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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툰남편 김광석 Jan 24. 2017

미생도 쉴 자격이 있을까?

달렸지만 미생이다. 미생이지만 쉬고 싶다. 미생도 쉴 자격이 있는가?

그런데도 나는 아직 미생이다

  지난 1년, 지인들에 "너는 왜 그렇게 바쁘냐"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놀기 좋아하고, 사람 만나길 좋아하는 내가 얼굴을 보여주지 않으니 하는 말이었다. 듣고보니 나는 참 바빴다. 대기업 사원도 아니고, 정규직도 아닌데 참 많이도 바빴다. 평균적으로 주 5일 중 4일을 야근으로 보냈고, 주말에는 주말출근과 투잡 등 다양한 업무를 수행했다. 물론, 열심히 한 만큼 다양한 경험을 했고, 스스로 보기에 실력도 조금 성장했다.


 그러나, 내면의 성장과 달리 현재 내가 서 있는 위치는 작년 이맘 때와 다르지 않았다. 작년 이맘 때 나는 작은 회사에서의 인턴을 마치고, 프리랜서 카피라이터로 활동하고 있었다. 우연한 기회로 스타트업에 정착했었지만 약 7개월 정도 근무하다가 회사의 사정으로 다시 프리랜서 카피라이터로 돌아왔다. 조금 나아진 것은 최근 계약한 회사의 레벨이 작년 이맘 때 일했던 회사들을 모두 합친 것 보다 큰 국내 최대 규모의 종합광고대행사라는 것이다. 가장 큰 대기업의 가장 큰 광고대행사와 함께 일하는 초년생 카피라이터. 그게 나의 현 위치다.


  그런데도 나는 아직 미생이다. 지난 1년을 바쁘게 보냈고, 실력이 어느정도 늘었고, 대한민국 최고의 광고대행사와 함께 일하고 있지만 나는 아직 미생이다. 내가 어떤 정신으로 지금을 버티고, 어떤 마음으로 이 일을 하고 있건 나는 아직 미생이다. 분명하게도...


간절하게 쉬고 싶다

  최근 본 영화 중 가장 감명 깊었던 영화인 <<위플레쉬>>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세상에서 가장 미련한 생각이 '이만하면 됐다'야


   공감한다. '이만하면 됐다'라는 생각은 '다 된 밥에 재 뿌리기'와 버금가는 미련한 짓이다. 흔히 물이 끓는 시점에 비유되는 '노력이 결과물로 변하는 시점'에서 지난 모든 과정을 무로 만들어 버릴 수 있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전력질주를 하다가 결승점 앞에서 걷기 시작해 1등을 빼앗기는 경우나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다가 답이 나오기 직전에 포기하는 행동이 바로 그 산물이다.


  이 말에 공감하고, 이러한 상황을 맞이하기 싫지만 나는 쉬고 싶다. 거침없이 달려오는 길에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것들이 격하게 하고 싶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여행과 사진과 글쓰기다. 지난 2016년 나의 SNS를 본 사람이라면, "1년 동안 하루도 빠짐 없이 사진을 올리고 글을 올려놓고 얼마나 더 많은 여행과 사진과 글이 필요한 것이냐"라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누구나 알고 있듯, SNS는 진짜가 아니다. 특히, 나의 SNS는 더욱 더 그렇다. 나는 SNS를 통해 나 자신을 홍보하고 있는 것이지 나의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SNS는 업의 연장선이지 휴식이 아니다. 단순한 넋두리 같지만 나의 업이 갖고 있는 특수성에서 그것은 '힐링'이 아니라 '일상적인 업'이다. 심지어 이 글 마저도 나에겐 단순한 넋두리가 아니다.


  프리랜서로서, 크리에이터로서, 포토그래퍼로서, 카피라이터로서 업의 연장에 있는 휴식 같지 않은 휴식 말고, 온전한 휴식을 취하고 싶다. 내가 하고 싶은 휴식은 그런 것이 아니다. 정말로 원하는 곳으로 여행을 떠나고, 정말로 원하는 사진을 찍고, 시간에 쫓겨 날림으로 하는 보정이 아니라 감정과 생각을 충분히 반영해 보정한 사진과 나름의 철학과 사상을 담은 글을 적어내며 쉬고 싶다.


  오는 1월 말, 현재 일하고 있는 회사와의 계약이 만료되면 나는 이것이 충분히 가능한 시간적 자유를 얻게 된다. 어떠한 조직과도 연결되어 있지 않은 상태로 자유인 그 자체가 될 수 있다. 행하고자 한다면 지구 끝까지 여행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기는 것이다.


미생도 쉬어도 되는가?

  그런데 의문이 든다. 나는 아직 미생인데, 미생도 쉬어도 되는 것일까? 마땅한 결과물을 얻어내지도 못해놓고 쉬어도 되는 것일까? 쉴 자격이 있는 것일까? 하루빨리 어딘가에 정착하여 나의 집을 꾸려야 하는 것이 아닐까? 완생까지는 아니어도, 미생에서는 벗어나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렇게 성과 없이 쉬다가 프리랜서가 아니라 백수가 되면 어떡하지? 일거리가 끊기고, 취업도 되지 않으면 어떡하지? 나는 힘들어도 되는 것일까?


  의문의 꼬리를 잡아 근원으로 가니, 또 다른 의문이 있다.


나는

쉬고 싶은 것인가?

도망가고 싶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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