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롱 세스 바에스 알베르게 ))
8월 22일 20km
4시쯤 눈이 떠져 밖으로 나가보니 하늘이 별들로 가득하다. 몇 년 전 sanbol에서 보았던 별처럼 크기가 대단하고 빛난다. 우리 방 사람들은 아직도 꿈나라인데 우리는 2시간을 또 어떻게 기다리나. 그래도 밖에서 별을 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아침을 알베르게에서 묵은 사람들과 함께하고 해가 뜨는 걸 보면서 오리 손을 출발했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 배낭을 메고 오르막을 오르는 것도 힘든데 바람이 앞에서 불어오니 한걸음 내딛기가 만만치 않아 더 힘들다.
몇 년 전 큰아들이 혼자 여기 왔을 때 비바람 치는 피레네를 넘었다는 사실이 감사했다. 얼마나 힘들고 두려웠을지 느껴진다. 다행히 비는 없어서 바람에 맞서 한 걸음씩 옮기며 20km 정도를 해발 900m에서 1400m까지 오르막을 오르고 또 내려가야 한다는 것이 힘에 벅차다.
그래도 간간히 피레네 산맥의 아름다운 경치와, 함께 걷는 순례자들이 격려하며 외쳐주는 ' 부엔 까미노' 인사에 우리도 힘을 내어 답하며 용기를 낸다. 남편은 속도가 안 나는 나 때문에 상대적으로 더 힘들어하고, 나는 비염까지 겹쳐서 연신 콧물을 닦으며 오르막길을 오르는 게 불편하고 힘들었다.
길은 험하지 않고, 경치도 좋은데 알베르게에 오후 4시 정도 전에는 도착할 수 없을 것 같다. 천천히 가도 된다고 남편이 위로하고 때론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며, 그렇게 간신히 감사하며 피레네를 넘어 롱 세스 바에스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정상에서 내려오는 길에는 두 갈래의 노란 까미노 화살표가 있었다.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지 감을 잡을 수가 없어 잠시 망설이다가 남편이 이쪽 길이 맞을 것 같다고 선택한 길로 걸어갔다. 내려가는 길이 조금 가파르고 웬일로 다른 순례자들도 거의 보이지 않아 마음이 불안했다.
오히려 다른 쪽 길로 가는 외국 순례자에게 그 길이 아니라고 남편이 소리쳐도 그 사람은 못 들었는지 계속 우리와 다른 길로 내려갔다. 그런데 지금 보니 길을 잘못 선택한 것은 아무래도 우리인 것 같았다.
2년 전에 피레네 산맥을 넘을 때는 이 길이 아닌 발카 로스 마을을 지나는 우회도로를 선택했었다. 호젓한 오솔길과 가파른 오르막 그리고 아스팔트 도로와 농로를 지나며 소똥이 흥건한 진창길을 걷기도 하고, 차도를 건너기도 하면서 아름다운 발카 로스 마을의 알베르게에 짐을 풀었었다.
그리고 맛있는 와인을 곁들여 식사를 하면서 스위스의 작은 마을 같은 발카 로스 마을에서 기분 좋은 하루를 보냈었다. 다음날도 힘들긴 했지만 노란 화살표를 따라 아스팔트 도로를 건너고, 계곡을 지나 오르막 숲길을 걸어 피레네를 넘었었다.
오늘 우리는 그때 피레네를 내려가는 길에 있었던 여러 설치물도 보지 못해서 아마도 피레네 산맥 어딘가에서부터 길이 나뉜 모양이었다.
가도 가도 비슷한 풍경에, 알베르게도, 다른 순례자들도 보이지 않아 내심 겁이 나기도 했지만 긴 숲길을 내려가니 롱 세스 바에스 알베르게 건물과 성당 건물이 짠~하고 나왔다. 알고 보니 우리는 험하다는 일명 나폴레옹길인 울창한 숲길로 내려온 것 같다.
다행히 힘들게 잘 왔다는 듯 좋은 방(1층 침대만 있어서)을 배정해 줘서 편히 쉬게 되었다. 늦게 가면 침대가 없다고 다른 알베르게로 가라고 할까 봐 걱정했는데 이런 행운도 있다.
봄에 비해서 여름에 휴가기간에 걷는 유럽인들이 많아 괜찮은 알베르게는 일찍 마감이 되는데 다행히 이곳은 워낙 큰 시설이라 자리가 있었다. 그것도 1층 침대로.
오리 손 알베르게에서 저녁시간에 일어나 자기소개를 할 때 한국인으로 우리 말고 광주에서 오신 안나 씨 부부가 있었는데, 우리보다는 일찍 도착해서 천안의 성안 성당에서 5명이 함께 온 아줌마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천안 아줌마들은 아예 피레네를 택시를 타고 넘어왔다고, 일행 중에 나이 든 분이 있어서 빨리 넘지 못할 거 같아서 그랬다고 했다. 현명한 결정이었다고, 잘하셨다고 공감을 표시했다. 다치지 않고 순례하는 것이 중요하니까.
모두 유쾌하시고, 날마다 새롭게 걸어야 하는 길에 대한 호기심으로 들떠 있었다. 우리는 오랜만에 한국어로 듣고 대답하며 식사하고, 미사 참례해서 영성체 하고 신부님들의 강복도 받았다.
신부님 4분이 함께 산티아고 길을 걷는 순례자들의 각 나라를 호명하시며 길~게 강복을 주시고 기도해 주셨다. 감사한 하루다. 몸은 파스를 붙여야 할 정도로 힘들지만, 오늘은 화콜과 소화제까지 먹고 10시에 자동 소등되는 것에 맞춰서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