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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하몽 바게트 샌드위치

(까미노를 걸으며 하는 실수)

by 구슬 옥

9월 12일 사아 군 (Sahagun) 23km

까미노는 어제 걷던 고속도로 옆길로 이어져 내려가다 다시 완만한 오르막으로, 평원으로 이어지면서 떼라 리오스 데 로스 뗌 쁠라 리오스(Terradillos de los TemPlarios) 마을로 접어들었다.


이 마을은 12세기에 설립된 템플 기사단의 영지였다고 안내책에서 읽었는데, 지금은 많이 쇠락한 듯 순례자를 위한 편의시설도 보이지 않는다. 16세기에 지어졌다는 떼라 리오스 교구 성당은 붉은색 벽돌로 지어진, 일자형으로 이루어지고, 종탑 머리도 사각형으로 되어있어 이곳도 이슬람 문화의 영향을 받아 지어진 것으로 보였다.


성당을 밖에서만 바라보고 계속 걸어 마을을 지나가는데 지붕 위에 앉아 지나가는 순례자들을 보면서 일광욕을 하고 있는 작은 고양이와 눈이 마주쳤다. 나를 바라보는지 알 수 없는 눈이었지만 '야옹, 어디서 왔냥?' 하는 듯했다.


마을로 나오면서 길은 두 갈래 길로 나뉜다. 까미노를 걸을 때마다 고민되는 것은 갑자기 걷다가 선택해야 하는 두 가지의 표시가 나올 때다. 가보지 않은 길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처럼 어려운 것은 없다.


물론 안내책을 충실히 미리 읽고 출발할 때는 거침없이 선택해 걸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았을 때는 참으로 어려웠다. 비슷하게 걷고 있는 순례자들이 많이 가는 길로 가면 되겠지 생각하고 주위를 둘러보면 마찬가지로 그들도 어디로 가야 할지 잘 몰라서 당황하는 걸 종종 보게 된다.


두 갈래의 길에서는 항상 선택되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과 미련이 공존한다. 다행히 자신이 선택한 길이 아름답고 편안한 길일 때는 괜찮은데, 단조롭거나 시끄러운 고속도로 옆이거나 할 때, 심한 비탈진 길이거나 오르막이 심한 길일 때 특히 더 선택하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이 밀려온다. 그쪽 길로 가볼걸 하는.


생각해 보면 나는 삶의 까미노에서도 늘 이렇게 선택해야 하는 기로 속에서 고민하고 후회하면서 살아왔다. 그때 이렇게 했었어야 했는데, 그랬더라면 지금 내 삶은 이렇게 저렇게 변했을 텐데 하는,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이나 아쉬움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나이가 60이 넘어서고, 아이들도 다 장성해서 자신들의 인생을 사느라 애쓰고 있으니, 이제는 선택하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이나 후회보다는 인생을 60% 이상 걸어왔으니 나머지는 주어진 대로, 감사한 마음으로 걷고 싶다. 때때로 잘 안될 때가 있지만.


요즈음은 너무 욕심이 없어 가져보지 못한 것들에 대한 아쉬움보다는 내가 받고 살아온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나 사랑에 대해 감사한 마음이 많이 든다.


부족해서 제대로 그 사랑에 표시도 못하고 살았던 어리석은 자신을 돌아보면서 불평하지 않고 이끌어주시는 대로 내 삶의 까미노를 걷고 싶다. 남편과 함께 천년의 길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더욱 그러한 생각이 든다.


우리는 오늘 운 좋게도 길을 잘 선택했는지 완만한 내리막길을 지나 멀리 중세부터 이어져오는 모라띠 노스(Moratinos) 마을로 들어갔다. 멀리 성당과 마을이 보이고 오른쪽으로 올라가는 길의 언덕 아래 커다랗게 뚫려있는 구멍에 문이 달려있다. 바로 맛있는 와인이 저장되어 있는 와인 저장소다.


마을의 와인 저장소--그 위로 언덕을 넘어 걸어야 하는 길이 보인다.

그것은 길을 걷다 보면 가끔 보게 되어 처음에는 묘지인가? 뭐지? 하는 동양적인 사고를 했었는데 안내책을 읽어보고 우리가 매일 먹는 와인이 저곳을 거쳐서 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언덕을 넘어 내려가니 마을 안쪽으로 길이 연결되고, 거리의 가로수에는 예쁘게 조각 천 들을 이어 붙인 보자기가 둘러져 있고, 만국기처럼 색색의 작은 세모 깃발 줄이 나뭇가지 사이로 이어져있다. 무슨 의미의 깃발 인지는 모르지만 천조각의 화사한 색감들이 순례자들을 응원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언덕을 오르고 내리며 힘들지 않게 사아 군이 시작되는 초입의 뿌엔테 성모 성당에 도착했다. 넓은 평원 안에 오래된 작은 성당은 보수를 했는지 소박하면서도 정갈했다. 붉은 벽돌과 흰 시멘트로 칠해진 벽에 몇 가지 성물과 성화가 있었다. 내부는 빛이 안 들어와서 조금 어두웠지만 그래서 더 경건한 느낌이 들었다. 봉사자가 찍어주는 크레덴셜 스탬프도 받고 마을 안의 기차역으로 이어지는 까미노 표시를 따라 다리를 건너며 기차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보았다.


2년 전 가족들과 왔을 때 우리도 기차를 타고 레온으로 가려고 기차 시간을 기다리며 사아 군의 여기저기를 구경하고 하몽이 들어간 바게트 빵을 점심으로 사서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처음으로 먹어본 하몽이 들어간 바게트 샌드위치가 왜 그리 질기고 맛이 없든지 우리는 결국 다 먹지 못하고 배낭에 넣고 기차를 탔다. 기차에는 넓은 식탁이 좌석과 함께 있어 음료수며 과일 등을 먹을 수 있었다. 함께 타고 가는 현지인들을 보니 점심으로 하몽이 들어간 바게트 빵을 가져와 먹었다. 아이들도, 할머니들도 그걸 먹었다. 우리는 신기해하며 먹다만 바게트 빵을 다시 꺼내어 먹어보았지만 너무 질기고 짭짤해서 다시 봉지에 담아 배낭에 넣어 가지고 다니다 버리고 말았다.


나중에 순례가 끝나고 마드리드로 관광을 갔을 때 마드리드 공원에서 소풍 온 아이들이 먹다가 봉투에 담아 버린 바게트 빵을 휴지통에서 찾아 먹는 아주머니를 보면서 놀란적이 있었다. 처음에는 그분이 걸인 인가했는데 '음식 버리지 않기'를 운동하는 사람들이 일부러 아이들이 먹다 버리는 봉투에 든 빵을 주워 먹는다는 얘기를 듣고서 나의 행동을 반성했었다.


사아 군의 오래된 붉은색 건물들을 보면서 걷다 보니 알베르게가 보였다. 예전에는 대단히 웅장했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았을 삼위일체 성당인데 지금은 공립 알베르게로 순례자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고 있었다.


열려있는 문을 밀고 들어가 보니 천장에서는 붉은 흙이 떨어져 나올 것 같이 낡고 쇠락한 모습에 나무로 된 층계참이며 침대도 순례자들을 괴롭히는 버그들이 있을 것 같은 공포심을 갖게 한다.


마침 호스피탈 레도 아직 없어 우리는 밖으로 나와 다른 알베르게를 찾으러 가는데 까미노에서 몇 번 만났던 젊은 청년이 혼자서 알베르게를 쳐다보고 섰다가 우리를 보고 인사한다.

중세에는 삼위일체 성당이었으나 지금은 순례자를 위한 알베르게로 사용되고 있다.

청년은 다리를 접질렸는지 걷기가 힘들어 현지 병원에 가볼까 아니면 이대로 순례를 포기하고 서울로 돌아갈까 생각 중이라고 말한다. 처음부터 하루에 너무 많이 걷다 보니 무리가 온 듯해서 강화성당 부부를 여기 알베르게에서 만나기로 했다고 한다. 아마도 그분들이 뼈를 맞추고 몸이 틀어진 것을 잘 치료한다는 걸 들은 모양이었다.


까미노를 걸으며 많이 겪게 되는 일이다. 특히 젊은이들이 하루에 30km 이상을 빠르게 걷다 보니 무리해서 발목을 다치거나 발가락에 물집이 잡혀 고생하거나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젊은이도 그런 것 같아 안타까웠다.


그분들을 만나 치료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우리는 또 다른 알베르게를 찾아 계속 걸어가는데 외국인 순례자 두 사람이 우리 쪽으로 지나가면서 다리 건너서 가면 깨끗한 알베르게 있다고, 자기들도 거기에 묵는다고, 자리가 아직 있을 테니 가보라고 한다.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찾아간 알베르게는 호텔을 겸하면서 한쪽에 순례자를 위한 알베르게를 겸해서 운영하는 곳이었다. 깔끔하기는 한데 샤워실이 남녀공용이라 불편하고 주방을 사용할 수 없었지만 버그가 나올 것 같은 곳은 피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순례자 여권에 도장 찍고 계산하고 들어갔다.


저녁은 호텔에서 순례자를 위한 메뉴(10유로)를 준비해 줘서 다행히 잘 먹었다. 여기도 비노(와인)는 물론 메뉴 안에 포함되어 있는데 한 병을 주지는 않고 큰 잔에 가득 따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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