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은 대상에게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었어_프롤로그

by 라돌

어쩌면 오랫동안 스스로를 돌보고 위로하고 싶었던 나는 높은 사회적 민감성의 기질을 가지고 태어났다. 이런 기질 탓에 안타깝고 돕고 싶은 대상이 눈에 잘 들어오다 보니, 눈에 밟히는 대상을 만나면 온 마음을 내어주곤 했다.


그런데 나도 모르는 사이 마음에 공허감과 깊은 우울감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사회초년생인 시절, 혼자 있는 시간이 마치 텅 빈 같고 누군가를 만나 이야기로 가득 채워도 여전히 슬픔이 스며들었다. 그토록 허한 나의 마음속을 이해하고 싶어 꽤 오랜 시간 심리 분석을 받았다.


그리고 상담심리학을 공부하면서 내 안의 나를 만나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래도 괜찮다.'라고 스스로 말해주기 시작했다. 하지만 미묘한 감정을 잘 읽어내는 성향을 가진 나는, 또 습관처럼 결핍이 있는 대상이 눈에 들어오곤 했다. 그리고 익숙한 듯 마음이 먼저 달려가 그들이 회복되기를 바라며 열심을 내곤 하였다.


상담심리사라는 직업이 나와 꽤 잘 맞았고, 활동하는 동안 보람도 컸다. 그런데 늦은 나이 결혼을 하고 두 번의 유산을 겪으면서 ‘진짜 괜찮은 것이, 어떤 괜찮음인지’ 다시금 배워야 했다.

그동안 스스로에게 괜찮다고 말해주기만 하고, 내가 나에게 진짜 괜찮은 행동을 미루고 있었다는 것을 조금 늦게 깨달았다. 휴직을 하며 일과 여러 활동을 내려놓고 회복의 기간을 가지면서 마음과 몸의 안녕을 채웠다.


진정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쉼, 좀 더 산뜻한 마음으로 다시 걸을 수 있게 하는 휴식. ‘괜찮다’는 마음속의 되뇜만이 아니라, 몸과 마음의 에너지 균형을 잡아주기 위한 쉼이 절실히 필요했다.


인생에서 분명 열심히 달려야 할 때도 있지만, 때때로 잠시 쉬면서 나를 돌보야 할 때도 있다. 생각보다 긴 삶 속에서 내가 오랫동안 잘 걸어가기 위해 한 번쯤 내 에너지의 방향이 너무 한쪽으로 쏠리지 않았는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지나고 나서 돌아보면 내가 한 모든 몸짓과 언어에 마음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보게 된다. 그간의 내 삶에서의 돌봄이 어떤 의미였는지, 쉼을 통해 배운 “그저, 괜찮음”은 어떠했는지 나누고 싶었다.


앞으로의 글은 소소한 나의 일상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어쩌면 나를 다독이고 '괜찮다'라고 말하고 싶었던 순간의 에피소드이다.


아직 헛헛한 마음이 크고, 혹여 스스로 ‘괜찮다’고 스스로를 위로하지 못하는 누군가가 내 글을 본다면, 잠시라도 내 글을 통해 입가에 웃음이 생겼으면 좋겠다. 그리고 글을 읽는 분들의 일상에도 잔잔한 행복감이 늘 넘실거리길 응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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