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 가족의 일곱 번째 질문
배꼽시계는 거짓말을 안 해
비둘기 두리는 아침마다 제일 먼저 깼다.
알람도 아니고, 자동차 경적도 아니고 자기 배 소리였다.
“꼬르륵.”
두리는 배를 한 번 쳐다봤다. 배는 대답이 없었다.
대신 다시 말했다.
“꼬르르륵. (아침입니다.)”
“너는 왜 이렇게 성실하니.”
두리가 중얼거렸다.
옆에서 막내 누리가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두리 오빠… 나도 배가…저 자동차 소리보다 시끄러워.”
그때 증조할아버지 소피오스가 엄숙하게 말했다.
“배꼽시계는 민주주의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울리니까.
배고픔을 느낀다는 건, 아직 마음이 깨어 있다는 뜻이다.”
아퀴비둘이 코를 훌쩍이며 끼어들었다.
“공평이라… 배는 공평하지만, 밥상은 공평하지 않지요.”
새벽(로고스)과 달빛(에피스테미)은 난간 끝에서 아래를 내려다봤다.
아파트 창문들이 하나둘 켜지면서, 집집마다 ‘다른 아침’이 시작되고 있었다.
“자, 오늘은 인간들의 배꼽시계를 들어볼까.”
누리가 신이 나서 날개를 폈다.
“배꼽시계 특집! 제목은… ‘누구 배가 제일 큰 소리로 우는가’!”
“그건 너야.”
두리가 즉답했다.
먼저 보이는 건 꼭대기층이었다.
커튼이 천천히 열리고, 어제 새벽에 ‘돈이 돈을 출근시키던’ 그 집이었다.
부드러운 음악이 깔리고, 하얀 식탁 위에 반짝이는 접시가 줄줄이 놓였다.
“우와… 임금님 밥상이다.”
누리가 눈을 동그랗게 뜨자, 두리가 덧붙였다.
“임금님은 배꼽시계도 VIP라서 조용히 울어.”
그 집의 배는 정말 얌전했다.
“음… (여유롭군.)”
마치 그런 느낌이었다.
그다음 창문은 10층쯤.
정장을 입은 남자가 허둥지둥 넥타이를 매며 뛰어다녔다.
커피를 들이켜고, 빵은 한 입 베어 물다 말고 가방에 쑤셔 넣었다.
그의 배꼽시계는 소리 없이 떨고 있었다.
“꼬르… (나중에…)”
마치 배가 자기감정을 숨기는 것 같았다.
“배도 눈치가 있네.”
아퀴비둘이 말했다.
“저 배는 ‘지각’보다 ‘배고픔’을 아래로 내렸어.”
그런데 더 또렷한 소리가 아래층에서 들렸다.
6층 창문이 벌컥 열리더니, 아이 엄마가 전쟁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토스터기는 빵을 뱉고, 냉장고는 “쾅!” 닫히고, 아이는 양말 한 짝을 물고 뛰어다녔다.
“엄마! 오늘 급식 맛없는 날이야!”
“그럼 아침을 더 먹어!”
“시간이 없어!”
“먹으면서 뛰어!”
아이 둘이 밥을 입에 넣고 달아나는 동안, 엄마는 남은 반찬을 숟가락으로 훑어 입에 넣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기 컵에 물을 따라—그 물로 배를 달랬다.
그 집 배꼽시계는 울지 않았다.
정확히는, 울 시간이 없었다.
“저 배는… 울다가도 끊기겠네.”
두리가 말했다.
“‘꼬르’ 하고 울면, 바로 ‘엄마!’가 덮어.”
그때 2층 창문이 아주 살짝 열렸다.
커튼 뒤에 누군가 그림자처럼 서 있었다.
아침이 되었는데도,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며칠 전 비둘기들이 보았던—밤에만 게임을 하던 그 청년일지도 몰랐다.
배꼽시계는 더 작고 더 깊은 소리로 울었다.
“꼬… (괜찮아. 난 익숙해.)”
누리가 가만히 날개를 접었다.
“익숙하다는 말이… 제일 슬퍼.”
소피오스는 한참 창문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배고픔은 몸의 질문이고, 익숙함은 마음의 방어다.
너무 오래 배고프면, 질문을 포기하지.”
잠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러다 아래 놀이터 쪽에서 “꼬르륵!”이 아주 크게 울렸다.
비둘기들 배였다.
“우린 철학자라며.”
두리가 배를 툭 쳤다.
“철학자는 생각으로 배를 채우는 줄 알았는데.”
“그건 인간이 만든 소문이야.”
새벽이 말했다.
“철학자도 빵이 필요해.”
아퀴비둘이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배부른데도 나누지 않는 건, 신념이 아니라 계산이다.
그러니까… 나눔이 필요하다는 뜻이지요.”
누리가 갑자기 질문을 던졌다.
“배부른 사람들은… 배고픈 사람을 보면, 나눠주고 싶지 않을까?
그게… 환상일까?”
두리는 아래를 내려다봤다.
어떤 집은 식탁이 넘치고, 어떤 집은 빈 컵만 남아 있었다.
같은 아파트, 같은 아침, 같은 하늘인데
배꼽시계의 표정은 전혀 달랐다.
소피오스가 말했다.
“환상은 ‘불가능’이 아니라, ‘잊은 가능성’ 일 때가 많단다.”
그때, 6층 엄마가 창문을 열고 남은 빵 한 조각을 비닐에 싸서 밖에 내놓았다.
“새들이라도 먹어라…” 하고 중얼거리며.
비둘기 네 마리의 눈이 동시에 번쩍였다.
철학은 잠시 멈췄다.
현실이 ‘빵’ 모양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두리가 엄숙하게 선언했다.
“철학자들, 출동.”
누리가 먼저 날아가며 소리쳤다.
“이것이 바로 ‘배꼽시계의 연대’다!”
비둘기들은 빵을 나눠 먹었다.
누리가 제일 작게 떼어먹자, 아퀴비둘이 감동한 얼굴로 말했다.
“오… 막내가 드디어 절제를 배웠구나.”
누리가 대답했다.
“아니요. 절제 아니고… 나눠 먹으면 더 맛있어서요.”
소피오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오늘의 결론은 이거다.”
그리고 비둘기 가족의 오늘 질문이, 아침 공기 속에 또렷하게 떠올랐다.
비둘기들은 다시 날개를 활짝 펴 하늘로 올라갔다.
구름 위에 질문이 새겨지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