하고 계신 성모상 앞에서 잠시 묵상하고 루르드 역을 향해 출발해 가다가 지하 대성당인 '성 비오 10세 대성당'에서 주교님 10여 분과 많은 신부님들이 함께 하시는 대미사에 참석하게 되었다.


내부는 장식이 없는 노출 콘크리트로 되어있고 물고기 모양처럼 설계가 되어있는 성당이다. 각국에서 온 순례자들과 치유받기 위해 온 환자들을 휠체어에 앞줄부터 앉히고,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과 미사가 시작되고 있어 기쁘게 참례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루르드 역으로 출발했다.

루르드 성지 지하 '성 비오 10세 대성당'의 주일 오전 미사

다행히 루르드 역 앞에서 재빠르게 만들어 주는 케밥도 사서 먹고 바욘행 기차를 타고, 다시 바욘에서 생장행 기차로 갈아타니 여기저기 배낭을 멘 산티아고 순례자들이 서로 웃으며 손을 흔든다. 벌써부터 동지 같은 느낌에 부엔 까미노를 외치게 된다.

'루르드 역에서 바욘행 기차를 기다리며'

오후 4시 무렵 순례자 사무실에 들러 산티아고 순례를 위한 나름대로 짜인 안내서를 받고, 생장에서 시작하는 순례자 도장 찍고, 배낭에 매고 걸을 하얀색 아기 손만 한 조가비도 사고, 내일 묵을 피레네 산맥 초입의 오리 손 알베르게 예약하고, 오늘 묵을 생장의 알베르게 도 소개받았다.

*알베르게는 순례길 마을에 있는 숙박소.


봉사자들이 열심히 영어로 설명해 주어 대충 알아듣지만 정확한 의사표현을 못하니 봉사자들이 걱정스러운 모습이다. 못 미더운지 조금 전에 굉장히 영어 잘하는 한국인이 왔었다고 같이 물어보면서 가란다 ㅋ ㅋ.


우리는 두 번째 순례 온 거라고 남편이 말하려는 것을 못하게 했다. 피레네를 정식으로 넘는 것은 처음이니까 설명을 자세히 듣는 것도 나쁘지 않고, 2년 전의 기억이 또 새로워 열심히 영어로 설명하는 인상 좋은 봉사자의 얘기를 si, si 하면서 들었다.


천천히 가라고 계속 강조하고 가파르니 조심하라고 여러 번 주의를 준다. 피레네 산을 넘는 동안 마을이 없어 물을 살 수 없으니 물을 충분히 준비해서 출발하라는 얘기를 지루하도록 강조했다. 그리고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우리에게 '부엔 까미노' 한다. 좋은 몫을 택 해 봉사하는 모습이 좋다. 유쾌하다.

*부엔 까미노-산티아고 까지 잘 걸으라는 순례길의 인사말


2015년 4월에는 볼 수 없었던 관광객들로 생장 골목이 북적였다. 주말이기도 하고 휴가철이기도 해서 그런 것 같다. 성곽 쪽을 한 바퀴 돌면서 생장 시내를 한눈에 바라보니 남프랑스 시골 마을이 참 아름답다. 저 멀리 내일 걸어가야 할 피레네 산맥이 보인다. 내일도 날씨가 맑고 좋아야 하는데.. 좋기를 기도한다.


점심에 먹다 남긴 케밥으로 저녁을 먹고 맥주 한잔에 샐러드 하나를 시켰다. 샐러드는 상추에 4쪽으로 자른 찐 계란에 토마토 2쪽이다. 이걸 보니 한국사람들이 먹거리는 참 잘 만든다는 생각이 든다. 솜씨도 있고 맛도 있게.


알베르게에 들어가 봉사자들이 준 까미노 스케줄을 보았다. 우리의 체력으로는 어려운 시간표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이것을 소화할 수도 있고 어쩌면 더 앞서서 완주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대략적인 스케줄이지 각자의 시간과 체력에 맞게 다치지 않고 기쁘게 걷는 것이 최고의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싶어 온 사람들이니 길을 걸으며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지면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번 길에서 우리는 어떤 경험을 하고 누구를 만나게 될지 설레는 가슴을 다독이며 잠을 청했다.

생장 피에 드 포트의 알베르게에서 배정받은 침대에 앉아 봉사자들이 준비해 준 까미노(생장에서 산티아고 콤 포스텔로 까지) 스케줄을 훑어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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