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순서를 매겨야 할까?

비둘기 가족의 여덟 번째 질문

모두 다른데, 왜 줄을 세울까?


비둘기 가족은 오늘도 아파트 난간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아래에서는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닫히고, 유모차가 지나가고, 커피를 든 손들이 출근 시간에 맞춰 흔들렸다.


“인간들은 늘 서두르지.”

증조할아버지 '소피오스'가 날개를 가지런히 접으며 말했다.


“서두를수록, 무엇을 향해 가는지는 잘 잊어버리지만.”

그런데 그 틈을 뚫고,

어디선가 아주 수상한 냄새가 올라왔다.


“어?”

두리가 고개를 쭉 빼며 말했다.


“이 냄새… 배꼽시계가 먼저 반응했어.”

꼬르륵.

누리가 깜짝 놀라 배를 눌렀다.


“와, 내 배꼽시계 철학 수업 시작했어.”

“배는 언제나 정직하지.”

소피오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대 철학자들은 배를 속이지 말라고 했단다.

욕망을 인정하는 게 절제의 시작이거든.”

“여긴 아파트 냄새가 아니야.”

엄마 새벽(로고스)이 날개를 접으며 말했다.

아파트에서는

세제 냄새, 커피 냄새, 택배 상자 냄새가 섞여 있었지만

이번 냄새는 달랐다.


기름이 지글거리는 소리,

마늘이 볶아지는 냄새,

달콤한 소스와 구수한 국물 향이

바람을 타고 천천히 퍼지고 있었다.


“중앙공원이야.”

아빠 달빛(에피스테미)이 주변을 살폈다.

“사람들이 먹는 거 앞에서는 분석도, 체면도 잠시 내려놓거든.”

비둘기 가족은 아파트를 벗어나

냄새를 따라 날아갔다.


공원 한가운데에는 커다란 무대가 있었고

사람들이 빽빽하게 둘러서 있었다.

〈서울 요리 경연대회〉

라는 현수막이 바람에 펄럭였다.

“아!”

누리가 날개로 아래를 가리켰다.

“저 사람, 저 골목에서 줄 제일 긴 집 사장님이야.”


“저쪽은 시장에서 늘 일찍 매진되는 분.”

아퀴비둘이 코를 훌쩍이며 덧붙였다.

“사람들이 그분 요리를 ‘은총’이라 부르더군.”


요리사들은 저마다 다른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다.

손놀림도, 표정도, 요리도 전부 달랐다.

누군가는

할머니에게 배운 전통 국을 끓였고,

누군가는

제철 딸기로 새로운 요리를 만들었고,

누군가는

보기만 해도 정체를 알 수 없는 퓨전 요리를 내놓았다.


“다 다른데?”

누리가 말했다.

“응.”

두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다 맛있어 보이는데?”

그때 심사위원들이 등장했다.


사람들이 숨을 죽였다.

1등.

2등.

3등.

숫자가 적힌 판이 올라갔다.


점수가 매겨지고, 순서가 정해졌다.

방금 전까지 웃고 있던 얼굴들이

조금씩 굳어졌다.


1등은 웃었지만 어깨가 딱딱해졌고,

2등은 웃고 있었지만 눈이 흔들렸고,

3등은 고개를 살짝 숙였다.

“방금 전까진 다 즐거워 보였는데…”

누리가 중얼거렸다.

새벽이 말했다.


“그래도 기준은 필요해. 경연이니까.”

누리는 바로 물었다.

“근데 저 국이랑 저 요리는

어떻게 줄을 세워?”


“점수로.”

새벽이 대답했다.


“점수로… 맛을 재?”

누리가 눈을 크게 떴다.

“사람마다 배꼽시계도 다른데?”


아퀴비둘이 코를 훌쩍이며 말했다.

“중세에는 기준을 절대적인 진리라 믿었지.

그래서 틀린 사람이 아주 많아졌단다.”


새벽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다 말했다.

“기준이 없으면 혼란스러워.”


누리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기준 때문에 상처받는 거야.

줄에서 밀려난 마음은,

점수로는 설명이 안 되잖아.”.”


그때,

지금까지 조용히 보고만 있던 소피오스가 입을 열었다.

“고대 철학에서는 이렇게 말했단다.

‘좋고 나쁨은 나눌 수 있지만,

좋고 좋음을 줄 세울 수는 없다.’”


비둘기들은 무대를 내려다봤다.

사람들은 박수를 치고 있었지만

박수의 이유는 제각각이었다.

누리는 배꼽시계를 눌렀다.


꼬르륵.

“난 그냥 다 먹고 싶은데.”

누리가 말했다.

두리가 웃으며 맞받아친다.

“그러니까.

경연 말고 잔치였으면 좋았겠다.”

새벽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준은 정리고 잔치는 관계니까.”


요리사들은 무대를 내려와

사람들과 음식을 나누기 시작했다.

순위표는 옆에 세워진 채

비둘기 가족은 나무 위에 앉아

그 장면을 바라봤다.


오늘의 질문은

중앙공원 위로 천천히 퍼졌다.


"꼭 순서를 매겨야 할까"


비둘기들은 알고 있었다.

이 질문은

아파트를 벗어난 만큼

더 넓어졌다는 걸.


아주 멀리,

국회의사당이

희미하게 보였다.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