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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툰남편 김광석 Jun 22. 2016

미안, 너무 예뻐서 훔쳤어

내가 인물사진을 몰래 찍게 된 이유

    몰카, 도촬 등의 이름으로 불리는 사진 촬영행위는 불법이다. 타인의 초상권을 동의 없이 훔치는 행위이니 명백한 절도행위다. 그래서 모르는 사람의 사진은 웬만하면 찍지 않는다. 하지만 가끔, 아주 가끔은 잘못된 행동임을 알면서도 저지르곤 한다. 그리고는 누가 뭐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속으로 변명을 늘어놓는다.


너무 아름다워서 그만….


 그렇게 모은 얼굴도 모르는 사람의 사진이 몇 장인지 셀 수도 없다. 어쩌면 나는 누군가를 몰래 훔쳐보길 즐기는 관음증인지도...

 그런데 내가 겪고 있는 증상이 관음증이라면, 나는 소아성애자에 동성애자인가 보다. 훔쳐낸 찰나의 순간 중 가장 맘에 드는 사진이 대부분 소년이니….




마주침, 찰나의 순간 / Canon EOS 550D / EF 18-55mm


 장소는 서울숲.

  별을 보는 동아리 사람들과 함께 사진을 찍으러 갔던 날이다. 두어 시간을 걷고 또 걸으면서 사진을 찍다가, "인제 그만 찍자"는 동료들과 함께 밥을 먹으러 가는 중이었다.


 저 멀리서 자전거를 탄, 중년이라고 하기엔 늦은 감이 있고, 할아버지라고 하기엔 이른 감이 있는 애매한 나이의 그는 뒷자리에 소년을 태우고 있었다. 두 눈을 감고 바람을 느끼는 소년의 모습은 영락없는 영화 속 한 장면 같았다.


 그래서 카메라를 꺼내 소년을 찍었는데, 녀석이 내 존재를 눈치챘다. 얼굴에 웃음은 싹 가시고 불안한 눈빛으로 나를 본다.




넘어짐, 찰나의 순간 / Canon EOS 550D / EF 18-55mm


  위에서 찍은 사진과 같은 곳 같은 날이었다. 거울호수에서 뛰노는 소년과 소녀를 발견했다. 아이들은 공원을 가로로 쭉 가르고 있는 거울호수를 이쪽 끝에서 저쪽 끝으로 내리달으며 놀고 있었다. 동생은 까르르 웃으며 "거기서~!", "내놔~!'하고 오빠는 낄낄낄 웃으며 도망치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예뻐서 달려오는 방향으로 갔다.


 아이들의 높이에 맞춰 쪼그려 앉고, 앞서오는 소년의 웃음에 초점을 맞추고 셔터를 눌렀다. 그 순간이었다. 맨발로 물 위를 달리던 소년은 믿음이 흔들려 물속으로 추락하던 베드로처럼 놀란 표정으로 뒤로 넘어졌다. 물 아래 낀 이끼를 맨발로 밟고 넘어진 것 같았다.


 사진을 찍고 놀라 일어났는데, 개구리가 물 위에서 튀어나오듯 호수를 뛰쳐나와서는 제 엄마로 보이는 여자를 향해 씩 웃었다. 머리를 긁적이면서.


  넘어진 아이에겐 미안했지만, 넘어지는 순간이 너무 아름다워서 훔쳐온 순간을 간직했다.





소년의 꿈 / Canon EOS 550D / EF 18-55mm

  

  안산의 탄도항, 공을 튀기며 오던 소년은 바닷물이 찰박이자 공 튀김을 멈췄다. 시멘트 바닥 위로 비치는 하늘을 한 번, 물이 뚝뚝 떨어지는 공을 한 번 바라본 녀석은 공을 탱탱 두드려 물을 털었다.


 아이는 공에 묻은 물기를 모두 털었는지 발걸음을 옮기기더니 얼마 걷지 않아 발을 멈췄다. 자신의 공을 젖게 만들고 바닥 위로 하늘이 비치게 했던 주범인 파도를 발견한 것이다. 철썩철썩 물을 옮겨오는 미지의 힘이 신기한 것인지 자신의 발아래로 튀겨오는 물이 재미있는 것인지 파도를 관찰하던 소년은 고개를 들어 먼바다를 내다봤다. 그 순간이었다. 귀엽게만 보이던 녀석이 늠름해 보이고 '큰 꿈을 꾸는 사람'처럼 눈빛이 달라졌다. 녀석이 보는 방향에는 붉게 물든 하늘과 하늘을 물들인 태양 그리고 거대한 바람개비 모양의 풍력발전소가 있었다.





장(將) / Canon EOS 550D / EF 18-55mm

  군 생활을 하던 시절, 한참 역사 공부를 한다고 한국사를 들여다보던 때가 있었다. 그 핑계로 고궁으로 출사를 갔는데, 역사를 알고 간 고궁은 어린 시절 선생님에 이끌려 다니던 그곳이나 여친의 뒤통수를 따라서 오던 그곳과는 달랐다.


 그래서 내친김에 서울의 5대 고궁인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안현궁을 사냥하듯 투어했다. 그를 만난 것은 그 때였다. 광화문 앞에 선 그와 마주친 순간,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다른 사람인척하는 연기가 가장 힘들었다"며 설레발을 치던 연극배우 선배의 말이 떠올랐다. 직업인지 아르바이트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그저 서 있기만 하는 것으로 수문장의 풍채를 뿜어대는 그의 모습에서, 명성황후를 지키기 위해 광화문 앞에 서 있는 홍계훈 장군의 모습이 겹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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