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친구, 라이언 고영희씨 구하기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었어 ep1

by 라돌

7년 전 어느 봄날, 동생이 내게 말했다.


“누나, 마당에 새끼 고양이가 있어. 엄청 귀여워!”


“그래?”


당시 나는 심드렁하게 대답하고 마음을 쓰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며칠 후 같은 빌라에 살고 있던 이웃이 이사 가게 되었다며, 마당에 찾아오는 길냥이에게 밥을 챙겨줄 수 있겠냐고 부탁을 해왔다.


처음 본 이웃의 부탁에 당황했지만, 간절해 보이는 마음이 전해져 엉겁결에 알겠다고 대답하고 말았다. 그리고 부탁을 수락할 때까지만 해도 잊고 있었다. 내가 가진 책임감과 돌봄의 성향을. 그리고 정말 그때에는 알지 못했다. 내 인생에 고양이, 그것도 길고양이와 꽤 오랜 시간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분명 이웃은 엄마 고양이와 새끼 고양이 한 마리라고 했다. 그런데 마당에 밥을 두었더니, 몽글몽글한 작은 새끼 고양이 세 마리가 엄마 고양이 뒤를 종종거리며 따라왔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치 삑삑이 신발을 신은 아가마냥 보이기도 하여 빙그레 웃음을 짓게 되었다.


살짝 살짝 움직이는 새끼 고양이의 발재간과 호기심 가득한 눈망울이 정말 귀여웠다. 같은 빌라에 사는 여러 이웃도 새끼고양이를 보고 귀여움에 반한 표현을 한마디씩 하고 지나갔다. 그렇게 고양이의 사랑스러움을 알게 된 후 나는 그만 고양이에게 마음을 뺏기게 되었다.


이윽고, 고양이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말았다. 삼색 무늬 엄마 고양이는 반반이라고 불렀다. 얼굴 무늬가 선명한 블랙과 오렌지색으로 반반이었기 때문이다. 새끼 고양이는 무늬가 두 종류였는데, 턱시도 무늬 고양이에게는 하늘이와 땅콩이라고 이름을 지어주었다. 한 녀석은 밤하늘의 별과 같은 무늬를 가져서 하늘이, 다른 녀석은 체격이 작아 땅콩이라 불렀다. 마지막 치즈 무늬 고양이에게는 용맹 하라고 라이언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리고 어느샌가 나는 길고양이에게 질척거리기 시작했다. 자꾸만 보고 싶어졌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눈길을 주고, 마음을 주면, 그리고 이름을 불러주면 정이 붙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것을 상대도 알아채기 시작한다. 내가 너를 좋아한다는 것을. 우리가 서로 통하고 있다는 것을.

마당에 고양이들이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고 나는 매일 밥 셔틀을 하며 새끼 고양이들의 귀여움을 눈에 담았다. 그렇게 어쩌다 길 친구들이 내 마음에 들어와 관찰하는 시간이 길어지니 고양이의 생활과 고양이의 마음이 보이기 시작했다.


비가 세차게 내리치는 어느 여름날, 고양이가 며칠 마당에 오지 않았다. 고양이들은 물을 싫어하기 때문에 특히나 장마철 유난히 긴 비는 길고양이에겐 고역의 시기이다. 그렇게 마음속에서 길냥이를 기다리던 어느 날 반반이 홀로 비를 뚫고 집 마당에 찾아왔다. 그리고 내가 싸놓은 밥 봉지를 물고서는 비를 맞으며 오가기를 반복했다.


‘맙소사!’ 알고 보니 새끼에게 주려고 먼저 밥을 먹지 않고 봉지를 물고가는 것이었다. 천성적으로 물을 싫어하는 고양이인데 엄청난 고양이의 모성애를 반반이를 통해 보게 되었다.


반반이에게는 새끼고양이보다 반년 먼저 낳은, 조금 큰 청소년 고양이도 있었다. 도심에서의 길 생활이 녹록하지 않듯 가끔 다친 고양이를 보곤 하는데, 그 아이는 꼬리를다쳐 꼬리라고 부르는 녀석이다. 이 녀석은 효자, 아니 효묘다. 엄마 고양이가 새로 태어난 동생들을 챙긴다고 힘들어하는 걸 느껴서인지, 주위에서 맴도는 아이라고 이웃에게 전해 들었다. 이 녀석에게 간식을 주면 먼저 받아먹을 만도 한데, 그걸 물고가서는 반반이 앞에 내려놓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눈물이 핑 돌고 만다.


도심 속을 빠르게 지나가는 자동차, 재깍이며 쉴 틈 없이 흘러가는 시계 초침,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그 사이에서 가만히 숨죽여 주위를 둘러보면, 미처 눈에 머물지 않았던 존재가 들어올 때가 있다. 그렇게 무심결에 그냥 스쳐 지나갈 수 있는 것들이 내 인생의 한 장면이 되어 이렇게 따뜻한 온기로 나를 덮는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이웃의 착한 건물주의 배려로 길고양이가 편히 쉴 수 있는 아지트도 생겼다. 이 아지트에 여러 길고양이가 머물렀다가 떠나기를 반복하고 있다.


지금은 무지개 다리를 건넌 고양이도, 영역을 넓혀 이동해 얼굴을 자주 못 보는 고양이도, 중성화 수술을 피해 도망간 녀석도, 죽을 고비를 넘기고 입양되어 행복한 집냥이로 살아가는 아이도 있다.


'라이언!' 이름만 떠올려도 마음이 아련해지는 나의 첫 길냥이 친구. 길 위에서 만난 나를 그저 큰 고양이쯤이라 여기던 녀석. 지붕 위로 올라와 함께 뜨끈한 햇살을 맞으며 낮잠을 자자고 울어대던 나의 고양이 친구. 사랑스러운 라이언.

겨울이 되면 아지트로 돌아와야 하는데, 용맹한 이름처럼 활동 반경이 넓다 보니 이번 겨울은 다른 곳에서 다른 이의 사랑을 받고 있나 보다.


길 위에 사는 많은 고양이 친구들이 오늘도 김이 모락모락 나는 지붕 위 굴뚝 가에서 따뜻하게 식빵을 굽길, 아프지 말고, 다치지 말고, 지금처럼 행복하길. 그리고 고양이를 좋아해 주는 동네 주민들을 많이 만나길 기도해본다. 사랑스러운 나의 길 위의 고양이 친구들이 이번 겨울도 무사히 버텨내길 응원해 본다.


* 길고양이와 친구가 되고 싶다면?

고양이는 개와 다르게 아주 예민한 동물이에요. 먼저 다가가지 않으면 절대 먼저 공격하지 않아요. 고양이에게 다가가 먹이를 주고 싶다면, 천천히, 느긋하게 행동해야 해요. 길고양이들은 특히나 겁이 더 많거든요. 큰 소리를 내지 말고, 살짝 먹이를 주고 멀리 떨어져 지켜보면 어느새 다가와 두고 간 사료와 물을 먹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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