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 가족의 열여섯 번째 질문
금빛 찬란한 햇살이 공원 위로 쏟아졌다.
우리 비둘기 가족의 깃털도 하나씩 빛났다.
우리는 날개를 펴며 오늘의 비행 상태를 점검했다.
국회의사당까지는 아직 10킬로미터.
이제 꽤 가까워졌지만, 여전히 한 번에 가지는 않을 것이다.
철학자 비둘기들에게 거리는 늘 숫자보다 질문으로 채워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질문은 급히 날면 잘 떨어진다.
“오늘은 시내 중심으로 간다.”
엄마 로고스가 말했다.
빽빽하게 들어선 건물들은
마치 누가 세상을 네모난 상자에 차곡차곡 담아 놓은 것처럼 길게 늘어서 있었다.
그 건물 벽마다, 옥상마다,
거대한 전광판이 붙어 있었다.
낮인데도 번쩍번쩍했다.
인간은 참 이상하다.
햇빛이 있는데도 또 빛을 켠다.
그날 아침도 그랬다.
우리는 도시의 바람을 따라 날다가
한 건물 벽면에 붙은 전광판을 보게 되었다.
붉은 글씨로 〈속보〉가 떴다.
폭발.
연기.
무너진 건물.
울고 있는 아이가 화면에 비쳤다.
누리가 내 옆에서 작게 말했다.
“형… 저건 뭐야?”
나는 잠깐 화면을 보다가 말했다.
“전쟁.”
누리는 고개를 갸웃했다.
“전쟁이면… 사람들이 많이 다치고, 죽는 거야?”
나는 대답 대신 화면을 바라봤다.
절망이라는 표정이 사람들을 감싸고 있었다.
집은 무너졌고, 눈빛은 흩어져 있었고,
아이의 울음은 화면 밖까지 번져 오는 것 같았다.
그때 소피오스 증조할아버지가 낮게 말했다.
“가장 어리석은 싸움은
이기고도 잃는 싸움이란다.”
아퀴비둘 할아버지도 코를 훌쩍이며 덧붙였다.
“중세의 사람들은
신의 이름으로도 싸웠지.
하지만 신은 누구 편이었는지
끝내 아무도 증명하지 못했단다.”
나는 괜히 날개를 한 번 접었다 폈다.
하늘은 이렇게 넓은데,
사람들은 왜 자꾸 자기 자리만 넓히려 하는 걸까.
그때였다.
전광판 화면이 갑자기 바뀌었다.
이번에는 숫자들이 위아래로 흔들리고 있었다.
경제 뉴스였다.
“주가 급락, 개미 손실 커져.”
“유가 급등, 세계 경제 불안.”
“환율 급등, 기업 휘청.”
아래 거리에서는
사람들이 휴대폰을 보며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어떤 아저씨는 한숨을 쉬었고,
어떤 청년은 머리를 긁적였고,
어떤 아주머니는 장바구니를 든 채 한참 멈춰 서 있었다.
누리가 다시 물었다.
“형… 세상이 지금 많이 안 좋은 거야?”
나는 말했다.
“그런 것 같아.”
그런데 정말 이상했다.
바로 그 아래에서는
카페 창가에 앉아 웃는 사람도 있었고,
횡단보도 앞에서는 아이가 엄마 손을 잡고 까르르 웃고 있었고
어떤 사람들은 빛나는 케리어를 몰며 여행 갈 생각에 들떠 있었다.
누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형… 세상이 두 개야?”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세상은 하나야.”
“근데 왜 어떤 사람은 울고, 어떤 사람은 웃어?”
나는 한참 생각하다가 말했다.
“같은 세상 안에서도
사람들은 서로 다른 하늘을 보는 것 같아.”
아빠 달빛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인간은 멀리 있는 고통을 안다고 해서
곧바로 멈춰 설 수는 없지.
삶은 계속 굴러가니까.”
엄마 로고스가 이어 말했다.
“하지만 모른 척하는 순간,
현실은 더 심각해지고
꿈은 더 작아지지.”
나는 아래를 내려다봤다.
어느 사람들은 걱정했고,
또 다른 사람들은 외면했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때 전광판 아래 작은 가게에 '오픈합니다'라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젊은 청년 하나가 이리저리 의자를 옮기고 화분의 위치를 바꾸고,
유리문을 닦으며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친구처럼 보이는 사람이 옆에서 말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창업한다고? 참 대단해”
청년은 잠깐 멈칫했다.
그러다 웃지도 울지도 않은 얼굴로 말했다.
“경제가 어렵다지만 그래도 해보고 싶어.”
누리가 내게 물었다.
“형… 저 사람은 무서운 거 몰라?”
나는 그 청년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알겠지.
근데 무서운 걸 안다고
꿈까지 접는 건 아닌가 봐.”
소피오스 증조할아버지가
천천히 날개를 정리하며 말했다.
“고대 철학에서는
현실을 보는 눈과
가능성을 보는 눈을
함께 가져야 한다고 했단다.”
아퀴비둘 할아버지도 말했다.
“절망은 사람을 웅크리게 하지만,
꿈은 그 등을 다시 펴게 하지.”
나는 다시 전광판을 올려다봤다.
화면에는 여전히 연기와 숫자가 번갈아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아래를 봤다.
청년은 가게 앞에 '축 개업' 화분을 햇빛이 가장 잘 드는 자리로 조심스럽게 옮겨 놓고 있었다.
어쩌면 꿈은
세상이 좋아서 꾸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세상이 너무 불안해서,
너무 아파서,
그래서 더 필요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의 질문을
마음속에 적었다.
“이런 세상에서도 꿈은 현실을 바꿀 수 있을까?”
나는 날개를 펴며 생각했다.
어쩌면 사람들이 세상을 바꾸는 게 아니라,
꿈이 사람을 먼저 움직여
결국 세상을 바꾸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다시 날아올랐다.
도시는 여전히 불안해 보였고,
뉴스는 여전히 시끄러웠다.
하지만 어딘가에서는
세상에 없던 내일을
조용히 그리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