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 가족의 다섯 번째 질문
세상과 나 그리고 이유를 못 찾은 사람들
저녁이 되자 도시의 소음은 조금씩 낮아졌다.
자동차 경적은 숨을 고르고, 상가의 불빛은 하나둘 꺼졌다.
비둘기 가족도 하루의 날갯짓을 접을 시간이었다.
“오늘 국회의사당까지 날기엔 너무 멀고 어둡구나.”
증조할아버지 소피오스가 말했다.
“저 아파트 옥상은 어때요?”
두리가 고개로 가리켰다.
오늘 만났던, 예전에 비둘기에게 밥을 줬다가 벌금을 냈던 할아버지의 집 근처였다.
“좋다. 오늘은 그곳에서 쉬자.”
비둘기들은 조심스레 아파트 난간에 내려앉았다.
그때였다.
아래층 창문 하나에서 불이 켜졌다.
그리고 또 하나.
그리고 또 하나.
“어?”
막내 누리의 눈이 커졌다.
“이 시간에… 출근하나?”
창문 안을 들여다본 순간,
비둘기들은 동시에 고개를 갸웃했다.
사람들은 옷을 갈아입지도, 가방을 들지도 않았다.
대신 잠옷이나 운동복을 입은 채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퍽! 콰앙! 레벨 업!!”
화면 속에서는 피가 튀고, 검이 날아다니고,
숫자가 번쩍였다.
“레벨이 오른다고?”
중세 철학 비둘기 아퀴비둘이 중얼거렸다.
“현실의 계단은 그대로인데?”
잠시 뒤, 문이 열렸다.
아침에 봤던 그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는 쟁반에 밥을 올려
조심조심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밥은 먹고 해야지.”
“응.,.”
청년은 젓가락을 들었다가,
한 손으로는 다시 마우스를 붙잡았다.
밥을 먹고, 다시 게임.
레벨 업. 또 게임.
그 모습을 보며 두리가 말했다.
“저 사람… 낮에는 자고, 밤에만 살아.”
비둘기 가족은 고개를 끄덕였다.
“조사해 봤는데,”
누리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 아파트에만 저런 방이 세 개나 더 있어.”
“드문 일이 아니란 말이구나.”
소피오스의 눈이 깊어졌다.
근대 철학 비둘기 새벽이 말했다.
“저들은 밖으로 나가지 않는 게 아니라…
나갈 이유를 잃은 것 같아.”
그때 아퀴비둘이 코를 훌쩍이며 말했다.
“우리 자식이 저러면 난 날개를 비틀 정도로 화가 났을 텐데.”
달빛이 조용히 답했다.
“하지만 저 할아버지는 화내지 않네.”
창문 안,
할아버지는 말없이 그릇을 치웠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왜 아무 말도 안 할까?”
두리가 물었다.
소피오스가 천천히 말했다.
“사랑은 때로 훈계보다 조용하게 기다린다.”
게임 속에서 또다시
“레벨 업!”이라는 소리가 울렸다.
누리가 고개를 저었다.
“밖에서는 한 발도 못 나가는데,
안에서는 계속 올라가네.”
“현대의 고립은 감옥처럼 보이지 않는다.”
소피오스가 말했다.
“따뜻하고, 밝고,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다고 느끼게 하지.”
잠시 침묵.
그때 화면 속 게임이 멈췄다.
청년은 잠시 손을 떼고 창밖을 봤다.
난간 위 비둘기와 눈이 마주쳤다.
“비둘기…?”
청년이 중얼거렸다.
그 순간,
비둘기들은 알았다.
밖으로 나오는 계기는 거창한 목표가 아니라,
‘나를 바라봐주는 시선’ 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저 사람에게 필요한 건 레벨이 아니라…”
두리가 말했다.
“… 문을 여는 이유.”
달빛이 이어 말했다.
"구구구구 구구구"
비둘기 가족이 울자
청년이 벌떡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시끄러워!"
그 순간
툭.
창문 근처에 있던 작은 인형 하나가 창밖으로 떨어졌다.
청년은 굳어버렸다.
문턱 앞에서 한 발도 못 나갔다.
“저 인형…”
누리가 숨을 삼켰다.
청년이 바닥에 떨어진 인형을 바라보고 있다.
"초등학교 때 발표 잘한다고 선물 받은 인형인데, "
청년이 매서운 눈으로 비둘기 가족들을 바라본다.
비둘기 가족은 마치 얼음이 된 듯 꼼짝 못 한다.
잠시 후,
청년은 슬리퍼를 신고 문을 열었다.
아주 천천히, 정말 오랜만에.
계단을 내려와 인형을 주워 들었다.
손에 쥔 인형은 작았지만, 얼굴은 오래된 기억처럼
인형을 바라보며 먼지를 턴다.
그날 밤, 비둘기 가족은 조용히 날개를 접었다.
“고립이란…”
새벽이 말했다.
“밖에 나가지 않는 게 아니라,
나가도 괜찮다는 확신이 없는 상태야.”
소피오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은 거대한 희망보다,
아주 작은 이유 하나로 움직이거든.”
두리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럼 오늘 우리의 질문은 이거네.”
비둘기 가족은 동시에 생각했다.
‘왜 나오지 못할까?’
그리고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작은 이유가 되어줄 수 있을까?’
비둘기들은 날개를 접고
아파트 불빛 사이에서 조용히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