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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산타 마리아 알베르게

(산티아고의 심장)

by 구슬 옥

9월 10일 가리온 데 로스 꼰 데스 15.5km

계속되는 직선의 까미노 길을 걷는다. 양쪽으로 끝없이 펼쳐진 밀밭. 그리고 2차선 정도의 고속도로. 별도로 길을 내어 계속 직선으로 그리고 약간 150m 정도의 높이를 서서히 오르게 되는 길이다. 이렇다 할 무엇도 없이 끝없이 평원을 걷는 느낌이다.

고속도로 옆으로 나있는 길을 따라 넓게 펼쳐진 밀밭을 친구 삼아 걷다

5km 정도 걸어 Villamentero de Campos 마을에 들어갔다. bar와 야영 알베르게가 겸해있는 독특한 곳이었다. 카페 꼰 레체를 먹으며 카페 주인이 망아지의 목덜미 털에 자신의 얼굴을 대며 행복하게 웃는 모습도 보고, 깜찍한 그러나 살짝 지저분한 귀여운 강아지도 보았다.


마치 인디언 막사 같은 야영 알베르게를 보며 캠핑하듯이 저녁에 불을 지피고 별을 보면서 다양한 사람들이 흥겹게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들이 그려졌다.

야영 알베르게 아저씨와 망아지의 다정한 포즈

남편이 이곳을 미리 알았으면 어쩌면 우리도 어제 이곳까지 걸어와 야외 알베르게에서 새로운 경험을 했을지도 모른다. 아직도 젊은이와 같은 호기심과 캠핑을 좋아하는 남편이니 말이다.


Bar에 들어오는 다른 사람들과도 기본적인 인사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 어디까지 걷느냐 등등)를 나누고, 다시 아스팔트 고속도로 옆으로 직선으로 이어진 까미노를 걸었다.


오늘의 목적지까지 계속 이렇게 길이 이어질 것이다. 단조롭기도 하지만 지나는 차가 거의 없어 그저 파란 하늘과 밀밭 평원이 주는 풍요로움을 받아들이면서 조용히 묵상하며 걷는다. 그러다 누군가 나를 지나치면서 빠르게 '올라' 하는 소리에 환하게 웃으며, 스틱을 쥔 손을 들어 올려 최대한 낭랑한 목소리로 '올라'로 답한다. 서로의 기운을 up 시키기 위해서.


그렇게 한참을 걸어 시르가(Sirga) 마을로 들어가는데 종소리가 끝없이 울렸다. 미사 시작 30분 전이라는 것을 눈치채고 10시 30분 미사에 참례하러 달려갔다. 우리가 성당 앞에 일찍 도착해서 들어가 보니 성당 안에는 신자들이 아무도 없다.


성당문은 열려있고 종소리는 미사가 있음을 알리는 것인데 이상하다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며 배낭을 멘 채 마을을 바라보고 있자니, 다행히 미사 시간이 임박해지자 전혀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그것도 말끔한 정장과 맵시로, 주로 나이 먹은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지만 부지런히 미사에 참례하기 위해 모여들었다.


눈치 빠른 우리 부부도 시작 전에 미리 들어가 한쪽에 배낭과 스틱을 잘 정리해 놓고 미사에 참례할 수 있었다. 미사는 언제나처럼 전례 봉사자 없이 신부님 한분이 주례하셨는데 그래도 독서는 앞에 앉은 신자들이 올라가 읽었다. 중간중간 합송으로 하는 기도문도 우리는 우리대로 한국어로 했다.


온 따 나스에서 가져온 한국어 겸용 미사 통 상문 덕택에 스페인어로 진행되는 미사였지만 어려움 없이 순서를 잘 따라 했다. 영성체도 하고 순례자가 참례한 걸 본 신부님이 특별히 미사 끝에 우리의 순례를 위해 기도해 주셨다.


우리가 미사에 참례한 성당은 Villalcazar de Sirga 마을의 산타 마리아 성당으로 블랑까(Blanca) 성당이라고도 한다. 13세기에 템플 기사단에 의해 만들어진 곳이라고 나중에 알게 되었다.

시르가(Sirga) 마을의 산타마리아 성당-제대 앞에 전기 촛불이 있어 1유로를 넣으면 촛불 하나에 불이 들어온다

걷는 중에 미사에도 참례하고 강복도 받아서 그런지 몸과 마음이 날아갈 듯 걸음도 가볍다. 꼰데스 마을에 1시 전에 도착해서 산타마리아 알베르게를 찾다가, 이전해 간 곳을 알려주는 친절한 현지 사람들 덕분에 알베르게를 잘 찾아 들어갔다.


오랜만에 집에서 자는 듯이 깨끗하고 예쁜 침대 커버가 각 방마다 정갈하게 씌워져 있고, 큰 방에 베드 15개 모두 1층 침대만 있고, 중앙에 테이블이 있고, 각 침대 옆에는 배낭을 올려놓을 수 있는 의자도 놓여있어 깔끔하고 좋았다.


여러 개의 큰 창문이 있고 함께 사용하는 공간이 넓어 그것 또한 마음에 들었다. 샤워실도 남녀 구분되어 4개씩 있다(작은 알베르게들은 샤워실을 남녀공용으로 쓰도록 한 곳도 있다).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데라 역시 구석구석 세심한 손길을 느낄 수 있다. 따로 묵상을 할 수 있는 성체조배실도 있어서 들어갔는데 정갈하고 고요한 방에는 다행히 아무도 없어 잠깐 머물다 나왔다.


중세 때는 아마 수도원이었으리라 생각되는 이곳은 규모가 크고 주방이며 모든 시설이 잘 되어있는 알베르게라 한국 사람들도 참 많이 만났다. 우리는 2년 전에 순례길을 한번 걸어보았기에, 이번에는 될 수 있으면 작은 마을에서 쉬려고 마음을 먹고 그렇게 하고 있어서 좀처럼 한국인들을 볼 수 없었는데, 젊은 사람들이며 부부들을 꽤 여럿 만났다.


눈인사도 하고 직접 얘기도 나누면서 주방이 한가할 때 저녁 준비를 시작했다. 오늘의 저녁 메뉴는 닭다리(넓적) 조림과, 남아있는 토마토와 통조림 홍합을 넣은 스파게티다. 주방 안의 냄비며 접시들도 그동안 지나온 알베르게의 주방에서 보았던 것들보다 더 깨끗하고 잘 정돈되어 있다. 아마도 순례자들이 가고 나면 수녀님들이 다시 뒷정리를 깔끔하게 하시는 수고 덕분이리라.


일찍 저녁을 먹고 정리하고 마을 구경을 다녔다. 꼰데스 마을은 지리적으로 프랑스 생장 피에 드 포르에서 시작해서 산티아고 콤포스텔라까지 가는 까미노 프랑스길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어 까미노 데 산티아고의 심장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제법 큰 마을인 이곳은 중세시대에는 더 많은 성당과 수도원이 있었을 것이다. 지금도 순례자를 위한 병원이며 기타 여러 시설이 잘 되어 있고 고풍스러운 주택들도 많은 걸 보면 과거의 화려했을 도시의 모습이 그려진다.


발코니마다 화사한 꽃 화분이 놓여있는 골목길을 지나 한국에서도 볼 수 있는 연수원 같은 건물에 젊은이들이 바이크를 타고 단체로 들어가는 모습도 보면서 오랜만에 거리 곳곳을 산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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