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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툰남편 김광석 Jun 04. 2019

나에겐 농부가 된 선생님이 있어

서툰 남편의 자서전_#2. 새겨진 기록

10년 전 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시던 선생님은 지금은 소수의 학생만 가르치시며 밭을 가꾸고 벌을 키우신다.

10년 전 화끈하면서도 섬세하게 아이들을 이끄시던 선생님의 손길은 그대로 꿀통에 스몄다. 선생님은 꿀을 모으는 벌들에게 큰 손길을 주지 않으신다. 그저 벌들이 살아가는 환경이 자연 그대로와 같게 하기 위해 힘쓰실 뿐이다.

선생님이 벌을 위해 하시는 일은 간단하다. 추운 겨울이 오면 자연적인 벌집이 내던 보온효과를 대신하여 벌통에 천을 씌워주신다. 또 땅에서 개미들의 침입이 있을 때면 벌통이 나무 위에 있는 것처럼 발판을 세워 땅으로부터 떨어지게 해 주신다.

그렇게 1년 동안 꿀을 빼앗지도 로열젤리를 뽑아내지도 않고 벌을 그대로 둔다. 그러면 벌은 중간중간 사람의 손을 타거나 꿀을 빼앗겨 병들어가는 일반적인 벌들과 달리 강인하게 성장하고 더 좋은 꿀을 뽑는다.

선생님의 밭도 마찬가지다. 자연농법이라 부르시는 방법대로 농약을 하거나 거름을 주거나 물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저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가물면 가문대로 두고 기르신다.

그렇게 모아진 꿀은 향이 진하고 달콤하며 길러진 작물은 맛과 영양이 뛰어나다.

선생님의 벌들이 낳은 꿀

선생님은 그렇게 10년 전 나에게 하셨던 것처럼 거침없지만 또 섬세하게 벌과 작물을 키워가신다.

지금의 선생님에게 배우는 학생들이 부러웠다. 도시농부인 선생님에게 생생한 생명의 이야기를 듣고, 시험이 끝나면 햇살이 따사롭고 숲의 내음이 부드러운 선생님의 아지트로 놀러 가 이야기로 듣던 생명을 만날 그 아이들이 말이다.

운명인지 본능인지 천성인지 아니면 그저 당연한  것인지 내가 존경하고 좋아하는 모든 선생님은 국어 선생님이시다. 10년 전 내가 국어 선생님을 꿈꾸고 교직을 했던 것도 그 영향이 크다.

그런데 국어라는 과목과 멀어진 요즘 선생님들을 다시 돌아보면 교과는 중요치 않았다. 그들은 모두 제자인 나에게 이래라저래라 자신의 가치관을 심기 위해 노력하시는 대신 올바르고 모범이 되는 모습을 보여주시며 내가 그들을 닮고 싶어 지도록 만드셨다.

그래서 나는 국어교사의 꿈을 놓은 지 수년이 지난 지금도 그들과 같은 어른이 되기를 꿈꾼다.

feat. MAX


그리고 나도 선생님을 따라 작은 밭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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