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짠 천으로 가방 만들기

아, 직조기는 물론 재봉틀도 처음입니다만...

by 신사과



위빙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원래는 Rag Rug, 혹은 스웨덴어로는 트라스마타 (Trasmatta)라고 불리는 커다란 카펫을 만드는데 작년부터 가방을 만드는 걸로 바뀌었다고 한다. 내심 아쉬웠으나 한국 돌아갈 때 커다란 카펫을 들고 가는 상상을 하자 바로 가방으로 바뀐 게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먼저 세 명의 여성 아티스트의 작품 중 좋아하는 그림을 하나 골라 컬러 팔레트를 만든다. 팔레트에서 쓰인 색으로 줄무늬 패턴을 만들고 실을 골라 직조기로 가방을 짠다. 내가 고른 그림은 조지아 오키프의 그림이다. 원래 조지아 오키프를 좋아하기도 했고, 가방은 특히 튀는 색을 좋아하지 않아서 일부러 무난해 보이는 색의 그림으로 정했다. 그림에 쓰인 색들을 물감으로 만들어 도화지에 그려 팔레트를 만들고 이리저리 줄무늬 패턴을 그려보았다. 그리고 두근두근 재미있는 시간이 왔다. 형형색색, 코튼부터 린넨, 실크 등 다양한 종류의 실들을 보고 직조할 천을 만들 실을 고른다. 고르기가 끝나면 드디어 꿈만 같은 직조기를 가지고 놀 시간!


직조기가 가득한 텍스타일 학과 공간


직조는 세팅이 반이라고 할 만큼 정말 세팅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 무슨 용도의 어떤 직물을 만들지, 얼마나 밀도 있게 촘촘하게 만들 것인지, 필요한 실의 길이는 얼만큼인지 등등 플래닝이 반이라고 할 만큼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직접 앉아서 짜는 건 오히려 꽤나 기계적인 일이라 그다지 많은 시간이 걸리진 않는다.



커다란 정경대도 처음 써봤다

기본적으로 천은 세로실과 가로실이 만나 면을 이루게 되는데, 앞서 말한 플랜이 다 끝나면 우선 세로실을 준비한다. 이 과정은 정경대라고 하며, 정경대라는 도구를 사용해 사용할 실을 미리 그려둔 패턴과 천 길이만큼만 알맞게 올바른 순서로 준비해놓는 것이다. 정경이 끝나 세로실이 준비가 되었으면 직조기에 올려놓고 가로실이 왔다 갔다 하면서 면을 만들 수 있도록 해줘야 하는데, 이 과정도 결코 간단하지 않다.


세팅도 서로서로 도와가며 한다

한국에서 위빙 스튜디오를 찾아 몇 번 수업을 들어보긴 했다. 너무 재미있어서 중고로 나온 자그마한 4종광 직조기도 사놓고 내가 디자인한 멋진 직물을 꿈꿔보며 작은 샘플들을 만들어보기도 했다. 그러나 이렇게 큰 직조기는 처음이었다. 두 명, 혹은 세 명이 도와서 직조기 한쪽에서 다른 쪽까지 실을 보내고 줄다리기를 하는 것처럼 팽팽하게 당기며 온 힘을 써서 세팅을 해야 했다.



이건 바디라고 한다. 대개 매우 오랫동안 쓸 수 있는데 이 바디는 정말로 100년 전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바디에 대해 설명하다가 선생님이 재미있다는 듯이 가져와서 보여주셨다. 아래위가 망가져서 천을 덧댄 것 빼고는 아직 멀쩡하다. 100년 전 스웨덴 사람들이 썼던걸 우리가 아직도 아무렇지 않게 쓰고 있다. 바로바로 새것을 사버리는 환경에 더 익숙한 나는 오래된 것을 쓰는 것이 스토리가 되는 것이 신기했고, 약간 부럽기도 했으며, 완벽히 이해하진 못했지만 역시 에코의 나라라는 생각을 했다.


바디에 실을 하나하나 통과시킨다. 인내심을 가지고 하면 금방이다.
세로실을 바디에 끼운 후 직조기로 가져온 후 뒤에서 앞으로 옮기는 중


드디어 직조기 세팅이 끝나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처음 계산할 때 테스트를 해볼 수 있는 여유분을 20cm 정도 주었기 때문에 가로실과 세로실이 만나 내가 원했던 느낌을 내는지 테스트해본다. 처음에 작게 만든 샘플과 비슷하게 나온 듯해 기뻤다.



베틀에서 길쌈하는 아낙네를 바라보는 아이와 아이를 업고서 이를 바라보는 나이 지긋한 할머니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김홍도의 길쌈에 나오는 저 아낙네(!)처럼 저런 모습으로 가로실을 왼쪽에서 오른쪽, 오른쪽에서 왼쪽, 다시 왼쪽에서 오른쪽 왔다 갔다 하면 금세 천이 만들어진다. 실제 위빙은 수월하게, 오랜 시간을 들이지 않고 끝났다.


물론 이걸로 프로젝트가 끝난 건 아니고, 가방 패턴을 그리고, 열심히 짠 천을 패턴에 맞게 자르고, 가방을 만들고, 전시까지 하려면 갈 길이 멀다. 오히려 시작이다. 일단 다음과 같은 천이 완성되었다는 것만 살짝 공개해본다.



직조기에서 잘라낸 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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