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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How old are you?

(덴마크 순례자의 오해)

by 구슬 옥

8월 31일 나 바레 떼(Navarrete) 12.8km

날씨도 살짝 흐리고, 상쾌하고, 바람도 살랑살랑~ 공원으로 연결된 까미노 표시(노란색 화살표나 조개그림)를 따라 로그로뇨 시내를 빠져나와, 산책하고 운동하는 스페인 사람들을 바라보며 걷는 까미노 길이었다.


시내를 나오다 기아자동차 대리점이 있는 곳을 지나오게 되었다. 유리문 너머로 실내에 주차되어 있는 기아자동차도 보고 차량에 따른 자동차 가격이 적혀있는 것도 보았다.


해외에서 현대자동차나 기아자동차가 동네에 주차되어 있거나 성당 앞에 주차되어 있는 걸 여러 번 보고, 도시를 지날 때 거리의 스크린에 기아자동차가 나오는 광고를 본 적은 있는데 이렇게 대리점 사무실을 만나니 내 회사가 아닌데도 왜 이리 반갑고 자랑스러운지 모르겠다.


해외에 나가면 모두가 애국자라는 흔한 말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아직 이른 시각이라 직원들이 출근 전인 사무실 안의 자동차를 바라보며 그 앞에 서서 즐거운 표정으로 웃고 있는 남편을 모델로 사진만 한 장 찍고는 지나왔다.


탐스럽게 익은 포도나무가 줄지어 넓게 이어지는 포도나무밭을 바라보며, 포도는 언제 거두려나 하는 늘 하나마나한 걱정(?)까지 하면서 어렵지 않게 탁 트인 나 바레 떼 마을까지 11시쯤 도착했다.

20170831_100245.jpg 까미노에서 중세인의 복장을 하고 순례자들에게 과일이나 음료, 기념품을 파는 가게

까미노 안내책자에는 이곳이 어제 묵었던 로그로뇨 마을보다 훨씬 역사가 오래되고 왕국들 간의 전쟁을 무수히 치렀던 곳이라고 했는데 지금 모습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평화롭고 아름다운 마을이다.


Rioja지방 정부가 오래된 저택을 복원해 만든 시립 알베르게가 유명하다고 했지만 우리는 찾지 못하고 Bar에 가서 화장실 들리고, 점심을 먹기에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두리번거리다가 성당을 발견했다.


다행히 문이 열려 있어 들어가서 조배 하고, 촛불 켜고, 성음악 들으며 16c경에 지어진 성모승천 성당의 웅장함과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를 바라보았다. 아름다운 성모님의 모습과 다르게 웅장한 성당 안에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초라해 보이는듯하다.


성모승천 성당이라 성모님을 너무 강조해서인지 성당 안은 성모님과 다른 성인들의 모습으로 가득하다.

성모승천 성당의 내부

조용하고 아름다운 마을이다. 너무 낡아 오래된 건물들 옆에 새로 지은 아름다운 집들이 연결되어 있다. 왜 낡은 건물을 허물지 않고 그 옆에 새 건물을 붙여서 짓는지 이해가 안 되었다. 이태리의 로마처럼 중세의 모습을 간직하려고 하는 것인지...


대도시의 소음이 없는, 성당 뒤편 언덕에서 빙 둘러 마을의 모습과 저 멀리 다른 마을의 모습까지, 아직도 까미노를 걷고 있는 순례자들의 모습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산과 들과 집과 도로들이 조화를 이뤄 더욱 아름다운 곳이다.


우리는 마을을 둘러보고 눈에 뜨인 공립 알베르게에 7유로씩 내고 들어갔다. 아직까지 알베르게에 묵는 순례자들이 별로 없어서 우리는 운 좋게 각자 1층 침대를 배정받고 씻고 빨래해서 널고 슈퍼에서 해물과 빠에야 재료를 사서 맛있게 요리하고, 포도주와 샐러드까지 성찬을 차리고 있는데 마침 롱 세스 바에스에서 만난 젊은 신혼부부가 들어와 반가워서 즐겁게 이야기 나누며 식사를 했다.


식당에는 덴마크에서 온 남성 한 명만 앉아 있어 그에게도 함께하자고 초대했었다. 그러나 그 사람은 다른 일행이 있는지 같이하지 않겠다고 해서 우리는 몇 번을 거듭 만나는 인연을 신기해하며, 순례 중에 느끼는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누면서 식사하고 일어났다.


설거지는 남편이 도맡아 하고 젊은 부부는 침대 정리하러 나가고 나도 잠시 빨래 걷으러 나갔다가 오니 남편 얼굴빛이 조금 안 좋았다. 왜 그런지 몰라하고 있는데 설거지를 마친 남편이 혼자 앉아있는 덴마크 순례자에게 가더니 'how old are you?' 하고 약간 화난 표정으로 말을 했다.


그 사람이 50 정도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는데 남편이 'my brother is fifty-two years old'라고 말하며 눈에 힘을 줘서 그를 바라보았다. 나이로 밀어보아야 문화가 다른 나라 사람끼리 통할 리가 없는데도 남편은 한국식으로 불편함을 드러냈다.


나는 왜 그러냐고, 무슨 실례냐고 남편에게 말하니 남편이 화를 삭이며 내게 말했다. 덴마크인이 남편이 혼자 설거지하려고 하는데 내일 언제 떠나느냐 하고 물었고, 내일 아침 일찍 떠날 예정이라고 말했더니 그가 조용히 떠나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남편은 처음에는 웃으며 들었는데 설거지하며 생각하니 괘씸한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조금 후에 덴마크인이 내게 물었다. 그룹으로 왔느냐, 몇 명이 왔느냐. 나는 미소 지으며 우리는 부부 둘이 왔고 아까 함께 밥을 먹었던 부부는 순례길에서 만났던 분들이라고.


그는 약간 놀라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가 다른 외국인이 식사 준비하러 들어오니 벙어리 말문 트인 것처럼 엄청 떠들썩하게 얘기를 주고받았다.


스페인 산티아고 길은 세계인이 각자의 지향을 갖고 걷는 길이고 그 길 위에서 만나는 모두는 대부분 서로 친절하게 웃으며 부엔 까미노를 외치고 반가움을 표시하는데 가끔 인상을 쓰며 한국인한테 무례하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산티아고 길을 걷는 한국인들이 숫적으로 스페인, 독일, 프랑스 다음으로 많아서 질투가 난 건지 알 수 없다. 아니면 무리 지어 다니며 떠들썩하게 얘기하는 한국인들을 경험한 데서 오는 불쾌함 인지도 모른다.


우리도 2년 전 봄에 왔을 때 젊은이들이 떠들썩하게 주방을 쓰면서 시끄럽게 하는 걸 보고 좋지 않은 시선을 보낸 적이 있었으니까.


그러나 외국인 순례자들도 같은 나라끼리나 아니면 함께 어울리는 사람끼리 밤늦게까지 시끄럽게 하는 모습도 여러 번 보았기 때문에, 여럿이 모이면 모두들 나라를 불문하고 시끄럽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차였다.


남편과 나는 조금은 불쾌했지만 더 이상 생각하지 않고 8시 미사에 참석하고 영성체 하고 신부님의 강복까지 받고 기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남편 침대 2층에 자던 그 덴마크인은 새벽 일찍 짐을 꾸려 출발하고 없었다. 그리고 순례가 끝날 때까지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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