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 가족의 열 네번째 질문
밤하늘의 별이 하나둘 켜졌다.
마치 누군가 오늘 하루를 하나씩 체크하는 것처럼.
“급히 날면 생각이 떨어진단다.”
소피오스 증조할아버지의 말에
우리는 오늘도 천천히,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공원 한가운데 나무에 나란히 앉았다.
하루를 되감는 시계처럼 말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조금 배가 고팠다.
철학은 배부를 때 하는 거라더니,
우리 집은 늘 반대다.
막내 누리가 날개를 축 늘어뜨리고
엄마 로고스에게 말했다.
“엄마… 난 오늘 먹이도 못 찾았고
형처럼 웃긴 사람도 못 봤고
아무것도 안 한거 같아요.”
엄마 비둘기 새벽은 잠시 누리를 내려다보더니 말했다.
“모두가 뛰지 않으면 우리는 불안해진단다.
벌레든 먹이든 먼저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해.”
나는 그 말이 마음에 안 들어
괜히 누리 편을 들었다.
“왜 누리한테만 그러세요?
저기 공원 벤치에 앉은 사람은 아침부터 지금까지
계속 앉아만 있어요.” 나는 고개를 쭉 내밀었다.
저 사람은 시간이 남은 걸까,
아니면 사람이 남은 걸까?
그런데 정말 이상했다.
벤치마다 사람이 앉아 있었는데
아무도 어디로 가질 않았다.
어떤 청년은 휴대폰을 들고 있었지만
손가락은 거의 움직이지 않았고,
어떤 아저씨는 편의점 앞을 서성이다가
들어갔다 나오기를 세 번이나 반복했다.
나는 그 장면을 보고 이름을 붙였다.
“둥지 입구 테스트”
들어가야 할지, 아직 나갈 수 있을지 결정 못한 새들의 행동과 똑같았다.
“두리.” 누리가 물었다.
“저 사람들… 쉬는 거야?”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쉬는 얼굴은 아니야.”
쉬는 사람은 보통 어깨가 내려가 있고 안정적인데
저 사람들의 눈은 계속 어딘가를 찾고 있었다.
마치 잃어버린 둥지를 찾는 새처럼.
“쓸모없는 사람들인가?”
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그 순간 아빠 비둘기 '달빛'이 날개로 내 머리를 톡 쳤다.
“두리, 그 말은 조심해야 해.” 나는 움찔했다.
“왜요? 아무 것도 안 하고 있잖아요.”
할아버지 아퀴비둘이 코를 훌쩍이며 말했다.
“안 보인다고 없는 건 아니란다.”
나는 다시 아래를 봤다.
청년은 휴대폰으로
‘알바’, ‘단기’, ‘급구’를
계속 검색하고 있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쉰 살쯤 되어 보이는 아저씨가
통장 잔고를 확인하다가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다시 통장을 봤다.
마치 별이 돈으로 바뀌길 바라는 것처럼.
그때였다.
벤치 옆에서 아주 작은 사건이 일어났다.
유치원생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공을 굴리다 청년 발치까지 와 버렸다.
아이는 잠깐 망설이다가 말했다.
“아저씨… 공 좀 던져줄 수 있어요?”
청년은 놀란 얼굴로 아이를 봤다.
잠시 멈칫하더니 천천히 공을 집어 던졌다.
공은 엉뚱한 방향으로 굴러갔다.
아이와 청년은 머쓱해하며 동시에 웃었다.
그 웃음은 오늘 공원에서 본 것 중
가장 큰 움직임이었다.
“두리.” 누리가 속삭였다.
“저 아저씨… 지금은 쓸모 있어 보여.”
나는 아무 말도 못 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아이에게 공을 던져준 사람이었다.
소피오스 증조할아버지가
아주 조용히 말했다.
“고대에는 이렇게 물었단다. ‘잘 산다는 건 무엇인가.’
‘많이 움직이는 것인가', 아니면 '제자리에 있어줄 수 있는가.’라며 말이지”
나는 그 말을 마음속에 넣었다.
비둘기 세계에서는 날지 못하면 위험하다.
그래서 우리는 아픈 새를 두고 떠난다.
그게 살아남는 방법이니까.
하지만 인간은 달랐다.
멈춘 사람 곁에 아이가 다가왔고,
얼굴을 마주 보았다.
날지 않는 새는 틀린 새가 아니다.
아직 날 방향을 찾는 중인 새일 뿐이다.
나는 오늘의 질문을 마음속에 적었다.
“날지 않아도, 괜찮을까?”
바람이 불었다.
나뭇잎이 살짝 흔들렸다.
청년은 여전히 벤치에 있었고,
아이는 공을 따라 뛰어가고 있었다.
나는 날개를 펴며 생각했다.
아마 인간은 쓸모로 존엄해지는 게 아니라,
존재를 포기하지 않을 때
존엄해지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다시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별들이 각자 다른 속도로 깜빡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