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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한국인들은 왜 여기에 오나요?

(궁금한 유럽인들)

by 구슬 옥

8월 28일 빌리 마요르 데 몬 하르딘(Villamayor de Monjardin) 18km

해발 450m 높이의 마을인 로르까에서 우비를 쓰기에는 작은 양의 비가 내려서 우리는 방수가 되는 잠바를 챙겨 입었다.


8월이래도 아침 이른 시간은 춥기 때문에 안에 반팔과 얇은 조끼를 입고 겉옷으로 톡톡한 질감의 방수 잠바를 챙겨 입고, 배낭에 걸으며 먹을 물과 간식을 챙기고 아침은 먹지 않고 기도하며 출발했다.


걸을 때 우리는 각자 조용히 속으로 묵상하고 기도하면서 걷는다. 걷다가 아름다운 경치에는 누가 먼저 일 것 없이 감탄사를 날리며 서로 격려하고,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 지나는 다른 순례자들과 눈이 마주치면 '올라' '부엔 까미노'를 외친다. 그러다가 서로 통성명이라도 할라치면 유럽인들은 한결 같이 '한국인들은 왜 이렇게 여기에 많이 오나요?' 하고 궁금해하며 묻는다.


나는 '어! 나도 한국인들 별로 못 만났는데 어디서 그렇게 많이 봤어요?' 하고 물으면 '어제도 한국인들 많이 보았어요. 너무 많아요.' 하면서 궁금한 얼굴을 한다. 그러면서 한국에서 여기 오려면 비행기 몇 시간 타고 오느냐고 묻고 그렇게 먼 곳에서 왜 여기 왔느냐 한다.


참 난감한 질문이다. 우리는 '한국에는 크리스천이 많아서 그래요. 우리는 성지를 순례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하며 웃어준다. 그래도 머리를 갸우뚱하며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들이다.

우리는 유럽인들이 비슷비슷하게 생겨서 누가 프랑스인이고 누가 독일인 인지 겉만 봐서는 모르는데 외국인들은 오히려 한국인을 잘 알아본다.


아직까지 중국인들은 까미노에 거의 없고 간혹 한국인처럼 보여서 우리말로 물어보면 대만이나 홍콩에서 왔다고 하면서 자기들은 중국인이 아니고 대만인, 홍콩인이라고 정정해서 알려준다.


요즘 김*은이 트*프와 격한 말로 대항하니 세계인들이 모두 아는 듯하다. 우리 보고 어디서 왔냐고 해서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웃으며 North Korea? 하고 다시 묻는다. 알면서 일부러.


우리가 No! No! 하면서 다시 한국이라고 말하는 게 재미있는가 보다. 그들 중에 어떤 이는 '김*은이 서울을 불바다로 만든다고 하는데 너네 전쟁 날 수도 있는데 여기를 왜 왔느냐'라고 물어보는 순진한 이들도 있었다.

세계인이 걷는 산티아고 길에서 한국은 참 유명하고 한국인들은 더 유명한 걸 다시 느낀다. 그들은 한국에서 생산한 전자제품을 사용하고 있고 한국에서 생산하는 자동차를 알고 있고 삼성이나 엘지의 스마트폰을 알고 있다.


더구나 우리가 매일 머물며 잠을 자는 알베르게에는 대부분 삼성 이나 엘지 TV가 있다. 젊은 한국 남녀 학생들이나 우리 같은 장년층들이 많이 오는 게 그들에게는 의문인 것 같다. 자신들은 가보지 못한 한국이란 먼 곳에서 날마다 많은 한국인들이 온다는 것이.


때로는 한국에 여행 갔다 왔다고 자랑하면서 우리에게 자기가 알고 있는 한국어를 얘기하며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고 한국말로 인사하는 걸 알려달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대개는 모두 한국인들에게 호의적이다. 간혹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우리도 알베르게에 함께 머물며 식당을 같이 사용하면서 어느 나라 사람들이 예의 있게 행동하는지 보게 된다.


그런데 그것도 여러 무리가 함께 움직일 때는 나라를 막론하고 시끄럽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것이 적다. 한두 사람이 다닐 때와는 대조적이다. 그래서 나라를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되겠다.

아침 일찍 출발해서인지 오전 9시쯤 에스테야(Estella)에 도착했다. 거리는 아직 한산하고 채소가게들도 문을 열기 시작하고 있다. 우리는 작지만 싱싱한 과일이 진열되어 있는 가게에 들어가 사과와 파란 자두를 샀다.


여기서 처음 먹어보았는데 굉장히 달콤하고 맛있다. 에스테야는 2년 전 가족이 함께 왔을 때 충분히 둘러보고 여기저기 기웃거려 마치 한국의 자주 가는 지방도시를 온 느낌이다.

잘 정비되어 있고, 깔끔하면서도 정감 있는 가게들이 많고, 오래되어 더 신비로운 수도원과 산 미구엘 성당이 있다. 그때는 성당에서 기부제로 운영하는 알베르게에서 묵었었다.


처음 까미노를 걷다 보니, 시설 좋은 사설 알베르게도 많이 있었을 텐데 무조건 성당에서 운영하는 곳이 최고라고 생각해서 까미노 표시를 보면서 찾아들어갔었다.

근처 성당에서 미사를 참례하고 신부님께서 안전하게 잘 걸으라고 강복해 주시고 함께 사진도 찍으셨었다. 말은 많이 통하지 않지만 하느님 안에서 하나로 통하는 신비를 느꼈었다.


그날은 이국에서 맞는 내 생일이라 시누님과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서 함께 묵는 이태리 아저씨와 독일인 예쁜 아가씨와 와인을 곁들여 즐거운 시간을 갖었었다. 아가씨는 독일 노래를 부르며 내 생일을 축하해 주었었다. 와인과 함께 먹었던 수제 소시지의 맛도 잊을 수 없다.

Ayegui 마을을 지나며 보게 된 대장간-농기구도 있지만 순례길이다 보니 조개 문양 등의 장식이나 말발굽 등이 많다

간단히 커피와 빵으로 아침을 먹고 더워지기 전에 출발했다. 에스테야 마을을 지나 완만한 오르막이 이어지고 그 끝에 아예기(Ayegui) 작은 마을을 지나가면서 오랜만에 대장간을 보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제는 거의 볼 수 없는 가게라서 신기해하며 대장간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계신 분을 보았다.


산티아고 순례길에 있는 마을답게 담에는 커다란 조개 모형이 올려져 있다. 대장장이의 모습을 만들어 놓은 것도 있고 조개 문양이나 말발굽, 달팽이 등 길을 걸을 때 보게 되는 여러 가지를 재미있게 만들어 놓았다.


아마도 여기를 지나는 순례자들 중에 무거운 배낭이지만 작은 기념으로 사 가지고 가는 사람들도 있는 모양이었다. 우리는 마을을 나와 내리막으로 이어진 길을 걸어 왼쪽으로 가는 노란색 화살표를 따라 오르막길을 걸었다.


오늘의 목적지를 가기 전에 들려서 갈 곳이 있다. 이레체 수도원이다. 수도원에 도착하기 전에 이레체 와인공장에서 운영하는 샘을 만나는데 수도꼭지 두 개에서 하나는 와인, 하나는 물이 나온다.


먹을 만큼 먹고 조그만 물통에 받아서 목을 적실수 있다. 이레체의 옛 수도원에서 순례자들에게 빵과 포도주를 나누어 주던 전통에서 이어지는 것 같다.

이레체의 와인과 물이 나오는 곳

스페인의 맛있는 와인을 수도꼭지를 틀어서 받아먹는 맛이 참 일품이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오르막길이지만 미리 챙겨둔 와인과 맛있는 파란 자두와 물이 있어 든든하게 지치지 않고 걸어 올라와 언덕 위에 우뚝 솟아있는 몬 하르딘 마을에 도착했다.


새로 지은 건물 1층에 깨끗해 보이는 알베르게가 있었지만 들어가지 않고 조금 더 올라가 안내책에서 본 중세의 모습이 남아있는 이슬람풍의 낡은 건물의 알베르게에 들었다.


오래된 건물의 알베르게에서 호스피탈 레도 그동안 만나왔던 사람들과는 분위기가 다른 곳이라 살짝 호기심과 경계심이 혼합된 복잡한 마음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후회는 빨랐다.


너무 낡은 침대며 화장실도 아래층으로 내려가야 하는 불편함에 사람들도 유난히 많고, 저녁식사 후에 모여서 기도시간을 갖는다고 하는 게 뭔가 우리가 생각하고 들어온 것과는 반대의 이질적인 분위기였다.


알베르게에는 주방이 있어도 우리가 직접 사용할 수는 없고 저녁식사는 예약을 받았다. 우리는 늘 하던 대로 두 사람의 저녁식사를 예약하고 식사시간이라고 종을 치는 소리에 식당에 내려갔더니 한국이 궁금한 젊은 아가씨들이 나와 남편의 옆에 앉아서 질문을 하는 데, 대답에 한계가 있어 밥을 먹는지 마는지 얼른 먹고, 후식 후에 성경 읽고 나눔과 기도를 한다고 해서 일부러 알베르게 밖으로 나와 동네를 구경하러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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