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영혼들이여~)
9월 4일 산 후안 데 오르떼가(San Juan de Ortega) 24km
마을을 나와 나무다리가 놓인 강을 건너 국도 옆으로 난 보행자길을 걷기 시작했다. 사실 강이라고 해도 물이 별로 없다. 이 시기는 스페인의 건기라 그런지 비가 전혀 내리지 않아 강도 물이 메말라간다. 거리의 나무들도 먼지로 뽀얗다.
오늘은 해발 750미터에서 해발 1150미터 까지 오르막길을 걸어야 돼서 아침 일찍 출발했다. 완만한 오르막길이었지만 5km 정도는 느린 내걸음으로도 한 시간 조금 남짓 걸린다. 걷는 속도가 처음보다 훨씬 빨라졌다. 2주 이상 까미노를 걷다 보니 몸이 적응하고 있는 증거였다.
해발 800미터 이상 되는 곳의 또 산 또스 마을을 지나는데 돌로 된 산에 거대한 바위를 파내어 만들었다는 성당이 보인다. 잠깐 들렀다 갈까 하다가 풀이 너무 무성하고 성당으로 이어지는 길이 안 보여서 포기하고 계속 걸었다.
출발하기 전에 본 안내책자에서 라 뻬나 성모 성당이라고 표시되어 있었고, 침략자들에게서 성모상을 지키기 위해 동굴 속의 종 밑에 숨겼다는 전설이 있었으나 그 흔적을 찾지 못하다가 동굴이 성소가 되면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12km 정도를 오르막으로 해발 200미터 높이를 걸어 올라와 Villafranca Montes de Oca 마을에 들어가 점심도 먹고 다리도 쉬었다. 아마도 이 마을을 지나면 오늘 우리가 도착할 곳 까지는 마을이 없고 물이나 음료를 마실 곳도 없기 때문에 이 마을에서 충분히 쉬고 물도 많이 준비해야 되었다. 2년 전 가족들과 함께 왔을 때는 이곳을 걷지 않았다. 4월이라 비도 많이 내렸고, 안내책자에서는 고속도로와 인접한 도로를 걸어야 돼서 힘들다고 쓰여있어, 비 오는 날 아침에 벨로라 도에서 부르고 스 가는 버스를 타고 출발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두 번째로 걷는 길이니 건너뛰는 곳 없이 모두 걸으리라 다짐했기에 조금은 낯설고 호기심이 생기는 길을 걸었다. 아까와는 달리 오르막의 경사는 매우 심했고 계속 걷다 보니 떡갈나무 숲과 소나무 숲으로 이루어진 산길을 끝없이 걷게 되었다.
남편은 옛날 에는 이곳에 도둑들이 많아 순례자들이 가진 것을 몽땅 털리고 변도 당하기 일쑤인 곳이었다고 말하며 약간 겁을 준다. 지금이야 워낙 많은 순례자들이 세계 각지에서 출발해 오지만 천 년 전 혹은 몇백 년 전에는 정말로 힘든 순례길이었을 거라는 상상이 된다.
숲길을 오르고 내리막길이 계속되는 가운데 길 한쪽에 앉아 외국 여성 순례자와 얘기를 나누며, 지나는 우리에게도 손을 흔드는 한국인 여성 순례자 두 분을 만났다. 그녀들은 까미노를 걸으며 여러 번 알베르게에서 마주친 적이 있었다. 40대 중반 정도인 걸로 보이는데 싱글이라고 했다.
걸을 때는 가방도 가볍게 메고, 큰 배낭 하나에 나머지 짐을 넣어 차량으로 배달시킨다고 했다. 그래서 늦게 걸을 때도 배낭이 도착되어 있을 알베르게로 가야 돼서 다른 사람들은 쉬고 있을 때 다음 마을로 늦은 시간까지 걸어가는 걸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영어로 소통이 잘되는지 자유롭게 외국인 순례자들과 이야기하는 모습을 여러 번 보았는데 오늘도 힘든지 길에 앉아 여유를 부린다. 자유로운 영혼들이여~
가도 가도 마을이 없어 지쳐갈 무렵에 짠~ 하고 나타나듯이 숲길을 걸어오다 보니 산 후안 데 오르떼가 수도원이 보인다. 그 뒤로 마을이 있는 것 같다. 우리는 부지런히 걸어가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알베르게에 접수했다. 인원 제한이 있어 자리가 있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침대를 배정받았다. 짐 정리를 하고 씻고 빨래하고 밖으로 나오니 키가 엄청 크고 덩치도 있으신 외국인 할아버지 순례자가 알베르게 입구에서 호스피탈 레와 약간의 언쟁이 있는 듯했다. 자리가 다 차서 받아줄 수 없다고 하고 할아버지는 더 갈 수 없으니 침대를 배정하라고 하는 듯했다.
다행히 수도원 안에 매트리스를 깔고 잘 수 있게 하면서 그 할아버지를 비롯해서 늦게 도착한 사람들이 들어왔다. 항상 배낭과 한 손에는 냄비를 하나 들고 다니던 키 큰 외국인 할아버지가 까미노를 걸으면서도 인상적이었는데 오늘 같은 숙소에서 이렇게 만나게 되었다.
오후 5시 무렵 수도원에서 신부님과의 만남이 있다고 해서 들어가니 벨로라도 수도원 성당에서 만났던 신부님이 계시고, 꼼뽀스뗄라를 걸을 때 부르는 스페인 노래라고 하면서 악보를 보여주시며 따라 부르게 하셨다.
이번 노래는 내가 들어본 적이 있는 익숙한 리듬이라 잘 따라 부르고 여러 순례자들과 함께 유쾌한 신부님과 사진도 찍었다.
식사 후에는 수도원 성당에서 미사도 참례했는데 오후에 만났던 벨로라도 신부님은 다시 가셨는지, 다른 나이 많아 보이는 신부님이 주례하시며 강론으로 여러 말씀을 하셨는데 이해는 못하고 그래도 영성체 하고 강복도 받아 행복했다.
미사 후 성당 안을 둘러보다가 임신과 다산의 성인이라는 산 후안 데 오르데가 성인의 무덤인 석관을 보게 되었다. 중세 때 가톨릭 왕으로 불리는 이사벨 여왕도 이곳으로 임신 중 순례를 왔다가 자신이 무사히 아기를 낳기를 기도했다고 하고, 또 석관을 열어 직접 부패하지 않은 성인의 시신을 보았다고 한다. 그때 석관에서 하얀색 벌떼가 쏟아져 나왔고 다시 석관을 닫자 벌들은 다시 석관의 작은 구멍으로 돌아갔다는 얘기가 전해져 온다고 한다. 지금 시대에서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 시절의 가톨릭 신앙을 엿볼 수 있었다.
또 하나 수도원에서 지금도 보이는 신기한 현상이 있다. 매년 춘분과 추분에는 햇빛이 오후에 10분 정도 성당 입구의 왼쪽 기둥의 부조를 비추는데 처음으로 가브리엘 대천사가 성모 마리아에게 나타나 성령으로 아기를 잉태함을 알리는 부조부터 시작하여 예수의 탄생, 예수를 경배한 동방박사, 천사가 목동들에게 예수가 태어났다고 알리는 장면을 차례로 비춘다고 한다.
그 시간에 이곳을 도착해 보았을 순례자들에게는 특별한 경험이 되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