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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툰남편 김광석 Sep 07. 2016

고개만 들어도 여행은 시작된다

책, 스마트폰, 발등에는 여행이 없다.

<세상세상훔쳐보기> 김광석 2016

I want travel

일상에서 나는 무엇을 보고 살아가는가? 장교생활을 마치고 취업을 준비하는 동안, 자꾸만 한눈을 팔던 내게 던진 질문이다. "나는 무엇을 보고 살아가는걸까?", "나는 왜 그걸 보고 있을까?"


나는 쉬지 않을 때는 광고쟁이의 꿈을 위해 광고를 보고, 쉬는 시간에는 대부분 책을 보고 있었다. 책을 보지 않을 때는 영화를 봤다. 영화도 보지 않으면 다큐를 봤다. 책과 영화 그리고 다큐의 주제는 늘 같았다. 여행, 나는 종이와 TV를 통해 여행을 보고 있었다. 나의 여행이 아닌, 남의 여행을 말이다.


여행을 담은 텍스트와 화면에선 항상 같은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남들이 잘먹고 잘놀고 와서 잘 적어둔 기록이었다. 실패의 경험은 들어있지 않고, 오직 두근대는 모험과 성공만이 가득하다. 실패라고 써 놓은 고난은 내 생에는 일어날 가능성이 희박해서, 불꽃을 내뿜는 드래곤이 우리집 옥상에서 나를 찾는다는 말처럼 멀게만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허풍(물론, 대부분의 작가들의 이야기는 진정성이 있다. 가끔 허풍이지만, 당시의 난 허풍을 보고 있었으므로...)을 나는 내 안에 쑤셔넣고 있었다.


책꽂이에 꽂힌 책 10권중 7.3권은 여행책이 차지했고, 나영석 PD가 만든 '꽃보다'시리즈와 '삼시세끼'부터 '걸어서 세계속으로', '내셔널지오그래픽' 같은 다큐를 볼 수 있는 우리집 IP-TV는 내 가장 친한 친구였다.


그렇게 남들의 여행을 훔쳐보고 주워담는 사이에 여행은 내게 꿈과 같은 존재가 되어 있었다.



<발등찍기> 김광석 2016

I see bal-deng

학교에 가는 길에 여행책을 읽고 있었다. 저자는 역시 멋진 여행을 하고 있었다. 저자는 러시아를 횡단하는 기차를 타고 있었다. 사흘만에 육지를 밟았다는 그는 새 신을 샀다면서 닳고닳은 신발을 벗어들고 러시아인들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의 사진을 끝으로 장이 바뀌었다. 장이 바뀌면서 몰입에서 벗어났다.

나는 지하철에 타고 있었다. 그가 사흘 동안 탄 시베리아 열차보다 멋이 없었다. 나는 내 발등을 봤다. 하얀색이지만 누렇게 변한 나이키 운동화였다. 나름 멋지게 낡아가고 있지만, 그의 신발에 비하면 볼품없는 '새것'이었다.


신발을 계속 봤다. 보다가 사진으로 찍었다. 벗어서 사람들을 배경으로 찍어볼까 했지만, 그러진 않았다. 내가 서 있는 것은 러시아가 아니라, 러시아워의 지하철이었으니까.


책 속의 네모난 사진과 책 밖의 내 발은 1m도 안되는 거리에 있었지만 달랐다. 이상과 현실의 차이였다. 이상과 현실, 시베리아 횡단열차와 1호선 지하철. 달라도 너무 달랐다. 나는 발등을 보고 또 봤다. 나의 발등을 계속 봤다.


내 눈이 비추는 화면을 궁금해할 누군가를 향해 입술이 내레이션 뱉었다. I see bal;deng.




<Travel> 김광석 2016

특별하지 않아도 여행

책을 접고, 지하철에서 내렸다. 시베리아 횡단열차에서 내리는 기분으로 힘차게 내렸다. 사실 내리려고 내린건 아니고, 환승이라 내렸다. 그치만 환승을 하지 않고 그대로 방향을 틀었다. 멋지게 시작한 도전이면 좋았겠지만, 사실 갈곳을 잃어서 그랬다. 갈곳이 없어서 발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걸었다. 발등을 보고 있던 그 자세 그대로 머릿속엔 사념이 가득한채 걸음을 나아갔다. 그러면서도 발걸음엔 한 발 한 발 힘을 주어 걸었다. 방향이 정해져 있지 않지만 도전이라는 생각으로 걸었다. 그렇게 한 시간 가량을 걷다가 목이 아파서 고개를 들었다.


고개를 들었던 자리에서 나는 여행을 했다. 비록 러시아의 거대하고 웅장한 건물 앞에 선 것이 아니라, 한국의 한국에 의한 한국을 위한 건물들 사이였지만 마음만은 지구 반대편에 와 있는 기분이었다.


그 날, 첫 걸음을 떼고 4개월이 흘렀다. 나는 이제 남의 여행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그들이 자신만의 라이프 스타일을 위해 비행기나 크루즈,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떠났듯이, 나는 나만의 여행을 위해 지하철에서 내린다.




그날의 여행이 궁금하면

https://brunch.co.kr/@shinabro/81


나의 여행이 궁금하면

https://brunch.co.kr/magazine/travelb




<바닷말> 김광석 2016


<로보쿡> 김광석 2016


<오늘은 어떤 여행을 하셨나요?> 김광석 2016


<무제> 김광석 2016


<Coke is Sunset> 김광석 2016


구독해도 안잡아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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