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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툰남편 김광석 Sep 20.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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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바다에 내가 갈 곳 하나 없으랴, 출발만 하면 발 디딜 곳은 많다

집을 떠나면 고생이지만, 집에 있으면 누워있을 뿐이다


이번 추석은 쉬고 싶었다. 아무데도 가고 싶지 않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날씨도 나를 도와서 흐려주니 사진을 찍으러 나가고 싶은 욕심도 없었다.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서 출근 준비를 하고, 밤 11시가 되어서야 집에 도착하는 일상을 몇 개월째 지속하니 몸도 마음도 충전이 필요했던 것 같다.


오랜만이었다. 묵묵하게 내 옆을 지켜주는 시간, 빠르게 스쳐가지 않고 1분 1초가 "또각또각" 속삭이며 온전히 느껴지는 시간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학업, 취업, 업. 3대 업의 압박 속에서 충분히 즐기지 못했던 여유였다.


그런데 이번 연휴는 그 모든 것들을 나에게 선물했다. 혼자 있을 자유, 누워 있을 권리, 땅 또는 침대와의 속삭임. 이 모든 것들이 나를 회복시켰다.




어서 너를 놓아줘

나는 게으르지만 게으르지 못할 팔자다. 침대에 누워있으라면 몇날 며칠이고 누워있을 수 있지만, 파란하늘에 쨍쨍한 태양이 뜨면 카메라를 들고 나가야만 하는 병에 걸렸다.


조금 더 시간과 함께 누워있고 싶은 마음이었으나, 야속한 토요 하늘은 나를 돕지 않았다.

<구름 한 점> 김광석 2016
초밥을 참 좋아하는데 초밥 같이 보이기도 하고, 방금전까지 침대에 누워 있던 내 모습 같기도 하고, 만화속에 나오는 근두운 같기도 하다. 뭐가 되도 좋은데 초밥이면 제일 좋겠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이 피어 있었다고 표현하고 싶었지만, 구름 한 점이 하늘에 그것도 중앙에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는 하늘이었다.


9월의 첫번째 주말에 찾아왔던 '가짜 가을'보다는 아니지만, 금쪽 같은 기회였다. 이런 날에 사진을 찍지 않으면 사진의 신인 '포토니소스'가 날 저주할게 분명했다.


마침 아버지께서도 낚시대를 손질하고 계셨다. 모든 상황과 여건이 '어서 너를 놓아줘!'라고 소리치는 것 같았다. 정들었던 침대와 TV와 PAPER와 이별을 고하고, 나갈 준비를 했다.




출발이 어렵다 그 뒤로는 흐르는대로 가면 된다

<청명> 김광석 2016
몇 해 전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수평선이었는데, 다리가 놓이고 땅이 간척되면서 거대한 건물까지 들어섰다. 인간은 정말 위대하다는 생각을 하며 가는 도중에 내가 달리고 있는 도로가 '방조제'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청록색. 사진에 더 다양한 느낌을 주기 위해서 이것 저것 고민하던 차에 CPL필터를 삿다. 녀석을 장착하고 담는 푸른 하늘은 처음이었다. 날씨가 지나치게 맑아서 하늘 색이 바래지는 현상을 CPL필터가 잡아준 덕분에 고운 빛깔을 잡아낼 수 있었다. 새 필터의 신고식에 이렇게 좋은 날을 만나다니, 포토니소스가 나를 돕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하늘과 바다> 김광석 2016
태평양으로 나가 잠수를 하면 아주 깊은 곳에 액체 가스가 흐르는 바다 속 바다가 있다고 한다. 하늘에도 서로 다른 공기가 흐르는 하늘이 층층이 있는것 같다.


바다로 갈 수록 하늘의 푸른 색은 점점 짙어졌는데, 바람이 만들어 놓은 구름의 경계선을 보니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해풍이 도시의 먼지와 구름을 육지로 밀어 넣 동남쪽에서 불어오는 태풍의 기운이 그를 다시 바다로 밀어 넣으니, 인천에 있어야 할 모든 먼지와 구름이 서해 앞바다에 걸쳐 있었다. 그 모습을 찍어 뒤집으니 마치 바다같은 하늘 위로 또 다른 하늘이 있는 느낌이었다.


<일동차렷> 김광석 2016
송전탑은 항상 이 자리에 서 있다. 이 섬으로 오는 길이 발전하고 또 발전해서 매년 다른 모습을 보여줌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선 자리는 변함이 없다. 나는 이 변함없는 모습이 너무 좋다.


섬에 들어서니 육지와 발전소 그리고 섬을 잇는 송전탑들이 열을 맞춰 서 있었다. 이곳에 올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축 늘어진 전깃줄을 걸친 전신주들의 대열은 섬에 방문하는 손님들을 맞이하러 나온 근위대의 모습 같다.


<당신의 여행> 김광석 2016
비행기는 그냥 좋다. 그저 바라만 봐도 좋다. 저 안에 타고 있으면 더 좋겠지? 당신의 여행이 마냥 즐겁기를 바란다.

영종도에서 막 떠오른 비행기가 서쪽을 향해 비행하고 있었다. 고작 육지에서 섬으로 발걸음을 옮기는데도 이만큼 큰 결심이 필요했는데, 두 발을 땅에서 떼고 수 백, 수 천 킬로미터를 날아가는 그들의 결심은 얼만했을까? 곧 태양 속으로 빨려들어갈 것 같은 모습이 마냥 부러웠다.


<뮤즈의 음악노트> 김광석 2016
며칠 전에 전깃줄이 그린 오선지를 보고 감동했었는데, 이곳에는 뮤즈가 사는 것 같다. 여기에 걸친 구름은 어떤 모양을 할지 궁금하다.


그냥 출발했을 뿐인데, 그냥 하늘만 봤을 뿐인데 그동안 쌓여 있던 스트레스가 확 날아가버렸다. 해풍 덕인지 태풍 덕인지 올 한해 동안 보았던 하늘 중에서 가장 푸른 하늘을 보았으니 그럴만도 했다. 아침에 귓가에 속삭이던 '너를 놓아줘'라는 말을 따른 덕을 톡톡히 보았다.




방조제를 건너고 다리를 건너 도착한 곳은 사람이 채 열명도 보이지 않는 한적한 바닷가였다. 파도 소리 외에는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 적막한 바다는 들떠 있던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 줬다.


푸른 하늘을 향해, 타오르는 태양을 향해 추를 던지는 짜릿함은 물고기를 잡아 끌어당기는 느낌 만큼이나 즐겁다. 어렸을 때는 언제 올지 모르는 물고기를 기다리느니 추를 열 번, 백 번 던져보고 오는게 나아서 미끼도 달지 않고 계속 던졌다.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배는 줄에 묶여 있는 강아지를 연상케 한다. 넓은 들판을 눈 앞에 두고도 뛰어 놀지 못하고 낑낑거리는 강아지처럼 배는 파도가 칠 때마다 '철썩'이나 '덜컹' 같은 소리를 내면서 자신의 몸을 바다로 던졌다. 바다도 이 마음을 아는지 온힘을 다해 물을 당겼지만, 단단하게 묶인 밧줄은 배를 놓아주지 않았다.




나를 묶은 밧줄


집을 나서니 좋다. 차에 앉아 있어야 하는 시간이나, 뙤양볕 아래서 받아야 하는 열이 머리를 지끈거리게 만들었지만, 마음은 '머리야 너는 아파라 나는 즐거울란다'하면서 날뛰고 있었다. 부모님께서 담은 사진 속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나'의 표정은 분명히 웃고 있었다. 왼쪽으로 뛰었다가 오른쪽으로 뛰었다가, 각종 장애물도 이리저리 넘어 다니는 모습은 유격훈련을 방불케 했지만 나는 분명히 즐거워하고 있었다.


방바닥과 침대에 누워서 TV를 바라보면서 자다가 깨었다가 하면서 또각또각 흘러가는 시간과의 대화도 즐거웠지만, 이 순간의 즐거움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나는 게으르지만 절대 게으를 수 없도록 태어난게 분명했다.


<나를 놓아주세요> 김광석 2016
밧줄에 묶인 배의 절규는 물이 들어오고 나가는 5시간 동안 끊이지 않았다. 결과는 이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던 밧줄의 승리였다. 결국 물은 배를 놓고 제 갈길을 가 버렸다. 배는 홀로 남아 땅에 내려앉아 하염없이 얕아지는 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물이 빠지고 덩그러니 남은 배의 모습을 보니 나의 지난 연휴가 생각났다. 배를 붙잡고 있는 밧줄처럼 내 양 어깨를 짓누르던 '일상이 남겨준 피로'가 느껴졌다. 저렇게 넓고 자유로운 바다를 놔두고 일상이라는 녀석이 주인 노릇을 하면서 묶어놓은 피로 따위가 나를 붙잡아 두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아 돌이켜보니 여러 친구들의 가면을 쓰고 세상은 날더러 '나와'라고 외치고 있었는데, 썰물처럼 철썩철썩 나를 끌어 당기고 있었는데 나는 왜 나가지 않았던 것일까? 그들 중 하나를 따라갔으면 여수고 전주고 내가 가고 싶었던 곳들의 땅을 밟고 있었을텐데 말이다.


그렇다고 이번 휴일이 지루했던 것은 아니다. 타오르는 태양 앞에서 그토록 열심히 뛸 수 있었던 것은 일상이 남겨놓은 피로와 게으름을 모두 침대에 털어놓고 나온 덕분이다. 침대와의 시간은 분명 이로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 연휴에는 이 사진을 떠올리며 밧줄을 풀 것이다. 비록 나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 녀석이 '일상'이라는 이름을 갖고 나를 묶어둘지라도, 나는 녀석을 '게으름'의 한 종으로 분류하고 뿌리치겠노라 다짐한다.


<Close> 김광석 2016

낚시를 하고, 사진을 찍다보니 시간이 훌쩍 흘러버렸다. 지난 삼일 내 곁을 지켜주던 시간이 낚시와 사진 앞에서는 공기를 가르는 전투기처럼 빠르게 지나가버렸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까지만 해도 머리 꼭대기에 있던 태양은 눈 앞의 바다를 물들이며 "이제 낚시대를 놓고 나를 담을 시간이야"라며 포즈를 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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