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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툰남편 김광석 Aug 15. 2016

너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여름

8월 12일, 달밤에 펼쳐지는 페르세우스의 '별빛축제'

다시 찾는 이유

여행심리학자 김명철 씨는 자신의 저서 <<여행의 심리학>>에서 '사람들이 어떤 여행지를 두 번 이상 방문하는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는 일반적인 이유를 거론한 다음 뜻밖의 이유를 찾아낸 사람들의 이론을 설명한다.


사람들이 어떤 여행지를 두 번 이상 방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좋았으니까" "한번 가본 곳이라 친숙하고 편하니까" "어려움이 없고 별다른 계획을 짜지 않아도 되니까" "이미 검증되었으니끼" "다른 곳은 잘 모르니까" 등등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이유가 떠오른다.

그러나 리처드 기텔슨과 존 크럼프턴은 이런 이유 외에 한 가지 뜻밖의 요인을 밝혀냈다. 이들에 따르면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그곳으로 데려가기 위해 같은 여행지를 반복해서 방문한다. 사람들은 자기가 정말 좋다고 느꼈던 경치를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그 사람 손을 잡아끌고 그곳으로 돌아간다. 사람들은 자기가 마음에 들었 했던 음식을 누군가에게 맛보여주기 위해 그곳으로 돌아간다.

<여행의 심리학> / 김명철 / p.60


<마음날씨> / 김광석 / Canon EOS 550D / EF 18-55mm
대부분의 여행이 그렇지만, 밤하늘 여행은 날씨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내가 좋아하는 여행지

 . 여행이라면 집 근처 분위기 좋은 카페를 찾아 떠나는 여행부터 바다 건너 다른 나라의 문화에 들어가는 해외여행까지 시간, 장소, 규모 등 여건과 관계없이 매력을 느낀다. 평소에는 이것저것 가리는 것이 많은 나지만 여행지에서는 가리는 것 없이 잘 먹고, 여행할 땐 아무리 덥거나 추워도 '계획된 일정'이나 '하고 싶은 일'을 다 해야 마음이 편하다.


나는 '여행'이라는 느낌이 조금만 들어도 '야밤에 쳇바퀴를 굴리는 햄스터'처럼 팔팔해지지만 좋아하는 정도에 비해서 여행 경험은 적다. 그래서 나에겐 '두 번 이상 방문한 여행지'가 별로 없다. 그마저도 부산, 서울 등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당연히 가 보았을 법한 평범한 곳이다. 이렇게 내공이 부족하니, 내가 여행을 즐긴다는 것을 알고 연락 오는 사람들에게 마땅히 추천해줄 여행지가 없다.


하지만 이런 나에게도 사람들을 이끌고 데려가고 싶은 여행지가 있다. 이 여행지에 대해서는 나만큼 잘 아는 가이드도 몇 안 될 것이라는 정체 모를 자신감도 있으며, 10년 동안 꾸준히 방문할 정도로 애착이 많이 있는 여행지다.


이곳은 누구나 갈 수 있는 곳이고, 누구나 꿈꾸는 곳이지만 제대로 가 본 사람은 몇 안 되는 여행지인 이곳의 이름은 '밤하늘'이다.

<서화리의 밤하늘> / 김광석 / Canon EOS 550D / EF 18-55mm
2014년 겨울에 여행한 밤하늘.


미끼를 던졌다

이제 와서 밝히는 사실이지만, 나는 페르세우스 유성우가 뉴스에서 나온 것처럼 시간당 150개의 별똥별을 보여주는 축제가 아님을 알고 있었다. 시간당 150개라는 개수는 이론적인 개수이며, 대기의 상태나 주변 광공해의 수준에 따라서 시간당 볼 수 있는 별똥별은 0개가 될 수도 있었고, 10개 20개 30개도 될 수도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유성우 뽐뿌를 듬뿍 넣은 글을 브런치, 페이스북, 카카오톡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해 널리 알렸다. 잘 익은 은하수가 가장 아름다울 여름철의 밤하늘로 사람들을 안내하고 싶었지만, 그냥 밤하늘을 보러 나오라는 말로는 그들을 서울근교 3~40km 밖으로 끌어낼 수 없었다. (광공해로 인해 서울 근처에서는 별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효과적인 프로모션 상품인 '페르세우스 유성우'를 끼워 팔았다.


페르세우스 유성우는 제 몫을 확실히 했다. 많은 이들이 내가 쓴 글을 읽고 '고맙다', '꼭 보러 가겠다.' 등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으며, "언제 어디서 어떻게 해야 볼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도 많이 들어왔다. 개인적으로 '좋다'고 말하는 사람보다 '어떻게 해야 잘 볼 수 있냐'라고 질문하는 사람들이 반가웠다. 반가움에는 '이들은 밤하늘을 여행할 준비를 하는 중이었기에 물어본 것'이라는 기대가 깔렸었다.


별을 보기 위해 강화도로 진입중인 자동차들.


미끼의 부작용

페르세우스 유성우를 보기 위해 밤하늘을 여행한 사람들은 대표적인 세 가지 반응 중 하나 이상을 보였다. 첫째는 감탄과 환호를 뒤섞어 "좋은 경험을 했다"라고 말하는 사람이었고, 둘째는 "고생고생해서 갔는데 하나도 보지 못했다"라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마지막 셋째는 방안에 앉아서 창문 밖을 내다보고는 유성우가 보이지 않았다고 불평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런 반응은 내가 의도하지 않은 엉뚱한 반응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밤하늘'을 보여주고 싶어서 '밤하늘의 일부'인 페르세우스 유성우를 사용했는데, 사람들은 나무를 보느라 산을 보지 못한 것처럼 별똥별에 대한 집착에 밤하늘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즐기지 못한 것이다. 미끼를 사용해 유인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낚싯줄이 끊어져 상처만 준 셈이었다. 내 잘못이었다.


<여행을 밝히다> / 김광석 / Canon EOS 550D / EF 18-55mm




여유와 힐링의 밤하늘 여행

밤하늘로의 여행은 여유와 힐링의 여행이다. 돗자리 한장 깔고 누워서 북극성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별자리를 뒤적거리며 내가 찾고 싶은 별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다. 누워서, 느리게,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꿀의 여행'이다. 지구의 자전을 온몸으로 느끼고, 대자연의 신비를 느리게 감상하는 느린 여행이다. 잠깐 나타났다 사라지는 한 줄기 빛이 아니라, 수억년 동안 존재해 온 미지의 점을 관찰하는 넓고 깊은 여행이다. 그런데 나의 손님들은 우리는 별똥별이라는 티끌을 쫓느라 그것을 놓쳤다.


여행은 늘 그렇다. 코앞에 닥친 일정, 눈앞에 놓인 기념품, 의미 없이 찍어대는 사진 등 작은 무언가를 쫓다보면 거대한 배경을 바라보지 못한다. 밤하늘 여행도 마찬가지였다. 별똥별을 쫓기 위해서 눈을 굴리는 사이에 밤하늘을 환하게 밝히던 달님은 별똥별을 가리는 '주적'이 되었고, 별똥별을 카메라에 담으려고 낑낑대는 사이에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 하늘을 바라볼 여유는 지나가 버렸다.


나는 여행자의 불평에 대한 책임은 가이드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다소 반갑지 못한 반응이지만, 내가 가이드를 잘 해내지 못한 탓에 나를 따라 밤하늘을 여행한 사람들이 시간을 버렸다. 내가 그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밤하늘을 수놓는 별'이었는데, 대다수의 사람이 무수히 많은 별을 눈으로 보면서도 '별똥별은 어디 있는 거야?'라는 불평을 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미끼를 사용한 것이 후회됐다.


<밤하늘여행> / 김광석 / Canon EOS 550D / EF 18-55mm


여행에미치다 보틀 위로 '플레이아데스 성단'이 떠오르고 있다.




포기해야 보인다

가이드를 잘못한 죄로 나도 불편한 건이 하나 생겼다. 유성우에 대한 글을 쓰고, 밤하늘 사진을 첨부하니, "전문가이신가 봐요! 사진 기대할게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출현했다. 그들의 등장은 사진 전문가도 아니고 별 전문가도 아닌 나에게 큰 부담이었다. 그래서 사진 한 장 한 장에 혼혈을 기울였지만 역시 실력의 한계를 벗어나진 못했다.


'포기하면 쉽다'는 말이 있다. 좋아하는 말은 아니지만, 가끔 사용하면 유용해지는 말이다. 나 자신이 '쓸데없는 일'에 목숨을 걸고 있을 때 사용하면 아주 좋은 안전벨트가 된다. 밤하늘을 여행하자고 나와놓고, 사진기와 씨름을 하는 순간에도 적절한 효력을 발휘한다. 나는 하늘은 안 보고 카메라만 보고 있는 나를 발견하자마자 '포기하면 쉽다'최면을 걸었다. 그 즉시 '별똥별 찍기'를 포기했다. 사진은 그냥 실력에 맞게 찍고 밤하늘을 감상하는 것을 선택했다. 


<밤의여행> / 김광서 / Canon EOS 550D / EF 18-55mm
별똥별 쫓기를 포기하니, 별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너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여름

여행과 밤하늘 이야기만 가득한 이 글의 제목은 놀랍게도 <너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여름>이다. 여름에는 시원한 바다, 계곡, 산 등의 매력 외에도 '은하수'나 '유성우' 같은 면이 있음을 알려주기 위해 쓴 글이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은 사람들이 글을 읽고 난 다음 머릿속에 한 줄의 문장을 기억했으면 한다.


여름의 밤하늘은 해운대의 낮보다 아름답다.
 
<너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여름> / 김광석 / Canon EOS 550D / EF 18-55mm
왼쪽과 오른쪽에 각각 두 개씩 서로의 별똥별이 보인다.


세상은 넓고 여행은 많다

여행의 종류는 무수히 많다. 세상은 넓고 여행은 많다. 지구 반대편으로 떠나는 세계여행, 웃통 벗고 오지로 들어가는 오지 여행, 낙하산 하나 메고 3천피트 상공에서 뛰어내리거나 공기통 하나 메고 바다로 뛰어는 액티비티여행, 나침반과 지도 한장 들고 떠나는 오리엔티어링까지 종류도 많고 방법도 많다. 여행의 방식과 여행의 맛은 여행자의 생각과 성격 등에 의해서 변형된다. 나는 여행의 이러한 성격을 '자유분방함'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여행의 자유분방함은 내가 여행을 하는 가장 큰 이유가 된다.

최근에 내가 아는 여행자 중에서 가장 자유분방한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모임을 발견했다. 페이스북 페이지와 페이스북 그룹 등에서 활동하는 이들의 이름은 <여행에 미치다>이다. 나는 나에게 여행을 알려줘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이 글을 <여행에 미치다>사람들에게 보낸다.


<여행에 미치다> / 김광석 / Canon EOS 550D / EF 18-55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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