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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서로 다르다는 걸 알아야지

(헨리 아저씨)

by 구슬 옥

9월 9일 뽀 블라시 온데 깜 뽀스 (Poblacion de Campos) 18km

마을을 벗어나 양쪽으로 이어지는 넓은 밀밭 평원을 바라보며 걷다가 완만한 오르막길이 끝나자 다시 끝없는 밀밭 평원이 계속된다.


누렇게 익어 물결치는 밀밭 평원이었으면 더 아름다웠겠지만, 갈아엎어지고, 밑동만 남아있는 밭에 쏟아지는 햇살이 황금색으로 변하는 모습도 참 보기 좋았다. 이 많은 밀을 내가 다 추수한 것 같은 뿌듯함이 평원을 걷다 보면 밀려온다. 그러다 하늘과 닿아있는 밀밭 사이의 길을 보노라면 저절로 탄성이 나온다.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보아 디야 델 까미노(Boadilla del Camino) 표지판을 보면서 계속 걸어가니 오랜 세월의 풍파 속에 색이 바랜 성모승천 성당 앞에 도착했다.


성당문은 닫혀있어 들어가지는 못하고 그 앞에 있는 심판의 기둥 발치에 앉았다. 중세 때 공개 재판에 사용되었다는 이 기둥은 중대한 죄를 지은 죄인을 여러 마을로 끌고 다니면서 칼을 채워 이 기둥에 묶어놓았다고 한다.


갑자기 중세 때 유럽을 휩쓸었던 마녀 사냥 이야기가 생각났다. 종교라는 이름으로 무자비하게 사람을 판단하고 처형했던 그 시대에 이렇게 아름다운 기둥이 사용되었다는 것은 너무도 슬프고 가슴 아프다.


세상의 모든 종교는 용서와 사랑과 자비를 가르치고 있는데 인간들은 무지하게도 그것을 이용해 사람을 죽이고, 권력을 얻는데 이용했으니 어리석기 그지없다.


성모승천 성당 앞 심판의 기둥에서

성당 뒤에 카페를 겸한 알베르게로 들어가니 벽화가 그려있고 순례자의 형상과 꽃으로 아름답게 장식이 되어있는 넓은 정원이 나왔다. 그리고 묵었던 순례자들이 모두 떠나서 지금은 초췌해 보이는 알베르게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또 오후가 되면 여기를 찾는 순례자들로 빛이 날 것이다. 어지럽게 흩어져있는 야외탁자에 앉아 카페 콘 레체를 주문했다. 신발을 벗고 쉼 없이 걸어온 발의 피로를 풀면서 먹은 커피는 맛있었다.


마을을 지나 프로미 스타에서 시작된 까스띠야 운하를 따라 포플러 나무가 줄지어선 길을 걷는다. 포플러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며 내는 소리가 파도소리처럼 밀려왔다 밀려가며 걷는 길을 응원한다. 운하 옆으로 자라난 갈대밭 앞에서 사진 한컷을 찍고 걷다 보니 멀리 프로미 스타 시내가 보인다.

프로미스 타로 이어지는 까스띠야 운하 옆으로 난 길을 걸으며

2년 전에는 버스 타고 비 맞으며 정신없이 들어간 성당 옆 알베르게를 바라보면서 바로 어제처럼 그날의 모습이 그려진다.


순례자가 버스를 탄다고 타박을 주던 버스 운전사는 비가 쏟아지는 프로미 스타 광장 앞에 우리를 내려주면서 손짓으로 성당 옆을 가리키며 거기 알베르게가 있다고 스페인어로 말해준 것 같다.


늦은 저녁시간에 세차게 비가 쏟아지는 광장을 가로질러 부지런히 가보니, 매우 열악한 조건의 알베르게는 순례자들로 가득 차 있었다. 간신히 끝쪽 골방에 이층 침대 두 개를 배정받고, 늦은 저녁식사로 배낭에 넣어온 즉석 음식을 전자레인지에 데워서 먹었던 기억이 새롭다.


반갑게 만났던 한국인 순례자들은 버스 타고 왔다는 나의 말에 코웃음을 치며 자신들은 오늘 몇 km를 걸어서 왔는데 버스 타고 오면 그게 무슨 순례냐면서 생장에서 여기까지 며칠 만에 왔다는 등 서로 빨리 걸은 자랑들을 한다. 맞는 말이지만 듣는 우리는 아프다. 조용히 식사를 하던 고모가 그 소리를 들으며 속상해서 나에게 더 이상 얘기하지 말라는 눈짓을 했었다.


비 오는 데 오느라 고생했다는 위로나, 가족끼리 어떻게 오게 되었냐는 얘기보다는 뭔가 빨리 걷기 경쟁을 하듯 출발한 날짜를 묻고, 자신들보다 빨리 출발했는데 이제야 여기에 도착했느냐는 말투가 매우 거슬렸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그렇지 않을 테지만 우리는 그날 운이 좀 나빴다. 각자의 체력과 사정에 맞는 방식으로 걷고 순례하면 되는데, 자신과 똑같은 '자'로 타인을 재려는 자세들이 지금 되돌려 생각해 보아도 마음이 몹시 언짢다.


오늘은 부지런히 걸어서 도착해 프로미 스타 인증 사진도 찍고 bar에서 점심으로 치킨이 들어간 빠에야와 믹스 샐러드와 세르베사(생맥주) 큰 걸로 하나를 시켜서 나눠 먹었다. 그리고 흥겹게 4km를 더 걸어 뽀 블라시 온데 깜 뽀스 작은 마을의 공립 알베르게에 들었다.


호스피탈 레도 없이 문은 열려있고, 바이크로 순례하시는(로마에서 출발하셨다는) 이태리 아저씨가 샤워 끝내고 출발하려는 참이라며 내 세례명을 물었다. '마리아'라고 하니까 마리아를 위한 연주라며 하모니카를 불어주셨다. 듣기 좋았다.


성모가 새겨진 띠를 갖고 다니면서 본인의 세례명은 '헨리'라고 하며 자신은 달과 별이 좋아 노숙한다고, 3일 만에 샤워했다고, 파티마까지 간다고 했다. 이스라엘 시온산(호렙산)도 올라가 거기서도 묵었다고 했다.


보드카 큰 것을 갖고 가서 자기도 먹고 다른 사람도 주고 했다는 얘기를 다른 브라질 사람에게 자랑삼아 얘기하고는 바이크 타고 떠났다. 부릉~ 부엔 까미노!


우리는 샤워하고 빨래해서 넓은 마당에 널고 마당에서 한가로이 쉬다가 이른 저녁을 만들어 먹은 후 동네 구경을 다녔다. 작은 마을이고 성당에 미사도 없어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알베르게로 돌아와 마당에 있는 그네를 타면서 고즈넉한 시간을 가졌다.


그네와 미끄럼틀이 있는 걸 보니 옛날에 학교로 사용되었던 건물을 개조해 순례자 숙소로 만든 것 같다. 작은 마을이라 모두 머물지 않고 지나가서 오늘 우리와 함께 머무는 순례자들은 독일 젊은 학생들 단체만 있다.


학생들이 식사를 하고 난 후, 주방의 식기며 냄비들을 깨끗이 설거지하고, 마른행주로 닦아 놓여있던 자리에 가지런히 두는 걸 보니 마음이 훈훈했다. 특히 한 남학생이 나중에 다시 주방으로 나와 뒤처리를 하는 걸 보고 놀랐다.


대부분 알베르게 주방을 사용하다 보면 접시나 냄비들을 쓰고 설거지까지는 하는데 마른행주로 닦아 제자리에 놓는 사람들은 보기 드물기 때문이다.

뽀 블라 시온 데 깜 뽀스 마을의 공립 알베르게--넓은 마당에 그네도 있고 미끄럼틀도 있다. 물론 빨랫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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