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 가족의 세 번째 질문
도시의 오후 햇살은 골목길 사이로 부드럽게 스며들고 있었다.
비둘기 가족은 국회의사당을 향해 날아가던 길에 잠시 쉬려고 작은 골목 위로 내려왔다.
그때, 아래쪽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아이고, 어째 이런 일이…!”
낡은 주택가 앞에서 한 할머니가 허리를 굽힌 채 뭔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비둘기 두리가 고개를 빼꼼 내밀자, 한 길고양이가 오래된 노끈에 꽉 묶여 발버둥 치고 있었다.
누리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어? 왜 저렇게 꽁꽁 묶여 있어?”
증조할아버지 비둘기 '소피오스'는 수염 같은 깃털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속박당한 자는 자유를 갈망하는 법이지… 인간이나 고양이나.”
'누리'는 피식 웃었다.
“증조할아버지, 지금 또 철학 모드네.”
그때, 할머니는 골목 반대편에 있는 아이들에게 소리쳤다.
“얘들아! 저기 가새 좀 가져와라! 얼른! 가새!”
아이들은 동시에 멈춰 섰다.
“가새…?”
“가…새…?”
“새(鳥)인가? 새를 잡아오라는 건가?”
초등학생 셋은 서로의 얼굴을 보더니 갑자기 회의를 시작했다.
“고양이가 묶여 있으니까… ‘가서 새를 쫓아라’는 뜻 아닐까?”
“맞아! 고양이도 무서울 텐데, 새들까지 날아오면 안 되잖아!”
“그럼 가새 = ‘가! 새!’…? 새들 보고 가라는 뜻이야!”
비둘기 '두리'는 깜짝 놀라 날개를 떨었다.
“엥? 그게 어떻게 그렇게 해석돼…?”
하지만 아이들은 이미 결론을 내린 뒤였다.
그들은 하늘과 비둘기를 향해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외쳤다.
“새야! 저리 가! 가새! 새야, 빨리 가!!”
그리고 주변에 있는 비둘기들을 향해 손을 흔들기 시작했다.
“비둘기! 까치! 다 도망가! 가새~~~~!”
비둘기 가족은 모두 굳었다.
할아버지 비둘기 '아퀴비둘'이 당황해 말했다.
“아니, 우리 보고 지금 ‘나가라’는 건가요?”
아빠 비둘기 '달빛'은 날개를 접으며 한숨을 쉬었다.
“사람들이 말로 서로 오해하는 건 봤어도…
비둘기한테 오해하는 건 처음 보네…”
그때 할머니가 상황을 알아채고 깜짝 놀라 소리쳤다.
“아이고, 얘들아!!!
내가 언제 새를 쫓으라 했어!
가새가 가위여! 가위! 충청도 말로 가새라고 한디!”
아이들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가위요?”
“아, 그 ‘가새’…?”
“사투리였네…”
비둘기 '누리'가 날개를 파드닥하며 웃으며 말했다.
“아… 인간 세계에서도 통역이 필요하구나.”
할아버지 '아퀴비둘'이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사람은 같은 말을 쓰지만, 뜻은 지역마다 달라지지.
중세 철학에서도 말했지. ‘언어란 늘 변하는 생명체’라고.”
아이들은 부끄러워 머리를 긁적였다.
하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가방 안에서 가위를 꺼내 들었다.
“여기 가위예요!!”
할머니는 그 가위를 받아 들고 고양이를 묶은 노끈을 조심스레 잘랐다.
“거, 됐다. 얼른 가거라.”
풀려난 고양이는 잽싸게 뛰어가 담장 위로 올라섰다.
그리고 뒤돌아보며 ‘냐옹’ 하고 작은 울음을 남겼다.
아이들은 땀을 닦으며 웃었다.
"다행이다! 근데 우리 개웃겼지?"
"야! 할머니 사투리 현웃겨 그렇지?"
할머니는 아이들이 욕하는 것 같이 들려 소리를 지른다.
"아이들이 할머니한테 개? 뭐시라고?"
아이들은 당황해 손을 흔들며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으아! 아니요! 욕 한거 아니에요!"
두리가 깔깔 웃는다.
"아이들은 줄임말을 쓰고 할머니는 사투리를 쓰고 서로 지금 다른 언어로 이야기하네"
달빛이 조용히 말했다.
"같은 한국어를 쓰지만 마음속에는 다른 사전이 있는 거 같아."
소피오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해피엔딩이긴 하나. 말 하나 때문에 벌어진 큰 오해이기도 하지.”
누리가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 왜 그런 오해가 생기는 걸까요?”
달빛이 부드럽게 말했다.
“말은 같아도, 듣는 귀가 다르기 때문이지.
사람마다 자라온 곳도, 경험도, 마음도 다르거든.”
소피오스가 천천히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오늘의 질문은 이것이다.”
‘왜 같은 말을 쓰면서도 서로 다른 뜻으로 듣게 될까?’
비둘기 가족은 날개를 활짝 펼쳤다.
햇살을 품은 골목 위에서 하늘로 올라가며
오늘의 질문을 부드럽게 흘려보냈다.
"같은 말인데 왜 다른 뜻일까?"
하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구름 위로 질문이 새겨진 듯하다.
비둘기 가족의 첫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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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 가족의 두번째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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