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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툰남편 김광석 Nov 29. 2016

차벽으로 끊은 소통, 화벽으로 잇다

화벽 : 꽃 스티커와 촛불의 불꽃으로 만들어진 벽

벽의 본질

그 옛날, 진시황은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해 '만리장성'을 쌓았다. 훗날 칭기스 칸은 더 많이 갖기 위해 타국의 성벽을 허물었다. 벽이란 그렇게 쌓이고 또 그렇게 부서진다. 벽을 쌓는 사람도, 벽을 부수는 사람도 결국 자신이 바라는 것을 얻기 위해 쌓거나 부술뿐이다. 벽을 쌓는 것과 부수는 것에는 이를 제외한 어떠한 이유도 없다. 그것이 벽의 본질이다.


곧은 것은 부러지고, 단단한 것은 깨어진다

나는 고등학교 때 이과와 문과 중 문과를 택했다. 자연스럽게 물리나 화학 같은 과학적 지식은 아주 얕게 형성됐다. 무지는 순의 밥이라고 했던가? 과학적 지식이 부족한 만큼 과학적으로 순수했던 나는 '다이아몬드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물질'이라는 말에 '다이아몬드는 망치로 내려쳐도 부서지지 않는다'라는 내기에 천금 같은 5천 원을 걸었다. 결과는 패배였다. 내기의 승리를 판단하기 위해 찾아낸 유튜브 영상 속에서 웬 백인 친구들이 망치질 한 방에 다이아몬드를 산산조각 내버렸기 때문이었다. 나에게 승리한 친구는 말했다. "아가야 곧으면 부러지고, 단단하면 깨지는거 모르냐?"


단단한 벽

지금 우리는 벽과 마주하고 있다. 처음엔 바리케이드였다가 어느새 컨테이너로 변하더니 최근에는 버스로 변한 벽이다. 누군가의 필요에 따라 생겼다가 사라지고, 또 모양까지 바꾸면서 점점 단단해졌다. 단단한 주제에 모습은 자꾸 바뀌니 실체는 보이지 않았다. 어디부터 펼쳐져서 어디까지 쌓여있는 것일까?


어떻게 생긴 벽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벽은 벽이니 이 벽의 본질은 다른 벽과 같을 것이다. 그렇다. 이 벽도 누군가가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을 지키기 위해 벽을 쌓았다. 벽을 쌓은 이는 벽을 허무려는 사람들의 특성에 맞춰 이리저리 벽을 고쳐쌓고 있었다. 그 옛날 진시황이 수정이 불가능한 돌벽을 광범위하게 쌓았던 것에 비하면 그 보다 더 똑똑한 사람인 것 같다.


진시황의 벽과 다른 점은 이 뿐만이 아니었다. 영토의 바깥으로 쌓았던 진시황의 벽과 달리 이 벽은  안으로 쌓아져 있었다. 안으로부터의 영향력을 차단하려는 의도였다. 그들은 이 벽을 '내부의 적'으로부터 시스템을 지키기 위해 쌓았다고 했다. 처음엔 그 말을 그대로 믿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벽을 쌓은 이들의 행동은 의심스러웠다. 적이 아닌 이들에게도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적을 막기 위함이 목적이라면서 모든 것을 막는 모습은 마치 자신들을 제외한 모든 이를 적으로 간주하는 것 같았다. 독재국가나 왕정국가라면 이해할 수 있는 모습이지만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아니나다를까 긴가민가 갈팡질팡하던 법원도 벽의 방향이 잘못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바리게이트였던 벽이 컨테이너벽이 되고 그것이 다시 차벽으로 바뀐 지금 법원의 명령에 의해 막혀 있던 문은 가볍게 열렸다.

차벽이 걷힌 자리엔 아무것도 모이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무언가에 막혀 있었다. 실체가 없다 없다 했더니 진짜 없었다. 뭐라고 불러야 할 지 가늠조차 할 수 없는 그 무언가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았다. 벽을 쌓은 이들에게 무려 세 차례나 그것이 무엇인지 발표할 기회를 주었지만 그들은 아직도 밝히지 않았다. 우리는 아직도 그 벽을 무엇이라 불러야 할지 모른다. 그것을 권력이라고 불러야 할 수도 있고, 돈이나 법 혹은 비리 따위로 불러야 할 수도 있다. 어쨌든, 뭐라고 부르게 되든, 일단 저 벽을 허물어야한다. 보이지 않는 벽을 드러내고 돼지 같은 권력이 그 뒤에 숨겨두었던 우리의 것들을 되찾아와야 한다.


새로 쌓은 벽

지난 11월. 우리는 조금씩 정체모를 벽을 허물고 있다. 무너진 벽의 빈자리에는 새로운 벽을 올라가고 있다. 권력이 숨겨 두었던 국민들의 권리를 지킬 벽이다. 촛불로 기둥을 세우고 꽃으로 면을 채웠다. 그래서 '화벽'이다. 화벽은 바리게이트나 컨테이너, 버스처럼 크고 단단한 벽도 아니고, 심지어 누군가의 말처럼 '바람이 불면 사라질' 수 있는 벽이다. 그래서 처음인 조금 불안했다. 정말 바람에 무너지면 어쩌나. 힘들게 되찾은 것들이 쉽게 무너져 사라지면 어쩌나...


다행히도 벽은 무너지지 않았다. 무너지기는 커녕 점점 더 크게 번저오르고 있다. 콧바람에도 흔들리던 촛불은 어느새 누구도 뚫을 수 없는 불의장벽이 됐다. 벽이 발하는 빛은 어둠 속으로 은밀하게 숨겨 쌓여진 벽을 드러냈다. 우리는 이지 저들의 썩은 벽을 더 빨리 드러내고 더 빨리 부술 수 있게 됐다.


두 개의 화벽, 민주주의를 지킨다.

물론, 꽃으로 된 벽도 벽이고 촛불로 된 벽도 벽이다. 이들 또한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해 쌓인 벽이며, 기존의 벽처럼 상호 간에 전달되어야 할 무언가를 차단하는 역기능을 할 것이다. 또 불꽃의 특성과 닮아 통제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 엉뚱한 곳에 옮겨간다면 큰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간절하다. 올 겨울, 혹독한 추위가 예상되는 이 겨울에 우리를 해칠 수 있는 천적과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지키기 위해서 이 벽은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가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그래서 우리가 우리의 삶과 이 나라의 주인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행렬의 시작> 김광석 2016
한 개, 두 개 모인 불꽃이 행렬을 이루고 흘러간다.
개개인이 들고 있는 불꽃은 서로 합쳐지며 화벽이 되었다.


<생중계> 김광석 2016
불꽃 속에 사람들이 있고, 사람들 속에 불꽃이 있다.
중계차 플래카드에 적혀 있는 문구가 그들의 불꽃이 왜 타오르고 있는지 보여준다.


<칼의노래> 김광석 2016
성웅의 눈물은 보이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눈물을 칼 속에 숨겨 울었다. '징징징' 울어대는 칼을 붙잡고 달래며 왜인으로부터 이 나라를 지켰다. 그가 싸우던 순간에도 그의 주변에선 백성들이 모여 울었다고 한다. "장군님, 왜놈들로부터 우리를 살려주세요."하면서 말이다. 백 년이 지난 오늘도 국민들은 그의 발아래로 모여든다.


<초의노래> 김광석 2016
'사락사락' 초가 운다. 불어오는 바람을 견디기 위해 자신을 조금씩 더 태워가며 운다. 그 눈물이 컵으로 흐르고 다시 고여 쌓인다. '징징징' 울어대던 장군의 칼과 '사락사락' 울어대는 국민의 초가 닮아있다.


<촛불을 켜다> 김광석 2016
벽을 쌓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다. 흩날리는 눈발과 몰아치는 강풍 속에서 옹기종기 모여 있는 사람들은 서로의 체온을 보존하며 불꽃을 키워간다.


<화벽을 쌓다> 김광석 2016
'움직여야 할 때 움직이지 않아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다'라는 문구 앞에서, 불꽃들은 화려하게 타오르고 또 현란하게 움직이며 벽을 쌓는다. 부정부패로부터 우리들의 권리를 지켜줄 거대한 벽이 된다.


<역사에 기록될 물결> 김광석 2016
세종대왕상 뒤편에는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이 빛을 발하고 있다. 역사를 기록해야 할 박물관 앞에서 역사가 펼쳐지고 있다. 먼 훗날 이날의 기억과 이날의 목소리와 이날의 사진들이 저 박물관 안에 기록되겠지.


<세종대왕상> 김광석 2016

이순신 장군의 발아래 모여 있던 사람들은 세종대왕의 발아래에도 모여 있다. 백성을 위해 자신의 권위를 내려놓고, 백성을 위해 스스로 헌신했던 성군만이 이 순간을 묵묵히 지켜보고 있다. 국민들이 쌓은 벽이 보이지 않는 벽을 허물고 더 넓어지는 광경을 말이다.


<화벽이 된 차벽> 김광석 2016
차벽엔 스티커가 붙어 꽃벽이 되었고, 그 앞으론 촛불이 흘러 또 한 겹의 벽을 쌓고 있다.


<화벽> 김광석 2016
마침내 두 개의 벽이 완성됐다. 우리가 쌓은 이 벽이 우리를 지켜줄 것이다.


<150만 분의 1> 김광석 2016
나는 광화문 앞에 흘렀던 150만 개의 촛불 중 하나다. 나는 대단한 권력자도 아니고, 값비싼 금수저도 아니다. 나는 LED 촛불이나 아로마 캔들, 양키캔들은커녕  그 흔한 양초 한 개도 들고 있지 않았지만, 150만의 주변을 서성이며 그들이 쌓아가는 벽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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