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잠잘 수만 있어도 다행이야

(충분히 걸을 만한 길)

by 구슬 옥

9월 13일 엘 부르고 라네로(El Burgo Ranero) 19km

사아 군의 오래된 주택들 사이로 나있는 까미노 표시를 따라 걷게 되면 이제는 시계탑만 남아있는 산 쁘리미티보(San Primitivo) 수도원과 산 베니토(San Benito) 수도원이 있던 곳을 지나게 된다. 안내책에서는 이 수도원이 동전을 주조할 만큼 부유했었고, 사아 군은 산 베니토 수도원 덕분에 성장했을 정도라고 적혀있다. 당시에는 수도원을 중심으로 부자, 지식인, 예술가들이 이 도시에 자리 잡고 새로운 문화를 퍼뜨렸다고 한다.


이제는 산티아고 순례길이 지나는 곳곳마다 마을의 알베르게며 bar들이 있어 순례자들이 굶주리지 않고 충분히 쉬며 안전하게 걷고 있다. 순례자들을 재워주고 먹을 것을 마련해 주며 번성했던 수도원의 이야기는 아름다운 아치 입구와 작은 타워만 남아 순례자들을 전송하고 있다.

산 베니 또 수도원의 남아있는 큰 아치

사아 군을 벗어나며 까미노 표시가 Canto 다리를 건너지 말고 계속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걷도록 되어있다. 이곳 역시 두 갈래로 나뉘어 갈 수 있는 길인가 보다. 우리는 전통적인 프랑스 까미노 표시를 따라 앞으로 계속 걸었다. 이 길은 걷는 길도 차도도 시끄럽다고 책에는 쓰여 있었다.


2년 전에 가족들이 함께 걸을 때는 책에 쓰인 데로의 길이라면 너무 힘들 것이라는 생각에 사아 군에서 기차를 타고 레온으로 점핑을 했다. 그래서 오늘 걷는 길은 초행길이다. 다행히 차가 별로 다니지 않아 괜찮았고, 포플러 나무가 길게 늘어서 서 그늘을 만들어 주니 시원했다. 그러나 계속되는 고속도로와 고압선이 이어진 길에서는 조금 힘들었다. 그래도 중간에 마을에 들러 쉬면서 간식도 먹을 수 있어 오히려 조금은 안정적으로 걸었다.


자신이 알게 된 정보가 항상 같은 결과를 주지는 않는다는 걸 오늘 걸으면서 느꼈다. 그래도 이만하면 충분히 걸을만한 길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4월의 우기 때라면 사정은 좀 달랐을 수도 있다. 같은 길도 계절에 따라 힘든 길이 되기도 하고, 걸을만한 길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 여전히 추수가 끝나 잔 밀대만 남은 누런 밀밭길과 건기에 까맣게 타버린 듯한 해바라기 밭, 그리고 새롭게 갈아엎어 붉은 흙들이 펼쳐진 밭들이 중간중간 나타날 때는 나름대로 그 풍경에 위로를 받으며 걸었다.


삶의 까미노에서도 어느 때에는 그냥 가볍게 넘어갈 수 있는 일도 때에 따라, 상황에 따라 더욱 어렵게 겪고 넘어야 하는 경우가 있는 것과 같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가는 길이나 삶의 길이나 참 비슷하다.


오늘 머무를 라네로 마을이 보이는 길에 설치한 지 오래되지 않아 보이는 십자가가 세워져 있다.

사각형 대리석 돌에는 2002년에 세운다는 연도 표시가 새겨져 있고, 길게 이어진 대리석에는 야고보 성인으로 묘사된 조각상과 또 다른 성인의 조각상이 있고, 그 위로 약간 둥글리며 모양을 낸 조각상 위에 예수님의 수난하는 모습이 있는 작은 십자가가 있다. 3층으로 만들어진 기단 주변에는 순례자들이 지나가면서 올려놓고 간 돌들이 여기저기 있고, 주위에는 누렇게 흔들리고 있는 갈대 비슷한 풀들이 넓은 밭에 자라고 있다. 스페인어를 모르지만 아마도 순례길을 걷다가 사고나 병으로 돌아가신 분을 기리기 위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우리는 성호를 그으며 돌아가신 순례자의 영원한 안식을 빌었다.


마을로 접어들자 길게 이어진 거리에는 양쪽으로 사설 알베르게를 겸하는 식당들도 많은 것이 까미노에서는 활성화된 마을인 듯하다. 식당들은 순례자들로 북적이고 음식점 앞에 펼쳐진 야외 식탁에도 많은 사람들이 앉아 음료나 와인을 먹으며 즐겁게 얘기를 하는 모습이 우리가 그 긴 길을 걸어올 때는 생각하지 못한 모습들이어서 흥분이 된다.


우리는 우선 알베르게부터 찾아서 방을 배정받기 위해 열심히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가 제법 커 보이는 기부제로 운영되는 알베르게로 들어갔다. 그런데 알베르게 상태가 밖에서는 좋아 보였는데 막상 내부로 들어오니 천장이 오래된 낡은 목조건축물이고 벽도 밀집을 섞어 지은 흙벽돌에 밀집이 비죽비죽 나와있는 모양이 조금 불안하다.

침대도 나무 침대라 순례자들이 무서워하는 버그들이 있을까 두렵다. 그러나 사실 밀집을 넣은 진흙 벽돌집은 이 마을의 전통방식으로 집안을 쾌적하게 하는 장점이 있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그래도 좋은 점은 한방에 8명(이 층 침대 4개 X 2)이고, 우리는 그래도 일찍 도착한 편이라 1층 베드를 배정받은 점이다. 3시 넘어서 도착한 강화성당 부부의 부인은 발목 인대가 늘어나 걷는 게 힘들어 보여 안타까웠다. 알베르게에 자리도 없지만 낡아 보여서 그런지 그분들은 더 좋은 알베르게를 찾아서 간다고, 우리도 같이 가자고 해서 짐은 둔 채로 따라서 가보았는데 알베르게는 거의 비슷한 수준들이고 그것도 빈자리가 없어서 우리는 그대로 기부제 공립 알베르게에 남기로 했다. 다행히 Wi-Fi는 잘된다.


저녁은 알베르게 맞은편에 있는 음식점에서 순례자 메뉴를 먹었다. 우리의 옆 좌석에 얼마 전 오르데가 수도원 알베르게에서 만났던 프랑스 할아버지가 앉아있었다. 냄비까지 들고 다니시는 키가 크고 체격이 좋은 분인데 파란 티셔츠에 노란 까미노 화살표가 그려진 옷을 입고 계셨다. 지난번 사아 군의 알베르게에서 쉴 때도 만나서 남편과 담배도 함께 피우셨었다.


그분은 자신의 집에서부터 걸어서 까미노를 출발했다고 하시며 우리처럼 산티아고 콤포스텔라까지 가시고 또 피니스테레 까지도 가신다고 하셨다. 그곳이 자신이 사는 곳의 지명과 같은 곳이라고.


서로 유창하지는 않지만 집중해서 들으면 그 사람이 무엇을 말하는지 대강 이해가 되기 때문에 우리는 그렇게 맛있는 와인을 곁들여 유쾌한 시간을 가졌다.


슈퍼 가서 내일 먹을 물과 간식거리를 사 가지고 알베르게로 돌아오니 1층 로비가 어수선했다. 늦게 도착한 알베르게에는 침대가 없고, 지친 순례자는 더 이상 걸을 힘이 없으니 호스피탈 레는 1층 로비 한쪽에 매트리스를 깔아 들어오는 순례자들을 받아준 것이다. 그나마 샤워하고 잠을 자고 갈 수 있어 지친 순례자들은 그것도 고마워했다.


9월은 4월과는 다르게 유럽 사람들의 휴가기간과 맞물려서 산티아고 길을 걷는 사람이 더 많다 보니 허름한 알베르게도 잘 수만 있으면 감지덕지한 것 같다. 일찍 들어와서 더 좋은 알베르게를 찾으려 했던 내가 살짝 부끄러워졌다. 에구~ 오늘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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