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기만 해도 될까?

비둘기 가족의 열 다섯번 째 질문

밤이 깊어질수록 공원에는 이상하게 바람이 많이 불었다.

벤치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 사람들처럼 가만히 있어도 되지 않을까?’

그래서 실험을 하기로 했다.

먹이도 찾지 않고, 자리도 옮기지 않고,

그냥 가만히 앉아 있기.

기회가 오면 그때 날면 되는 거 아닌가?

“아무것도 안 해보기!”


누리가 눈을 반짝였다.

“형, 그거 완전 편한 철학이다.”

그래서 나와 누리는 느티나무 가장 편한 가지를 골라 날개를 접고 앉았다.


소피오스 증조할아버지는 우리를 한 번 보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퀴비둘 할아버지는 코만 훌쩍였다.

엄마 로고스는 짧게 말했다.

“바람은 늘 불고 있단다.”

나는 속으로 웃었다.

‘그럼 나에게 다가올 때 잡으면 되지.’

처음 한 시간은 괜찮았다.

두 번째 시간쯤 되니 배에서 '꼬르륵' 배꼽시계가 울기 시작했다.

세 번째 시간이 되자 옆 가지에 앉아 있던 까치가 말했다.

“자리 비었네? 나도 좀 앉을까”

그리고는 우리 자리를 비집고 차지했다. 우리는 한 단계 아래로 밀려났다.

누리가 속삭였다.

“형… 실험 언제 끝나?”

“조금만 더 기다려.”


사실은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이미 네 번은 났다.

그때였다.


“앗! 엄마!”

공원에서 어린 아이 하나가 울음을 터뜨렸다.

손에 쥐고 있던 빨간 풍선이 '휙~'하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바람은 갑자기 세게 불었고 풍선은 가로등을 스치며 위로, 더 위로 올라갔다.

아이의 엄마가 소리쳤다.

“잡아줘요!”


그 순간. 공원을 달리던 한 남성이 주저 없이 뛰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냥 뛰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는 바람 방향을 읽으며

풍선의 이동 경로를 따라

대각선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저 사람… 바람을 보고 있어.’

'휙~ 파~앗'

그가 점프했고 풍선 줄을 정확히 낚아챘다.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와! 대단해요”

“고맙습니다!”

아이의 울음이 웃음으로 바뀌었고 엄마는 남성을 향해 머리를 숙였다.


그는 숨을 고르며 웃었다.

그는 풍선을 잡으려고 갑자기 달린 게 아니라 이미 달리고 있었을 뿐이다.


그 모습을 본 소피오스 증조할아버지가 말했다.

“준비한 자에게 기회가 오는 법이란다.”

아퀴비둘 할아버지가 덧붙였다.

“때는 오는 게 아니라, 맞이하는 것이니라.”


그 말을 듣자 엄마 로고스가 재빠르게 날아올랐다.

멀리서 과자를 먹는 아이와 엄마를 잠시 관찰하더니

과자가 떨어지는 순간을 정확히 노렸다.

'휙~파~앗!' 과자 부스러기가 허공에서 사라졌다.

아빠 달빛도 눈을 재빠르게 움직이더니 벌레가 나올 길목을 먼저 찾아

바람을 타고 미리 이동했다.

'휘~익, 딱!'

벌레가 부리 사이에서 사라졌다.


엄마와 아빠의 모습을 보며 나와 누리는 서로를 바라보왔다.

“…형, 바람은 기다려주지 않네.”


나는 부리로 머리를 긁었다.

“응… 우리가 너무 기다렸어.”

그날 밤, 배는 더 고팠다.

바람은 하루 종일 불었지만

우리는 한 번도 날개를 펴지 않았다.

소피오스 증조할아버지가 조용히 말했다.

“기회는 갑자기 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늘 불고 있었단다.”

나는 물었다.

“그럼 왜 우리는 못 잡았어요?”

증조할아버지는

우리의 접힌 날개를 바라보며 말했다.

“날개를 접고 있었으니까.”


그날 처음으로 알았다.

존재는 그대로도 존엄하지만,

기회는 움직이는 쪽으로 기운다는 것을.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바람은 불평하는 새보다

준비된 새를 먼저 찾는다는 것을.


나는 오늘의 문장을 마음에 적었다.

“날개를 접은 새에게 바람은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아주 작게 덧붙였다.

“준비된 기다림은 무엇일까?”


저기 나무 뿌리 근처에서 벌레가 스물스물 기어나온다.

바로 날개를 펴는 순간이다.



화요일 연재
이전 15화날지 않아도 괜찮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