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미리 포기하거나 겁내지 말자

(허그는 무서워~)

by 구슬 옥

9월 15일 레 온(Leon) 19.5km

오늘은 까미노에서 만나기 힘든 대도시 레온까지가 목적지다. 마을을 나서 고속도로와 평행하게 걷다가 중간에 뽀르마(Porma) 강물 위의 비아 렌떼(Villarente) 다리를 건너 마을로 들어섰다. 다리는 약간 휘어진듯하고 둥근 아치 모양이 길게 이어져있다.


긴 세월을 지나며 여러 번 보수를 했는지 아치의 모양도 조금씩 다르다. 마을 이름도 다리 이름과 같이 뿌엔테 데 비야 렌떼이다. bar에 들러 간단한 아침식사를 하고 까미노 표시를 따라 마을을 나왔다.


다시 이어진 고속도로 옆길을 걸으며 조금 가파른 오르막도 오르고, 마을을 지나고 공장지대를 지나면서 뽀르띠요 언덕의 정상에 도착하니 저 멀리 레온 시내의 모습이 보인다. 이제 여기서 6km 정도를 걸으면 도착할 것이다.


해발 900미터에서 800미터 아래로 서서히 내려가는 내리막길은 차도 옆 보도를 걸어내려가야 한다. 차도 위를 속도감 있게 지나가는 차량이 조금 부담되었지만 조심하며 내려왔다.


내리막을 걸을 때는 오히려 무릎의 힘이 빠질 수도 있어서 우리는 특히 내리막길에서는 무릎보호대를 하고 걷는다. 그래서 그런지 아직은 무릎이 아프다거나 하지는 않아서 다행이다. 서로 조심히 천천히 걸으라고 챙겨주면서 평지로 내려와 레온을 들어가기 전에 있는 까스트로(Castro) 다리 마을에 도착했다.


초등학교 운동장에 쉬는 시간 인지 아이들이 나와 놀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계속 걸어갔다. 광장 같은 곳에 '시민을 보호하는 112'라고 써진 천막에서, 구급요원 조끼를 입은 나이 든 아저씨들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안내문 같은 걸 나누어주면서 우리에게도 한 장을 주었다.


스페인어로 설명을 하시니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머리를 끄덕이고 받아 들고 긴 돌다리가 있는 곳을 지나니 원형 교차로가 나오고 레온 시가지가 보인다.

교차로 뒤로 보이는 레온 시가지

중세 시대에 레온처럼 많은 성당과 수도원, 가난한 이를 위한 병원이 있었던 도시는 없었다고 안내책에서 읽었다. 그만큼 융성했던 마을이니 둘러보아야 할 곳도 많이 있을 것 같은 설렘을 갖는다.


교차로 앞에서 까미노 표시는 두 개로 갈라진다. 우리는 그대로 직진하여 구시가지의 오랜 시간을 보여주는 낡고 허름한 성벽과 사람들이 지나간 흔적들로 반들반들하게 윤이나 있는 돌과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길을 걸어 수도회 까르 바 할라스(Carbajalas) 수녀님들이 운영하는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레온 구시가지로 들어가는 성벽 길

오늘은 조금 일찍 도착했는지 2층 방의 1층(나) 2층(남편) 침대를 배정받았다. 침대 정리하고 빨래해서 마당 건조대에 널고 들어오니 강화성당 부부가 막 도착해 우리 침대 근처를 배정받아 들어와 있었다.


걷는 속도가 달라 처음 까미노를 시작할 때 만났던 사람들을 거의 못 만나고 있는데 이 부부는 우리처럼 두 달의 시간을 갖고 까미노를 걷고 있어 이렇게 가끔 만날 수 있다.


같은 숙소에서 오랜만에 만나 반갑기도 했고, 부인이 다리가 아파서 힘들지 않았는지 인사를 나누다가 그분들은 아무래도 버그에 물린 것 같다고 하면서 여기저기 불긋불긋한 반점들을 보여주었다. 남편이 '버그에 물렸으면 가방이랑 옷이랑 모두 빨고 어떤 조치를 해야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염을 안 시킬 텐데... ' 하는 걱정을 했다.


그 소리를 들은 홍 단장(강화 부부 중 남편)이 문제없다는 걸 보여주려는 듯 다가와 허그하려고 하자 예민한 남편이 기겁을 하고, 정색하며 화를 냈다. 홍 단장도 무안한 지 물러난다. 갑작스레 일어난 일에 우리도 당황하고 다른 순례자들에게 피해가 갈까 봐 얼른 밖으로 나왔다.


몇 년 전에 왔을 때도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이곳 알베르게에 묵었었다. 그때에는 기차를 타고 레온 역에 도착하여 까미노 표시를 보고 알베르게를 찾아 걷고 있는데, 독일계 할아버지가 '부엔 까미노' 하면서 자신도 젊을 때 산티아고까지 순례했다며 알베르게를 알려준다고 따라오라고 했다. 그렇게 그분을 따라 이리저리 길을 건너면서 수도원 알베르게에 왔었다. 그 할아버지는 우리와 알베르게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자신의 집으로 가셨다.

그때 우리는 가족실이라고 따로 마련해 준 곳에서 머물면서 수도원 성당에서 저녁 미사도 참례하고 수도원과 마당을 함께 쓰고 있는 호스텔 같은 식당에서 일반적인 순례자 메뉴가 아닌 맛있는 요리를 순례자 가격으로 먹었던 기억이 새롭다.


그때는 처음으로 까미노를 걷다 보니 안내책에 힘든 구간이라고 되어있으면 그 구간은 걷지 않고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해 이동했다. 4월이라 수시로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걷던 때라 살짝 두려움이 많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비가 거의 오지 않는 건기다 보니 생각만큼 힘들지 않고 걸을 수 있었다. 걷기 전에 마음을 단단히 먹은 탓도 있고, 까미노를 걷는 시간을 넉넉히 잡고 시작해서 하루에 걷는 구간을 20km 내외로 하다 보니 무리 없이 다 걸을 수 있는 것 같다.


무슨 일이든지 상황이나, 시간이나, 체력 등 여러 가지 변수들에 의해 많은 것들이 결정되는 것을 다시 깨닫는다. 안내책이 도움이 많이 되지만 너무 그것에 의존해서 미리 포기하거나 너무 기대하거나 하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는 생각이 든다. 삶의 까미노에서도 마찬가지로.


우리는 레온 시내의 구시가지 안에 있는 주택가와 신시가지 시내 이곳저곳을 돌아보고서 레온 대성당의 저녁 7시 미사에 참석했다. 대성전으로 이어지는 대성당의 길고 넓은 회랑을 걸어가며 높은 천장 위의 아름다운 건축양식도 보고,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젊은 수진부부를 만나 함께 대성전으로 들어갔다.


수진부부는 갖고 온 짐이 많아서 걸을 때 매우 힘들었는데 일부 짐을 정리해서 한국으로 부치고, 걷는 것도 탄력이 붙어 잘 걷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일정이 많이 남지 않아서 앞으로는 점핑을 해서 걷고 일찍 산티아고 콤포스텔라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했다. 이제 까미노에서 수진 씨 부부를 몇 번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수진 씨 부부와 함께 대성당으로 들어가면서

대성전 안은 순례자들도 많았지만 다른 도시에서 와는 달리 사람들로 꽉 찼다. 높은 천장의 아름다운 아치 양식과 빛을 받은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가 매우 아름다웠다. 중세시대의 신을 향한 예술적 감성과, 그 시대 스페인의 융성한 사회 모습을 보여주는데 부족함이 없다는 느낌이었다. 미사는 5~6분의 사제가 집전을 함께 했고 성가도 훌륭했다.


생각해 보니 오늘이 전례력으로 고통의 성모 축일이고 성모 신심이 워낙 깊은 유럽인들이라 미사에 참석한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다.

매일 길을 걷다 보니 요일의 개념이 없고 날짜의 개념도 희미해진다. 짧은 기록이나마 남기려고 날짜를 적는 것이 유일하게 그 날짜를 기억하는 노력이다.


미사 후에 저녁을 먹기 위해 여기저기를 돌아보다가 맛집인 느낌이 오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역시 괜찮았다. 남편이 고기가 먹고 싶다고 해서 생고기와 추천 요리 한 가지 그리고 비노 2잔과 맥주 1잔 하니 62.40유로다. 순례자 메뉴를 우리가 3번 먹을 수 있는 금액이다. 남편이 망설이는 게 안쓰러워 내가 과감하게 주문했다. 고기는 애벌로 구워서 나왔는데 뜨겁게 달군 돌판 위에 올려놓으니 잘 익어 맛있게 먹었다.

지난번에 둘째 아들과 함께 왔을 때 이 식당을 왔었어야 하는데 우리끼리만 이렇게 맛있게 잘 먹어서 둘째 아들과, 함께 왔던 작은 누나한테 미안한 생각이 든다고 와인 한잔에 벌써 술기가 오른 남편이 진심 어린 속마음을 말했다.


처음이고 인원도 4명이다 보니 제대로 맛있는 걸 사 먹지 못하고 그저 대부분이 비슷한 재료의 순례자 메뉴를 할 수 없이 먹었던 기억이 새롭다.


여행을 할 때는 다시 그곳을 가기가 어려우니 그 나라의 맛있는 음식도 먹어보고 꼭 둘러보아야 할 곳도 보는 것이 우선인데 그때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경비를 아껴 쓰는 것이 먼저였다.


순례자 메뉴도 한두 번 먹는 것으로는 너무 훌륭한 음식인데 매일 거의 비슷하다 보니 싫증이 날 때도 있다. 그러나 그 가격으로는 그만한 것이 없다 보니 갈수록 주방이 없는 마을에서는 어쩔 수 없이 먹어야 했다. 그런데 오늘은 한 달 동안의 부족했던 영양분과 맛을 흠뻑 흡수하고 입도 즐거워 행복한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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