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미노를 걷는 이유)
8월 27일 로르까(Rorca) 13km
작은 마을 로르까에 도착했다. 그동안 거의 비가 오지 않았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진다. 13km 정도 밖에는 걷지 않았지만 이번 산티아고 순례에서는 작은 마을에서 많이 묵기로 한터라 Bar를 겸하는 호세 알베르게에서 쉬기로 했다. 2층의 two bedroom으로 4유로씩 추가해서 12유로씩 24유로 결제하고 저녁식사 예약으로 1인당 11유로, 세탁과 건조비로 3유로.
이 작은 마을에는 공립 알베르게는 없는 것 같고 Bar를 겸한 사립 알베르게가 두 개 있었다. 우리는 운 좋게 바로 알베르게에 들어갈 수 있었지만 조금 늦게 도착한 강화성당 부부는 비를 맞으며 다음 마을로 한참을 더 걸어가야 했다. 빗길에 조심히 도착하기를 마음으로 빌어본다.
주인 호세는 친절하고 턱수염이 난 '안녕하세요' '맛있어요'를 말할 수 있는 젊은 주인이다. 부인도 친절하게 우리를 맞이해 주고 빨래 건조도 도와준다.
다행히 롱 세스 바에스에서 만난 젊은 신혼부부(1주년 되었다는) 수진 네도 함께 묵었다. 그들은 간단히 전자레인지에 음식을 데워 먹으면 된다고 저녁식사 예약을 하지 않아서 우리는 외국인 두 명과 함께 저녁을 먹게 되었다.
미국인 종교연구가라고 자신을 소개한 분이 우리 부부에게 까미노 를 걷는 이유를 물었다. 나는 Arre 마을에서 수도회 신부님이 왜 걷는 가를 물어볼 때 제대로 답을 못한 게 아쉬워 까미노를 걸으며 나름 이유를 생각했고 목표를 정했다.
그래서 주저하지 않고 ' 하늘에는 영광, 땅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축복을' 기도하기 위해서라고, 하느님께 감사와 영광을, 그리고 우리 가족의 축복을 기도하고 또한 세계 평화와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면서 걷는다 고 대답했다. 조금 거창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우리는 절실하게 느끼며 지향을 갖고 걸었다.
어설픈 영어식 표현을 이해했는지 그는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북한을 위해서도 기도하느냐'하는 질문을 했다. 나는 '물론이다. 북한에 사는 분들도 우리와 같은 민족이니 우리나라와 잘 소통하고 경제력도 회복되기를 바란다'라고 대답했다.
그는 다시 나에게 '북한의 김**이 서울을 불바다로 만든다고 하는데도 그러냐' 하는 질문을 던졌다. 나와 남편은 웃으며 '걱정하지 말라 한반도에서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라고 확신 있게 말하니 그는 '나도 트**가 마음에 들지 않지만 김**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짧은 영어 실력으로 많은 얘기를 할 수 없는 우리는 'Don't Worry'를 여러 번 강조했었다. 그는 대충 이해했는지 노트에 뭔가 기록했다.
함께하는 스웨덴 여자분은 좀 더 세부적으로 말했다. 신에 대해 생각하고(본인은 비 종교인),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한다고. 그리고 화장기 없는 모습으로, 옷도 후줄근한 모습에 배낭을 메고 걸으면서 '날 것'의 자신을 보여주고 또 다른 이들의 '날 것'을 본다고.
대충 그런 얘기 같았다. 유럽인들은 대부분 영어를 잘하는 편인데 그들에게도 영어가 외국어라 그런지 내가 듣기에는 미국인이 말하는 것보다 잘 들린다. 이분은 손자 사진도 핸드폰에서 보여주고, 끝까지 산티아고까지 완주할지는 생각 중이라고 했다.
미국인 남자분도 딸이 아기를 낳아서 잠깐 까미노를 벗어나 딸한테 갔다가, 다시 연결해서 산티아고까지 계속 걸을 예정이라고 했다.
식사 중에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나누는 게 외국인들, 특히 까미노를 걷는 사람들의 특성이다 보니 각자 영어를 공통어로 사용했다. 유럽인들은 대개 영어를 잘 구사했는데 나는 영어가 부족해 평소에 단어 공부와 문장 연습을 할 걸 그랬다고 아쉬운 후회를 했다. 한국인의 자존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