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초 동화, 별빛 동화 스물여덟 번째 이야기
"도대체 왜 나만 갖고 그래... "
작은 숲 속 '규칙마을'에 사는 너구리는 요즘 심란해요.
최근에 나무늘보가 나무에서 떨어질 것 같아 도와줬는데, 규칙을 어겼다고 책임을 뒤집어쓴 적이 있거든요.
이 마을은 동물 모두가 규칙대로만 살아야 해요. 누구를 도와주고 싶어도, 마음이 통해 만나러 가도 꼭! '규칙서'를 먼저 펴봐야 했죠.
비가 내리는 어느 날, 바로 옆집 다람쥐 아주머니 집이 곧 무너질 것 같아요.
"너구리, 여기 와서 지붕 좀 잡아줘요"
"잠시만요. 규칙 24조 7항을 확인해 볼게요"
너구리는 빠르게 규칙서를 찾아보았어요.
“규칙을 지켜야지! 감정에 휘둘리면 안 돼!”
규칙에는 옆집이 무너질 것 같은 경우, 바로 뛰어가 도와줘도 된다고 적혀 있어요.
내용을 확인한 너구리는 다람쥐 집으로 달려가는데 그만 지붕이 무너졌어요.
"아이고, 아이고 다람쥐 죽겠네. 날 도와줘야지 너구리!"
다람쥐 아줌마는 다치고, 마을은 또 너구리를 탓했어요.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거야?" 너구리는 너무나 혼란스러워요.
반대로 여우는 규칙을 아주 잘 알았어요. 아니, 너무 잘 알았죠.
그래서 규칙을 어기지 않으면서도 자기 꿀단지를 몰래 더 챙기는 법을 찾아냈어요.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에요. 여우는 앞에 서 있는 다른 동물 대신 줄을 서주겠다고 말한 뒤, 그 동물 몫까지 꿀을 챙기고는 말해요.
"규칙 1조: 꿀단지는 줄 서서 하나씩 가져간다."
이번에는 꿀단지를 몰래 자기 굴 근처에 묻어둬요.
"규칙 2조: 꿀단지를 숨기면 큰 벌을 받는다."
여우는 태연하게 “ 꿀을 숨긴 게 아니라 보호 중이었어요”라고 말해요.
모두가 의심했지만 여우는 규칙서에 "꿀단지 보호하면 벌준다"는 내용이 없다는 것을 보여줘요.
늘 이런 식으로 여우는 규칙을 들이대며 빠져나갔죠.
그러던 어느 날, 꿀벌들이 꿀을 못 받아 울고 있는 걸 너구리가 보았어요.
"아니 꿀을 열심히 모은 동물은 꿀벌인데, 왜 꿀벌들은 꿀을 한 수저만 받아야 하는데, 이건 옳지 않아.”
결국, 너구리는 부엉이 판관에게 다가와 말했어요.
“판관님, 규칙은 서로 행복하게 살기 위해 만들었는데, 어떤 동물들은 규칙을 무기로 자기가 유리한 대로 이용해요.”
너구리의 말을 들은 부엉이 판관은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어요. 그리고는 느릿느릿 눈을 떴죠.
“너구리야, 규칙은 말이지 사회를 안전하게 이끌기 위해 만든 것이란다. 만약 규칙으로 누군가가 피해를 본다면 그에 맞게 규칙을 고치면 된단다.”
부엉이는 오래된 깃털 펜을 꺼내 들고 규칙서를 펼쳤어요.
“이 규칙서, 처음엔 ‘서로 돕고, 함께 사는 법’을 담으려 했는데… 어느새 ‘누가 더 똑똑하게 빠져나가나’ 경쟁이 되어버렸구나.”
바로 그 순간, 여우가 성큼 들어왔어요.
“잠깐! 저, 판관님! 꿀벌들이 받은 꿀 한 수저도 규칙 위반입니다. 규칙 15조 3항에 따르면, 꿀 분배는 매주 첫째 날에만 가능하니까요!”
부엉이는 여우를 조용히 바라보며 말했어요.
“그 규칙을 만든 건, 꿀이 넘칠 때 다툼을 막기 위해서였지.
하지만 지금 꿀벌들은 울고 있어. ‘정의’란 규칙을 잘 쓰는 것보다, 왜 그 규칙이 생겼는지를 아는 것이란다.”
여우는 머쓱해졌지만, 여전히 불만스러운 표정이었죠.
그때, 꿀벌 한 마리가 천천히 말했어요.
“우리는 일한 만큼 꿀을 받고 싶고, 우리가 만든 꿀이 어디로 가는지를 알고 싶어요.”
마을은 잠시 정적에 휩싸였어요.
그 순간, 너구리가 조용히 일어섰어요.
“그래서… 우리가 규칙을 고쳤으면 해요. 저는 마음조항을 추가할 것을 요청해요"
“마음조항?” 부엉이 판관이 고개를 갸웃했어요.
“네! 규칙을 적용하기 전에 꼭 한 번, 그 규칙이 누구에게 상처가 되는지, 누가 웃고 있는지, 누가 울고 있는지 생각해 보는 조항이에요.
지금처럼 글자만 보고 다투는 게 아니라, 마음을 먼저 보는 규칙이요.”
그러자 고슴도치가 조심스럽게 말했어요.
“나는 이 규칙이 좋아. 그동안 마음대로 말도 못 하고 규칙만 읊었거든…”
하나둘씩 손(발?)을 든 동물들.
너구리의 ‘마음조항’은 점점 지지를 받기 시작했어요.
마침내, 부엉이 판관은 무겁던 깃털 펜을 내려놓고 고개를 끄덕였죠.
“ 마음조항 1: 규칙은 모두가 행복하기 위해 존재하며, 마음 양심에 물어본다."
그날 이후, 규칙마을에는 새로운 변화가 시작되었어요.
마을 곳곳엔 ‘마음조항’을 적은 작은 간판들이 걸리기 시작했고,
여우도 예전처럼 뻔뻔하게 행동 못해요.
벌들은 꿀을 나누는 날, 드디어 웃었어요.
“이제야 진짜 우리가 함께 사는 것 같아.”
이 동화는 법과 규칙이 본래의 목적을 잊은 채 형식에만 얽매이거나 법을 잘 아는 사람에게 이용을 당하면 공동체 사회가 위험해지고 믿음이 깨질 수 있음을 아이들 눈높이에서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