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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트리니다 데 Arre 수도원

(Korea의 자랑스러운 기업들)

by 구슬 옥

8월 24일 트리니다 데 아 레(Arre) 16.5km

12시가 넘어가니 뜨거운 태양이 살을 태우는 것 같다. 상대적으로 배낭은 가볍지만 뜨거운 햇빛이어서 빨리 마을이 보이길 바라며 내려오니 Arga강가의 Arre 마을이 보이고 다리를 건너면 바로 수도원 알베르게가 있다. 지난번에 이 마을을 지나갈 때 다음에 또 오게 된다면 이곳에서 하루를 머물고 싶다고 생각했던 곳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서 순례자 여권을 보여주니 알베르게 도장을 찍어준다. 알베르게 호스피탈 레들은 그 도장만 보면 전날 몇 km 떨어진 곳에서 이 순례자가 자고 오는지 아는 것 같다. 순례자는 한 알베르게에 하루만 묵을 수 있다. 마을에 대게 공립 알베르게는 하나만 있다. 더 머물고 싶다면 사립 알베르게에서 머물러야 한다.


이곳의 호스피탈 레는 우리가 Korea에서 왔다고 하니 반갑게 기아, 현대, 삼성, 엘지 등을 얘기한다. 나라보다 기업의 유명한 상표가 주는 이미지가 큰 거 같다. 자동차 잘 만드는 나라, 핸드폰, TV 잘 만드는 나라로 기억하는 거 같다. 성당 앞에 기아차가 주차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더 친근함을 느낀다.

성당을 통해 안쪽에 위치한 숙소로 우리를 안내하는 호스피탈 레는 내 배낭을 대신 짊어지고 들어가며 샤워실, 식당 등을 자세히 설명해 준다. 안쪽 큰 마당에 탁자와 의자 등이 있고 빨래해서 널면 금방 바삭바삭 마를 것 같은 빨랫줄도 소개해준다. 우리 부부만 잘 수 있도록 응접실 옆방을 줘서 편안하게 쉴 수 있었다.

'수도원 알베르게 우리 숙소'

오랜만에 슈퍼에서 돼지고기와 야채, 빠에야 재료를 사서 맛있게 만들어 먹고, 샤워하고, 빨래해서 널고, 그늘 아래에 있는 탁자에 앉아 차 한 잔으로 여유를 부린다. 아직 아무도 안 보인다. 우리가 첫 번째로 온 순례자인가 보다. 조금 있으면 순례자들로 왁자해질 수도원 알베르게의 자연스럽게 가꾸어진 정원 속의 고요를, 따스한 햇살을 마음껏 누려본다.

침대에 누워 쉬면서 내일의 일정을 짜다가 잠시 잠이 들었는데, 깨보니 호스피탈 레가 얘기한 저녁 성시간(성체강복)이 다되어 준비하고 나왔다. 알베르게를 나오면서 보니 늦게 도착한 순례자들로 주방이 부산하다.


수도원에서 성당으로 통하는 문을 열고 들어가니 제대 앞에서 나오는 빛 외에는 없고, 어두운 가운데 드문드문 앉아서 묵상하고 계시는 마을 신자들이 보였다. 꼭 필요한 몇 가지 외에는 없는, 소박함이 주는 풍요로움이 우리의 마음을 모아주어 묵상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성시간이 끝난 후 동네 산책을 하고 수도원으로 돌아오니 정원에 모두 둘러앉아 상그리아, 맥주 등을 마시며 오늘 숙박하는 이들과 신부님, 호스피탈 레 등이 모여서 얘기를 나누고 있어 함께 참석했다.

신부님이 우리에게 서로 돌아가면서 '왜 까미노를 걷는지' 얘기를 하라고 하셨다. 신부님은 영어를 잘 못하셔서 한 젊은 아가씨가 곁에서 통역을 해주고 있었다. 모두들 가족들이 함께 온 팀이 많았다.


나름대로 심각한, 혹은 절실한 사연을 갖고 걷는 사람들은 없었고, 그저 걷게 되어 , 히말라야 트래킹을 하고 나서 여기도 와야겠다고 생각해서 왔다는 가족도 있고, 형제간에, 남매간에, 자매 간에 특별한 경험을 하려고 걷는다는 얘기도 있었다.

수도원 정원에서 수도원 알베르게에 머무는 순례자들과 신부님이 함께하는 다과회

나이 많은 아빠가 10번째 산티아고 순례를 하신다고 해서 걱정된 딸이 함께 온 집도 있었다. 꼬레아 부부도 얘기하라고 해서 남편이 열심히 말했지만 목소리가 굵어서 발음이 잘 안 되었는지 정확히 알아듣지 못하는 거 같아 내가 다시 얘기해 보려다 그만두었다.


나도 왜 까미노를 걷는지, 내 자의에 의해서 온 게 아니라서 할 말이 없었고 남편 말을 못 알아듣는데 내 말 인들 잘 알아들을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우리 차례는 그냥 그렇게 지나고 신부님의 말씀이 있었는데 에스파니 어로 하시니 잘 모르겠다. 통역하는 아가씨의 말을 들으니 '신앙'에 대해 말씀하신 것 같다.


신앙회복, 꾸르실료 운동 등에 관해서 말씀하시고 까미노를 걸으면서 나의 신앙을 돌아보며 성찰하라는 말씀이 아니었나 미루어 짐작했다.

*꾸르실료 운동: 스페인에서 시작된 신앙회복 운동--지금은 대부분의 나라에서 실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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