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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툰남편 김광석 Feb 19. 2020

어떤 부모가 아이의 추억을 버리는 방식

사진으로 쓰는 에세이_2020.02.19.

외출을 준비하던 아이는

자신의 자전거를 찾았을 것이다.


자기표현이 확실한 아이라면

몇 개 안되는 단어를 구사하며


엄마에게 안타까움을 호소했을지도 모른다.하지만 아무리 호소해도

아이는 자전거를 찾지 못할 것이다.


아이가 찾는 자전거는

눈이 펑펑 쏟아지던 이틀 전 버려져서


오늘 아침까지도

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으니까.






"겉으론 멀쩡해 보일지라도

어딘가 고장이 났을지도 몰라…



아기를 안고 고장 난 자전거를 끌고 가려니

눈앞이 캄캄했겠지…



그래… 어쩔 수 없었을 거야."




부모의 상황이

어쩔 수 없었을 것이라 생각해보지만


이틀이 지나도

주인이 찾아오지 않는 것을 보면


그들은 이 자전거의 존재를 잊었거나

이곳에 두기로 마음을 먹은 것 같다.


사진을 찍고, 일기를 쓰다 보니

안도현 시인의 책 <사진첩>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모든 사진은 미래에 대한 약속이다.

그렇기 때문에 카메라는,


다시는 되돌아보기 싫은 풍경이나

시간을 찍으려고 하지 않는다.


아무리 누추하고 궁핍하더라도

되돌아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

분홍빛에 가까운 것,


슬픔이나 괴로움의 농도가 옅은 것만을 편애한다.


- 안도현, <사진첩> 중에서 




이 자전거를 버린 부모에게도

자전거는 분명 좋은 추억으로

그들의 사진 속에 자리 잡았을 것이다.


자신들이 아이의 추억을

어떻게 버렸는지,


그 추억의 엔딩으로 인하여 다른 사람들이

어떤 불편함을 느꼈는지 알지 못한 채,


사진 속에 남은

아름다운 기억만을 편애하면서…


나는 이 자전거를 버린 사람이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들의 버려진 추억을 보는 순간

나는 속으로 그들을 비난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그동안 내가 버린 쓰레기를 본 누군가도

나를 이렇게 비난해왔겠지…


그래서 이 사진은 나에게

미래에 대한 약속이 되었다.


훗날 내가 아이를 낳아 기르게 된다면

아이의 추억을

마지막까지 소중히 대하겠다는 다짐.


또 내가 그 추억을 버리게 된다면

적어도 길거리가 아닌,

정당한 장소에 버리겠다는 다짐.


먼 미래가 아니라도

당장 오늘부터라도

종이쪼가리 하나라도


길거리에 버리지 않겠다는

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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