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언의 장례식, 그리고 다시 온 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었어. ep_5

by 라돌

"라이언이 죽었어요..."


아지트를 살뜰히 보살펴 주는 약국 실장님께 카톡 연락이 왔다. 올해 초 겨울이었다.

나는 시험관 시술로 임신을 한 상태였고 유산기가 있어 아지트를 자주 가기가 어려웠다.

바로 전화를 드려서 자초지종을 물으려 했는데, 약국 실장님의 목소리는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잘 들리지 않았다.


"코로나로 지금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요. 어제까지 라이언 몸 상태가 안 좋더니. 갑자기 이렇게 갈 줄이야..."


다음 메시지에 머리가 멍해지고, 심장이 내려앉았다. 너무 놀라 눈물도 나지 않았다.


아지트에는 고양이가 여럿이 있는데 치즈는 총 세 마리다. 흰색이 조금 섞인 아인이와 올치즈 라이언. 어쩌다 가끔 오는 찐빵이의 여자친구도 있지만 근래에는 오지 않는다고 하였다.


일단 마음을 추스르고 아지트로 향했다. 도착했을 때 치즈 무늬 고양이가 내가 만들어준 아지트 겨울 집에 눈을 감은 상태로 누워있었다. 손을 대었더니 굳어있어 얼굴을 자세히 확인하기가 어려웠다.


굳어있는 라이언의 모습은 너무 낯설고 믿어지지 않았다. 그 전주만 해도 건강한 얼굴을 보였기 때문이다. 혹시나 라이언이 갑자기 전염병으로 간 것이라면 남은 아지트 고양이들이 위험하기에 서둘러 장례업체를 알아보고 겨울집에 누워있던 라이언을 장례식장으로 옮겼다.


인근 헤어숍 원장님의 도움으로 장례를 마치고 빈 겨울집과 유골함만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겨울 한기가 차가웠고 날카로운 바람이 마음에 스몄다. 먹먹하여 한동안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날 실장님께 안부를 하며, 장례를 잘 마쳤다고 연락을 드렸다. 실장님은 라이언이 아팠을 때 찍어둔 사진 몇 장을 전송해 주셨다. 그런데 좀 이상했다. ‘라이언이 급격히 그렇게 아파질 수가 있을까?’ 아파서 얼굴이 많이 수척한 모습에서 무언가 찜찜한 마음이 들었다.


라이언이 너무 보고 싶었다. 너무 보고 싶지만 차마 사진을 꺼내보기는 힘들었고, 장례식은 치러줬지만 이별을 맞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내 오랜 친구 사랑스러운 라이언.


그리고 삼일 뒤, 실장님과 헤어숍 원장님이 동시에 연락을 주셨다.


“라이언이 돌아왔어요!”


예수님의 부활도 아니고, 이건 또 뭔 소리인가 싶었다.


분명 라이언이었다. 칭얼거리며 우는 울음소리, 귀여운 꼬리의 살랑거림, 애교 섞인 몸짓이 라이언이 아닐 수가 없었다. 그리고 함께 다니는 짝꿍 아인이 까지 있었다. 라이언은 무척이나 건강했다.


‘아니 라이언의 장례식, 유골함의 주인공은 누구?’


알보고니 그 주인공은 바로 찐빵이의 여자친구였다.

같은 치즈 무늬인 데다 몰골이 안 좋은 상태로 아지트를 찾아 일단 약국 실장님은 얼굴 식별이 어려우셨던 거다. 더욱이 찐빵이 여자친구는 손을 타지 않고 경계가 심한데 실장님의 손을 피하지 않으니 더욱 굳게 라이언이라 믿으셨다.


당시 찐빵이 여자 친구는 너무 아파 사람의 손을 피할 힘이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어쩌면 인간에게 도움을 구했는지도 모르겠다. 아지트는 찐빵이 여자친구에게도 따뜻한 곳이었던 것이다.


아지트에는 모두 중성화된 고양이가 살지만, 영역에 대한 경계가 있는 고양이의 특성상, 원년 멤버가 아니라면 상주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한겨울 눈칫밥을 먹으면서 오가던 녀석이 찐빵이와 그의 여자 친구이다.


만일 찐빵이 여자 친구가 아지트에 있는 동안 찐빵이도 함께였다면, 무지개다리를 건넌 고양이가 라이언이 아니었음을 의심했을 텐데, 상황은 참 장례식의 주인공이 라이언으로 향하게 했다.


그렇게 라이언의 이름으로 장례식이 진행되는 해프닝이 있었지만, 찐빵이의 여자 친구라 불리며 이름도 지어주지 못했던 고양이가 그렇게 별이 되어 한편 마음이 씁쓸했다.

이름도 없던 그 아이가 죽는 순간에는 인간의 따뜻함은 느끼고 떠났기를 바라본다.


이후 이 좋은 봄이 왔다. 올해 봄은 라이언이 살아 돌아와서 인지 유난히도 따뜻했다.


그러나 한 달쯤 뒤, 봄이 온 것과 다르게 어렵게 임신에 성공해 뱃속에 자리 잡았던 내 아기는 심장이 멈춰 하늘로 갔다. 또 한 번의 이별은 날씨와 다르게 여전히 차갑게 시렸다.


우리는 인연의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다. 우연히 만난 지붕 위의 길고양이와 오랫동안 친구가 될 줄 알지 못했고, 라이언이 죽었다가 부활하여 다시 만날 줄도 알지 못했다.

그리고 참 따뜻했던 봄 아주 짧게 내게 머무르다 떠나버린 나의 태아, 이렇게 짧게 인연을 맺고 얼굴도 보지 못하고 가버릴 줄도 알지 못했다.


우리는 태어났기 때문에 살아간다. 신은 우리를 창조한 이유가 있고, 생물을 만든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리가 온 곳으로부터 가는 곳까지 언제 어떻게 이동하게 될 줄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만남이 있다면 이별이 있고, 그 이별이 끝이 아님을 느낀다.


살아가는 동안 어떠한 만남과 어떠한 이별이 있을 줄 미리 알 수 없다. 다만 차갑고 시린 겨울이 지나면 봄이 다시 돌아오듯, 또 그렇게 새로운 인연이 이어질 것이다.


본인이 아지트의 엄청난 화제의 주인공인 줄 알지 못하는 우리 라이언은, 올해 여름 이후로 아지트를 찾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믿었다. 라이언의 용맹함을.

그리고 어제 라이언은 또다시 아지트로 돌아왔다. 여전히 건강하고 자유롭고 용맹하고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지구 온난화 때문에 아지트에 늦게 온 거야?’, 라이언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라이언은 아랑곳하지 않고 부비부비 애교를 부린다.


이렇게 올 겨울 또 잘 견디어내면, 다시 싹이 움트는 봄이 올 것이다. 생기 있게, 싱그럽게 또 웃으며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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