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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툰남편 김광석 Jun 10. 2016

여행은 가까이에 있다

반드시 힐링, 멋, 자랑거리가 있어야 여행은 아니다.

여행의 로망과 현실

  2011년 겨울, 학과 서재에서 한 권의 책을 발견했다.

『슈퍼라이터』

  제목부터 포스가 넘치는 이 책은 두 명의 여행가가 자신들의 여행 경험을 글, 사진, 여행이라는 키워드로 묶어 냈던 책이다. 제목에서 느껴졌던 포스는 책 안에서 더 명확했다. 낯선 문화에 부딪히고, 힘든 여정에 도전하고, 그로부터 감동을 경험하는 그들의 이야기는 내 안에 '여행의 로망'으로 자리 잡았다.

어디로 갈까 / Canon EOS 550D / EF 18-55mm / 김광석

  그런데, 나에게는 그런 여행을 할 기회가 없었다. 돈도 없었고, 시간도 없었고, 가장 중요한 용기도 없었다. 나는 그저, 평범한 사람들 속에서 '사람 참 멋지다~'라고 생각하는  밖에 할 수 없었다. 만약 내게 돈이 있거나, 시간이 있었더라도 나는 나 스스로가 나를 평범한 사람이라고 한정 지었기 때문에 그들처럼 멋진 도전을 실천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가슴속에 있는 로망을 버릴 수는 없었다. 현실에서 못생겼다고, 이상형으로 연예인을 좋아하면 안 되는 게 아니듯, 떠날 용기가 없어도 떠나는 사람들의 도전을 좋아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다가 가끔 어디서 튀어나오는지 모를 용기가 생겨서는 내가 갈 수 있는 최대한 먼 거리까지 단숨에 달려가곤 했다. 여러 차례에 걸쳐 혼자 떠났던 '부산여행'과 누나와 한 번, 친구와 한 번 떠났던 '내일로' 그리고 철저하게 혼자 계획하고, 혼자 떠났던 '3박 4일 백령도 라이딩'과 '6박 7일 국토종주 자전거길 라이딩'이 그 산물이었다.


여우가 본 감천 / Canon EOS 550D / EF 18-55mm / 김광석
백령도 라이딩
국토종주 자전거길 라이딩


나의 여행

  그렇게 5년 동안 국내 이곳저곳을 여행했다. 주로 버스와 기차를 이용했고, 2015년에는 자전거를 많이 탔다. 그렇게 작은 용기로 작은 도전을 실천하다 보니, 나의 로망은 어느새 나의 현실에 맞게 바뀌어 있었다. 여행에 대한 나만의 가치관이 형성된 것이다.

  나는 편한 여행을 추구하지만, 계획되지 않은 여행을 선호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제 때 할 수 있는 여행이 내 편한 여행의 기준이고, 가고 싶은 도시나 주요 지역만 정해 놓고 출발하여 언제 어떻게 갈 것인지는 마음 가는 대로 돌아보는 것이 계획되지 않은 여행의 기준이었다.

  실제로 자전거 국토종주를 하던 중에는 그냥 자전거를 버리고 지역 친구를 만나 대구를 한 바퀴 돌고, 부산으로 직행해 동갑내기 이모를 만나 초밥을 얻어먹고 왔다. 세 번째 부산에 방문했을 때는 찜질방에서 일출을 보고, 온종일 만화책과 TV만 보다가 일몰을 본 다음 기차로 돌아온 적도 있다. 평소에 계획적으로 살고 있으니, 여행을 떠나서만큼은 무계획의 극을 보여주고 싶다는 오기가 생긴 덕분이기도 했다.


자전거 여행 / Canon EOS 550D / EF 18-55mm / 김광석


여행은 가까이에 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여행은 가까이에 있다. 출근길에 버스를 달리 타고 가는 것도 여행이고, 퇴근길에 멀쩡한 집 놔두고 찜질방에 가는 것도 여행이다. 친구가 자취하는 방을 습격해서 라면에 소주 한 잔 기울이면 그보다 호화스러운 여행이 있을 수 없다.

  동호회 사람들과 함께 열었던 사진전에 갔다가, 충동적으로 북촌 한옥마을을 여행했다. 이미 서너 번 가 봤던 곳이지만, 새로운 가게들이 들어서서 전혀 다른 느낌의 길을 걸었다. 또 우연히 발견한 카페에서는 인생 샷이라 삼을만한 컷을 건지기도 했다. 아사히 생맥주를 들어 노을과 함께 찍은 사진은 아사히 담당자에게 감사 메일을 받게 해 주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더 호화스럽거나 더 편하거나 더 도전적이거나 더 특별하지 않아도 좋다. 나는 딱 이 정도 거리에서 가깝게 즐길 수 있는 여행이 좋다.



종로여행 - 종로구 북촌
빛을품다 / Canon EOS 550D / EF 18-55mm / 김광석
여행은 가까이에 있다  / Canon EOS 550D / EF 18-55mm / 김광석
강남 여행 - 강남구 봉은사
깨달음 / Canon EOS 550D / EF 18-55mm / 김광석
어흥 / Canon EOS 550D / EF 18-55mm / 김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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