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에서 아이슬란드까지)
8월 30일 로그로뇨(Logrono) 20.3km
6시 40분 Bar에서 카페 꼰 레체와 카스텔라를 먹고 늘 그렇듯이 하루를 시작하는 기도를 하고 출발했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쉴 새 없이 이어지며 걷다가 비아나에 도착했다.
순례자들을 위해 여러 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진 마을인 만큼 여기서 어젯밤 머물고 떠난 순례자들이 많았을 것이다. 일찍 도착한 각 나라의 순례자들로 카페나 거리는 활기차 있다.
우리도 11km 가까이 걸어왔으니 배낭을 내려놓고 간단한 음식을 시켜 먹고 바로크 스타일의 시청 건물을 보고, Santa Maria 성당에 잠시 들어가 앉았다가 오늘의 목적지 로그로뇨로 출발했다.
로그로뇨에 들어서기 전에 펠리사 부인의 집을 지나가게 되는데 그녀는 수십 년간 순례자들에게 시원한 물과 무화과 등 사랑을 전했던 분으로 알려져 있다.
부인은 92세에 돌아가셨고 지금은 그녀의 딸 마리아가 어머니의 뜻을 이어받아 크레덴셜 도장(순례자 여권에 찍어주는 도장--순례자가 어디를 지나왔는지를 알 수 있다)을 찍어주고 있다.
우리도 도장을 찍고 시원한 물을 받아 마시고 걷는데 길가에 스페인 신부님들 5~6명이 앉아서 순례자들에게 올라! 를 외쳐준다. 그분들도 순례길을 걷는 중 인듯하다.
큰 나무들이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는 잘 정돈된 공원을 지나 Ebro강 너머에 있는 도시로 돌다리를 건너 들어섰다.
여기저기 알베르게를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서있는 순례자들을 보면서 우리는 2년 전에 묵었던 비교적 깔끔했던 알베르게로 갔다. 역시 한번 왔던 곳은 기억의 저편에 늘 자리하나 보다.
자주 왔던 곳을 찾아가듯 능숙하게 길눈이 비교적 좋은 남편 덕에 쉽게 찾아 들어갔고, 여전히 마당에는 빨랫줄이며 이동식 빨래 건조대에 일찍 도착한 순례자들이 널어놓은 빨래가 뜨거운 햇살에 말라가고 있었다.
우리는 1층에서 순례자 여권에 도장받고 알베르게 비 계산하고 스틱과 등산화 벗어서 신발장에 넣고 가방에서 실내화 꺼내 신고 2층으로 올라가 침대를 배정받았다.
늘 그렇듯 샤워실에 가서 시원하게 씻고 먼지투성이의 옷들을 빨아 마당의 빨랫줄에 널어놓고 슈퍼에 식재료를 사러 나갔다. 스페인의 날씨는 햇살은 뜨거운데 습기가 없어 그늘만 가면 시원하다. 우리는 나무 그늘을 따라 걸어서 도시의 큰 슈퍼에 갔다.
까미노를 걷는 중에 들리는 마을의 수준을 넘는 큰 도시다. 과일도 맛있고 가격도 저렴해서 2년 전에 여럿이 걸을 때는, 많이 사서 각자의 배낭에 배정하듯 넣고 걷다가 쉴 때마다 꺼내먹었다. 서로 자신의 배낭 무게를 줄이려고 부지런히 풀었던 기억에 웃음이 난다.
그러나 이번에는 남편과 둘이다 보니 가격에 비해 많은 양이 있는 과일 뭉치를 살 수가 없다. 배낭이 무거우면 걷는 게 힘들어서 몇 개씩 낱개로 구입한다. 쌀도 작은 것을 사서 밥을 해서 먹고 남으면 다른 이들이 먹도록 알베르게에 두고 거기에 누군가 두고 간 간단한 먹거리를 갖고 오기도 한다.
야채와 고기, 과일, 계란(삶아서 갖고 다니며 먹을 수 있는 든든한 식량), 물, 와인(하루도 빠지지 않는) 등을 사 가지고 돌아왔다.
아직 시간이 이른 지 식사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없었다. 우리는 편하게 고기를 볶고, 야채를 씻어 올리브를 넣은 샐러드를 만들어 와인과 함께 먹기 시작하는데, 도착해서 씻고 나온 강화성당 부부가 주방에 들어왔다. 함께 식사하자고 하니 슈퍼에 갔다 온다고 나가신다. 그 뒤로 한 보따리 시장을 봐온 젊은이들이 들어오고 주방 안은 순식간에 시끌벅적 해졌다. 여기가 큰 도시라 역시 한국의 젊은이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부사관으로 4년 근무하고, 퇴직금 모아서 유럽 배낭여행을 하고, 산티아고 순례길에 왔다는 젊은이 둘은 마치 군대에서 야전 훈련하듯 엄청 큰 배낭을 메고 들어왔다. 갓 제대한 젊은이들이라 짊어질 수 있는 배낭이었다.
그들은 산티아고 꼼뽀스뗄라까지 완주하고 아이슬란드까지 가는 3개월의 여정이라고 했다. 한참 밥을 먹으며 신나게 얘기하는데 밖에서 누군가 부르는 소리를 듣더니 손을 흔들며 대답을 한다.
아까 보았던 스페인 신부님들이다. 까미노를 함께 걸어왔다고 한다. 그들은 서둘러 자리를 정리하고 신부님들과 만나기 위해 나갔다. 언제 스페인어도 공부했는지 제법 잘 말한다. 보기 좋은 모습이다.
두 젊은이가 나간 뒤 군인의 딸이라는 30세 아가씨, 대안학교 교사, 인도 여행을 다녀왔다는 아가씨 등 서너 명이 즐겁게 식탁을 차리며 얘기한다. 여기에 오니 한국인들이 왜 이렇게 많이 오냐고 물었던 유럽의 젊은이가 생각났다.
우리는 비교적 작은 마을에서만 묵었기 때문에 만나지 못했던 한국인들을 그는 많이 만났던 것이다. 우리도 계속 들어오는 다른 사람들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밖으로 나와 바삭하게 마른빨래들을 걷어 정리하고 시내 구경을 나갔다.
큰 도시답게 거리는 휴가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2년 전 4월에 왔을 때보다 확실히 더 많다. 우리도 여기저기 기웃기웃 가게를 구경하고 맛있어 보이는 아이들 사탕과 초콜릿도 보고 광장에 저녁에 있을 공연을 위해 무대를 준비하는 모습을 보면서 한쪽에 앉아 시원한 맥주를 마셨다.
마시다 눈이 마주치는 사람들과 국적에 관계없이 미소로 답하며 여유 있게. 저녁 미사 시간까지는 아직 많이 남아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