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 가족의 열 번째 질문
한적한 오후, 유난히 바람이 잔잔했다.
비둘기 가족은 학교 운동장을 지나 도심 위를 날다 어느 건물 난간에 내려앉아 쉬고 있었다.
아래에서는 한 할아버지가 니어카에 박스와 캔, 플라스틱 등을 수북하게 쌓아서 힘든 발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와 할아버지 기술 좋으시다 쓰레기로 움직이는 탑을 만들었어!.”
나, 두리가 말했다.
“저 할아버지 몸의 3배는 넘는 크기인데?.”
할아버지는 니어카를 힘겹게 끌며 골목을 한 바퀴 돌았다.
버려진 캔, 박스, 음료수병 등
손은 느렸지만 멈추지 않고 쌓았다.
“저것도 생존 활동일까? 아니면 둥지를 만드는 것일까?."
막내 누리가 질문했다
할아버지 비둘기, 아퀴비둘이 코를 훌쩍이며 말했다.
“먹이를 찾는 것도 아니고, 둥지를 만드는 것도 아니지.”
“그럼 왜 저러죠?”누리가 물었다.
할아버지는 계단을 올라 집으로 천천히 들어갔다.
문은 오래되어 삐걱 소리를 냈고,
안쪽에서는 기침 소리가 들렸다.
조금 뒤, 할아버지는 다시 나왔다.
이번엔 할머니의 팔을 부축하고 있었다.
할머니는 한쪽 다리를 절었고,
계단을 내려올 때마다 숨을 골랐다.
“천천히, 괜찮아.”
할아버지가 말했다.
그 뒤를, 스무 살쯤 되어 보이는 청년이 따라 나왔다.
손에는 작은 장난감을 꼭 쥐고 있었다.
“저 사람은…”
“어른인데, 아이 같아.”
엄마 비둘기 새벽이 조용히 말했다.
“장애가 있는 손자야.”
비둘기들은 말이 없었다.
동물 세계에서는 아픈 새끼는 무리의 속도를 늦춘다.
그래서 떠난다. 떠나야 산다.
“이상해.”
누리가 먼저 말했다.
“저 할아버지는 떠날 수 있잖아.”
아빠 비둘기 달빛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혼자 살면 훨씬 편할 거야.”
할아버지는 손자를 데리고 병원 쪽으로 걸었다.
신호등 앞에서 손자가 멈추자
할아버지는 몸을 낮춰 눈을 맞췄다.
“괜찮아. 기다려도 돼.”
그 말은 아주 짧았지만
이상하게 길게 들렸다.
아퀴비둘이 낮게 말했다.
“중세 철학에서는
고통을 감당하는 이유를
신의 뜻에서 찾았지.”
소피오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고대 철학에서는 이렇게 말했단다.
덕은 선택 속에서 드러난다고.”
“떠나지 않는 것도… 선택이야?”
누리가 물었다.
소피오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가장 어려운 선택이지.”
병원에서 나온 뒤
할아버지는 다시 니어카를 끌었다.
손자는 봉투를 꼭 붙잡고 따라왔다.
할머니는 그 모습을 벤치에서 지켜봤다.
그날 할아버지는 자신의 키보다 4배가 높은 종이를 팔아
5천 원을 벌었다. 할아버지가 혼자 말을 했다.
“이 돈으로 할머니와 손자를 위해 먹을 거를 사야겠다.”
비둘기들은 동시에 숨을 멈췄다.
“이상해.”
누리가 속삭였다.
“저 사람은 힘들어 보이는데… 포기하지 않아.”
달빛이 조용히 말했다.
“우리는 살기 위해 떠나는데, 저 사람은 살기 위해 남는구나.”
비둘기 가족은 난간 위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날은 질문이 나오지 않았다.
대신, 처음으로
대답 같은 것이 마음에 내려앉았다.
소피오스가 말했다.
“인간은 약해서 존엄한 게 아니라,
약함을 안고도 떠나지 않을 때
존엄해지는지도 모르겠구나.”
해가 조금 기울었다.
할아버지는 손자와 할머니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다.
느린 발걸음이었지만 뒤돌아보는 얼굴에는 따뜻함이 있었다.
비둘기들은 그 모습을 끝까지 지켜봤다.
그리고 생각했다.
그날 밤,
비둘기들은 유난히 조용히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