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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하늘과 땅이 맞닿는 지평선

(칼사다의 기적)

by 구슬 옥

9월 2일 산토 도밍고 데 라 칼사다 (Santo Domingo del La Calzada) 21km

아침 6시가 되니 하나둘씩 일어나 나갈 준비들을 한다. 우리도 일어나 준비하고 내려와 배낭 메고 지팡이를 짚은채 잠깐 한쪽에 서서 까미노를 출발하기 전에 항상 하는 기도를 하고 발걸음 가볍게 길을 떠났다.


산타 마리아 수도원을 끼고돌아 마을 밖으로 나서니 오르막길이 시작이다. 조금 가파르다 싶은 경사로 오르막을 어느 정도 걸으니 내려가는 길이 이어지고 다시 길 양쪽으로 너른 누런 들판을 지나 5km 이상 걸어가니 오래되고 유서 깊어 보이는 저택들 사이로 까미노 길이 이어진다. 집 앞에 가문을 상징하는 문장이 새겨져 있는 집들이 여럿 있고 벌써 도착해서 Bar에서 커피와 음식을 먹는 순례객들로 북적인다.


우리도 잠시 다리도 쉴 겸 카페 꼰 레체와 빵 한 조각씩을 주문해서 먹으며 근처에 있는 순례자들과 가볍게 목례로 인사했다. 쉬면서 보니 오래된 마을은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고, 골목을 사이에 둔 집들의 창밖 작은 발코니에는 예쁜 꽃화분들이 두서너 개씩 놓여있다. 아직 마을 사람들은 밖에 지나다니지 않고 까미노를 걷는 순례객들의 발소리와 지팡이 소리만 돌로 된 도로를 울리고 있었다.


다시 마을을 빠져나와 계속 나지막이 오름이 이어지는 추수가 끝난 너른 평원을 보면서 걸었다. 하늘과 땅이 닿는 지평선을 보면서 계속된 길을 걷다가 다시 쉬고 또 걷기를 10km 이상을 걷고 나자 시루에나(Ciruena) 언덕의 가파른 오르막길이 이어지고 다시 내리막길로 그리고 다시 평지로 걷기 편한 길이 이어지면서 도시가 보이기 시작했다.

저 멀리 산토 도밍고 데 라 칼사다 마을이 보인다. 그러나 보이는 만큼 가까운 거리는 아니다.

산토 도밍고 데 라 칼사다 마을은 2년 전 가족이 함께 왔을 때도 쉬어갔던 곳이다. 그래서 그런지 친근하고 낯설지 않다. 알베르게에 짐을 풀고 씻고 빨래해서 널고 근처에 슈퍼에 가서 이른 저녁거리를 사다가 오랜만에 다시 만난 수진 씨 부부와 닭다리 조림, 카레라이스, 샐러드, 연어구이 등을 해서 이야기와 함께 푸짐하고 풍성한 식사를 했다.


이곳은 까미노를 걷는 중에 들리게 되는 마을 중에 매우 크고 번화한 곳이다. 까미노 길 때문에 생겨난 도시라고 해도 틀리지 않는다고 한다. 마을의 이름과 같은 칼사다는 수도자로 살고 싶었는데 입회가 거절되자 평생을 살 장소로 이곳을 택했다고 한다.


까미노의 큰 후원자였던 칼사다는 숲을 정비하고, 나헤라(Najera)에서부터 레데실라(Redecilla)까지 까미노 루트를 만들고, 오하 강을 건너는 다리를 세우고, 성당과 병원을 설립하여 순례자들을 맞이했다고 한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 그 자신의 열정이 담긴 까미노 길 위에 묻혔고 훗날 성인품에 오른 뒤 그의 묘역 위에 세워진 건물이 바로 이 도시의 로마네스크 상석을 가진 칼사다 대성당이라고 한다.

저녁 9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바라본 산토 도밍고 데 칼사다 대성당의 종탑

또한 이 마을은 중세 때부터 '닭의 이야기'가 들어간 기적이 전해지고 있다. 그래서 성당의 뾰족한 지붕 위에 닭 모형이 올려져 있기도 하고 내부의 벽에 있기도 하다. 우리는 이른 저녁식사를 했기 때문에 마을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구경하다가 칼사다 대성당의 저녁 미사를 참례하게 되었다. 십자가 중앙에 수난받는 예수님의 모습이 없는 십자가와, 유럽의 성당에서는 보기 드문 장식이 거의 없는 성당 내부다. 그러나 미사가 진행 중이던 대성당 제대 위의 높은 천장의 장식은 참 아름다웠다.


또 하나 특이한 것은 '닭의 기적이야기' 때문인지 대성당 한쪽 벽 안에 하얀 암탉과 수탉이 살고 있었다. 철장이 쳐져 있었지만 잘 보였다. 이 마을의 특별한 이야기 때문인지 성당은 미사에 참석한 많은 사람들로 꽉 찼다.

산토 도밍고 데 라 칼사다 대성당 재대 위의 아름다운 양식

미사가 끝나갈 무렵에 신부님은 순례자들을 위해 산토 도밍고 데 라 칼사다 성인에 대해 설명해 주시고, 나헤라의 신부님처럼 까미노 길의 3가지 종, 십자가, 조개를 치고 만져보라고 하셨다.

순례자들을 위해 영어로 설명을 해주셔서 대충 이해를 했다. 오늘은 특별히 성당 사무실에 들러 순례자 여권에 스탬프도 찍었다.


*닭의 기적: 15세기에 부모님과 함께 순례를 온 독일 청년을 짝사랑한 여관의 시녀가 청년이 자신의 사랑을 받아주지 않자 도둑으로 모함을 해 청년은 재판을 받고 교수형에 처해졌다.

상심한 부모가 산티아고 성인에게 기도하며 순례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네 아들은 성인의 기도로 살아있다'라는 하늘의 소리를 들어 재판관에게 달려가 아들이 살아있음을 말했다.

마침 닭요리를 먹으려던 재판관이

'당신의 아들이 살아있다면 이 암탉과 수탉도 살아있겠군' 하자

닭이 그릇에서 살아 나와 즐겁게 노래했다는 기적이다. 그 후로 산토도밍고의 재판관들은 독일 청년의 결백을 믿지 않은 것에 대한 사죄로 몇 백 년 동안 목에 굵은 밧줄을 매고 재판을 하는 전통이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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