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모습은 무엇일까

비둘기 가족의 네번째 질문

도대체 ‘나’를 나답게 만들어주는 것은 무엇일까?


도시는 초여름 바람이 불고 있었다.

비둘기 가족은 공원 벤치에 앉은 한 할아버지를 내려다보며 서로 속닥거렸다.


“저분, 며칠 전 우리에게 밥 주다가 벌금 맞았던 분 아니야?”

막내 누리(현대 철학 비둘기)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엄마 비둘기 달빛이 깊은 숨을 내쉬었다.

“그래… 그 뒤로는 밥 주시는 분이 하나둘 줄었지.”


할아버지는 작은 영수증을 펼쳐 들고 있었다.

“아이고… 이 비둘기들 먹이 좀 줬다고 벌금이라니.

뭐 이렇게 각박해졌대…”


할아버지의 어깨가 초라하고 쓸쓸해 보였다.

그 모습을 본 비둘기 가족은 마음이 아렸다.


소피오스(고대 철학 비둘기)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누군가에게는 작은 친절이, 어떤 이에게는 규칙 위반이 되는 모순…

정말 인간 세계는 이해하기 어렵구나.”


그때였다.


할아버지가 벌떡 일어나 말했다.

“큰일 났네! 소란이 데리러 학원 가야 하는데!”


비둘기 가족은 일제히 날갯짓을 했다.

“따라가 보자!”


초등학교 앞은 이미 아이들로 북적거렸다.

비둘기 가족은 전깃줄 위에 줄지어 앉아 내려다보았다.


누리가 깜짝 놀라 말했다.

“어… 애들이 왜 다 비슷해 보여?”


정말 그랬다.

아이들은 죄다 똑같이 마른 팔다리, 비슷한 흰 운동화,

긴 생머리, 가방은 같은 브랜드, 치마길이 심지어 걷는 모습과 표정도 비슷했다.


게다가 아이들은 서로에게 말했다.

"나 내일부터 다이어트 해야해"

"이번에 우리반 다 빼고 있대"

"살짝만 더 빠지면 인싸 느낌 날거야"


두리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왜 다 이렇게 말랐어. 먹을 것이 없어 바닥에 떨어진 음식을 먹는 도시의 새들도 저렇게는 마르지 않았어."


할아버지는 이리저리 고개를 길게 빼며 눈을 이리저리 돌린다.


“소란아? 어디 있니? 오늘도 못 알아보면 안되는데.


아이들이 동시에 뒤돌아봤다.


“네?”

“저요?”

“저 부르셨어요?”


할아버지는 식은땀을 흘렸다.

“아니… 그게… 소란이가… 우리 집 소란이가 아니네…”


누리가 중얼거렸다.

“도대체 누가 소란인지 모르겠네…”


메디우스(중세 철학 비둘기)가 웃으며 말했다.

“저러다 손주 아닌 애 데려가겠어!”


그때 새벽(근대 철학 비둘기)이 심각하게 말했다.

“근대 철학에서도 말했지. ‘개성은 존재를 만드는 기초’라고…

근데 저 상황은… 개성이 다 지워져버렸는데?”


달빛이 쓴웃음을 지었다.

“지금 아이들은 똑같아지려고 애쓰는 시대에 사니까.”


바로 그때였다.


할아버지가 한 아이 앞에서 멈춰 섰다.

그리고 손에 들고 있던 생수병을 흔들었다.


“소란이? 너 왜 이렇게 얼굴이 갸름해졌어?

아픈 거 아니지??”


아이의 눈이 커졌다.


“아… 아니야, 할아버지. 다이어트 한 거야.

학교 애들이 ‘다들 이렇게 먹어야 해’라고 해서… 나도…”


할아버지는 한숨을 푹 쉬었다.

“다이어트? 너는 원래도 예뻤어. 근데 왜 남들 말대로 살아야 하니.”


소란이는 할아버지의 시선을 피했다.

“그냥… 다들 그러니까… 나만 다르면 좀 그래서…”


그 말을 들은 비둘기 가족은 가만히 날개를 접었다.


누리가 말했다.

“결국 아이들도 서로를 닮아가려고 애쓰는 거구나.

‘너 자신을 알라’던 철학자의 말은 어디로 갔지?”


소피오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이 모두 똑같으라고 외칠수록, 자신을 잃어버리는 법이지.”


그때, 할아버지가 소란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소란아. 나는 네가 천 명 속에 있어도 바로 알아본다.

얼굴이 조금 달라져도, 키가 자라거나 말라 보여도.

네 눈빛은 그대로니까.”


소란의 눈이 살짝 흔들렸다.

“정말…?”


“그럼. 사랑하는 사람은 어떤 모습이든 눈에 들어온단다.”


비둘기 가족은 이 장면에서 모두 침묵했다.


아퀴비둘(중세 철학 비둘기)이 천천히 말했다.

“결국 ‘너’를 알아보는 존재가 곁에 있다는 것…

그게 인간 세계의 희망인가 보구나.”


누리가 마지막 질문을 하듯 중얼거렸다.


“우리가 찾는 건 다 똑같아지는 세상이 아니라…

정말 나를 알아봐주는 단 한 사람일지도 몰라.”


할아버지와 소란이는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갔다.

비둘기 가족은 그 뒤를 따라 부드럽게 날아올랐다.


그리고 서울 하늘 위에

오늘의 질문이 조용히 보였다

'나만의 모습은 무엇일까?'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