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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툰남편 김광석 Aug 31. 2016

여행과 방랑의 계절이 왔다

2016년 가을이 남긴 방랑의 기록

천고마비의 계절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표현이다. 어느 시 속에 등장했을 표현 같기도 하고, 옛날부터 내려오는 속담과도 연관이 있을 것 같다. 그만큼 친숙하고 너도나도 사용하는 표현이다. 그런데 제대로 된 어원과 뜻을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 없는 것 같다.

<높다> 김광석 2016
높다. 건물도 높은데 하늘은 더 높다. 퐁당 빠지고 싶다. 그런데 하늘엔 빠질 수 없다. 아쉽다.


천고마비는 '하늘 천', '높을 고', '말 마', '살찔 비'를 사용한다. 뜻을 풀이하면 하늘이 높고 말이 살찌는 계절이다. 가을 하늘이 높은 건 누구나 아는 이야기지만, 가을에 말이 살찐다는 것은 잘 알지 못했다. 알아보니 가을에는 말에게 주기 위한 풀이 충분하게 나오기 때문이라고 한다. 농작물을 수확하는 계절이니 일리가 있다.


<나무가 빼꼼> 김광석 2016
사무실 앞 정자 지붕 위로 나무가 빼꼼 나왔다


이 말이 처음 생겼을 시기에는 가을이 되면 흉노족의 약탈이 심해졌었다. 농작물이 풍성해지는 우리 영토와 달리, 땅이 좋지 않고 겨울이 빨리 오는 바람에 농사를 오래 짓지 못하는 그들의 삶은 열악해지는 시기라서 우리 것을 빼앗아 먹고살았다고 한다. 따라서 '천고마비의 계절'은 농민들의 불안함을 내포하고 있는 말이었다. 그것이 시간이 흘러 '하늘이 높아서 심장이 마비된다'라는 번역으로 통용되며 아름다운 풍경에 대한 수식어로 사용되고 있다.



여행과 방랑의 계절

계절이 넘어갔다. 일 년에 네 번 바뀌는 계절이 마치 책장 넘어가듯 휘릭 넘어가버렸다. 38도의 역대급 무더위가 엊그제였는데, 어느새 20도로 뚝 떨어졌다. 업무시간 동안 끊임없이 울리던 매미 소리도 사라졌고, 밤새 앵앵거리던 모기 소리도 사라졌다. 고요한 가운데 오직 구름이 자리를 옮기며 내는 바람 소리만 들린다. 게다가 중국 공장의 휴업 덕분인지, 태풍의 영향인지 모를 이유로 하늘의 푸름 마저 기록적이다. 남산에 있는 N서울타워의 조명이 푸른색일 것 같은 느낌도 든다. 몸도 마음도 상쾌하니 마음속 깊은 곳에 묻어두었던 방랑벽이 도지고 있다. 좌뇌가 눌러 두었던 우뇌의 감성은 이미 봉인을 풀고 뛰쳐나온 지 오래다. 이를 눈치챈 좌뇌도 체념한 듯하다. 할 일이 태산이지만 카메라를 들고 여행을 떠나자는 결론을 내린다. 여행과 방랑의 계절이 왔다.


< 지붕이 빼꼼 > 김광석 2016
지붕은 조금 큰 빼꼼이지만 빼꼼은 빼꼼이다.


여행은 추억을 남기고, 방랑은 사진을 남긴다

여행의 정의는 '일이나 유람을 목적으로 다른 고장이나 해외에 가는 일'이고, 방랑의 정의는 '정한 곳 없이 이리저리 떠돌아다님'이다. 나의 경우엔 '여행'보다는 '방랑'에 가까웠다. 카메라와 삼각대 그리고 즐겨 읽는 책 한 권을 챙겨 집을 나섰다. 목적지는 '그냥 서울'이었다.


<Paper Viator> 김광석 2016
여행으로 탐색하고, 사진으로 추구하는 나에게 이 문장은 굉장히 공감되는 말이다.


이런 식의 여행을 즐긴 것은 2013년부터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돈이 생기고, 시간이 생기니 어디든 떠나고 싶을 때 훌쩍 떠날 수 있게 됐다. 그래서 아무 계획 없이 떠나 사진을 찍던 것이 계획된 여행보다는 목적 없이 흘러 다니는 방랑을 즐기게 됐다. 그것을 한 해, 두 해 하다 보니 꽃가루도 없고 더위는 물론 추위도 없으며 덩달아 구름마저 없는 가을을 선호하게 됐다.


< 구름담기 > 김광석 2016
하늘에 뜬 구름이 달콤해 보인다.
달콤한 구름을 녹여서 달콤한 콜라를 만들고 싶다.


사실, 이렇게 정처 없이 돌아다니는 것은 '시간낭비'다. 우연히 즐거운 일과 맞닥 드리지 않는 이상 기억에 남는 일도 생기지 않고 육체적 피로만 쌓인다. 혼자 여행을 떠났을 때와 달리 혼자 하는 방랑은 그저 시간을 소비하는 행위에 불과하다. 다만, 나는 사진을 찍고 글을 쓰니까 사진이 남고 글이 남았다.



방랑이 남긴 글, 글을 담은 사진

<준비물> 김광석 2016
방랑에 필요한 준비물. 카메라, 책, 삼각대, 그들을 담을 수 있는 가방 그리고 김밥.


<스물스물> 김광석 2016
스물스물 올라온다. 가을의 색, 노랑빛이 올라온다.


<구름으로 만든 기타> 김광석 2016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는데, 기타가 있었다. 구름이 몸통이 되고, 전선이 줄이 되었다. 어떤 소리가 날까?
<나도무지개> 김광석 2016
지난 주말, 서울 사람들은 무지개를 보며 셔터를 눌렀다. 같은 시각, 나도 무지개를 보며 셔터를 눌렀다.


<인증샷> 김광석 2016
여행은 추억을 남기고, 방랑은 글과 사진을 남긴다. 이 날은 특별히 내 사진도 한 장 남겼다.


<별의 하늘> 김광석 2016
나는 하늘의 별을 좋아한다. 별은 하늘보다 멀리 있다. 닿을 수 없다. 아쉽다.
그런데 이 날 만난 별은 하늘보다 가까이에 있었다. 그래서 하늘이 별이 아니라 별의 하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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