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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볕뉘 Jun 25. 2024

[하다]보다 [누리다]가 어울리는 덴마크 사람들

공원 산책을 하다 여유에 대해 생각했다



낯선 모양의 거대한 나무들이 가득한 공원에 서 있으니 비로소 이곳이 한국과 아주 멀리 떨어진 장소라는 게 실감이 났다. 나뭇가지가 굵고 각진 게 마법사가 주인공인 동화책에서나 나올 법해서 재미났다. 표지판에는 킹스가든이라 적혀있다.  저 멀리로는 궁전 하나가 보인다. 궁전에 딸려있는 왕의 정원인가봐. 카페로 향하는 최단 거리를 알려주는 구글맵을 따라 걷다가, 내 앞을 가로질러 지나가는 어느 다리 짧은 강아지의 씰룩대는 꽁무니를 쫓아 이 공원으로 따라 들어왔다. 강아지를 천천히 산책시키며 걷는 커플을 뒤따라서 나도 나만의 산책 겸 탐색을 시작했다.


이른 겨울 아침이라 그런지 공원은 한산했다. 카메라를 든 여행객과 동네 주민들이 적당히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풍경. 전날 밤에 살짝 눈이 왔는지 자박자박 소리가 나는 하얀 길을 걸어 나갔다. 생각해 보니 공원으로 여행을 시작해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네.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일상에 이방인인 나도 자연스럽게 배어드는 기분이 들어 어색함이 덜어지는 것 같다. 나와 이 도시 사이의 '친해지길 바라' 코너랄까. 모두에게 활짝 열려 있는 공원이 가진 힘인가 싶었다. 한결 편안해진 마음으로 또다시 나무의 이끼나 행인들의 차림새 같은 것들을 구경. 그러다 어느 할머니를 발견하고는 눈을 떼지 못했다.


비녀도 잘 어울릴 것 같은 묶은 머리에 진갈색 롱코트를 단정히 차려입은 할머니는 길 가운데에 서서 큰 나무를 쳐다보고 계셨다. 이윽고 누구보다 찬찬한 발걸음으로 걷다가 멈춰서기를 반복하셨다. 골똘한 응시 속에 무슨 생각이 담겨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뒷짐 진 그의 꼿꼿한 자세에는 여유로움이 배어 있었다. 이렇게 말하려니 도인 같기도 한데, 남다른 강인함 같은 것도 나는 분명 느껴졌다. 차분하고도 단단한 인상을 풍기며 시선을 이끄는 할머니를 멋진 풍경을 보듯 바라보고 있을 때, 별안간 '누린다'라는 단어가 내 안에서 맴돌았다. 맞네. 할머니는 지금 이 순간을 누리고 계셨다. 



바로 이거였다. 이곳에서 느끼는 분위기와 인상을 표현하기에 적확한 말을 건져낸 기분. 코펜하겐의 사람들은 '하다'보다 '누리다'라는 단어가 더 잘 어울리는 듯했다. 발 디딘 지 두 시간 만에 내려본 코펜하겐에 대한 나의 한 줄 평은 여러 장소를 다녀본 이후로도 유효했다. 시장에서도 미술관에서도. 어떤 행위를 그냥 한다는 개념을 넘어서, 그걸 수행함으로써 내게 오는 자극들을 온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듯한 태도를 목격할 수 있었다. 현재를 충분히 누리는 마음의 여백 같은 게 기본적으로 더 넉넉한 사람들 같았다. 


이들도 누구나 그렇듯 내면에는 다양한 불안과 고민을 끌어안고 사는 사람들이기에 성급한 판단일 수도 있다는 걸 안다. 그러나 적어도 내 시선에선 기본적으로 한 개인이 가진 긴장감의 밀도가, 그렇게 만드는 주변의 환경의 텐션이 내 고향 사회와는 절대적으로 다르게 느껴졌다. 어떤 사람을 만나면 단번에 와닿는 인상이 있듯이, 코펜하겐은 내게 그랬다. 도시에 묻어있는 여유로움이 분명했다. 그리고 이 지점에 유난히 주목하고 있는 스스로를 보면서 내가 여행으로 찾고 싶었던 것이 바로 여유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느리면 패배자가 된 것 같다. 결과가 나온 게 아닌데도 뭔가 그런 것만 같다. 느리면 패배할 것만 같은 뉘앙스가 늘 잔존해 있어서 모른 척하려 해도 그 존재가 신경 쓰인다. 달팽이에게 조급해하지 말고 너의 길을 가라고 말하는 달팽이 주인의 짤을 아시는지 모르겠다. 나는 그 짤을 보며 나라는 달팽이를 응원한다. 이렇게 말하고 있어도 겉보기에 행동이나 사고가 유별나게 뒤처지는 건 아니다. 오히려 평범하게, 그리고 침착하게 늘 할 건 다 잘 해낸다. 그러나 그 침착함을 유지하는 데에 늘 꽤 많은 주의와 노력을 들어가고, 스스로를 가다듬으며 정리하고 준비하는 시간이 남들보다 넉넉히 필요하다. 준비에서 완료까지의 기간이 긴 편이라 대개 느린 쪽에 속하게 되더라.


여유 있는 시간과 넉넉한 마음을 놓지 못하는 건 그걸 챙겼을 때와 아닐 때의 차이가 극명하기 때문이다. 수행력도 그렇고 정신적인 만족도도 그렇고. 무엇을 해도 과정과 결과의 질 자체가 다르다는 걸 나는 예민히 느낀다. 나는 오히려 여유를 기반으로 더 꼼꼼하고 빠릿빠릿해진다. 여유로 에너지를 축적해서 멀리뛰기를 하는 거다. 그러나 여유가 사치로 여겨지는 순간들이 많다. 최소한의 환경에서 최대로 해내야하는 압박감. 늘 그런 조건 속에 놓일 수밖에 없는 게 결국엔 현실이라는 걸 안다. 압박감 속에서도 빠릿빠릿할 수 있는 훈련을 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현실을 바꿀 수 없다면 여기에 단련이 되어야 한다는 걸 알지만, 종종 나의 속도와 세상의 속도가 맞지 않는다는 감각이 괴로울 때도 있다. 과하게 누적되면 더 이상 물장구를 칠 수 없을 것 같은 순간도 찾아올 수밖에 없다. 여유가 과연 배부르고 게으른 소릴까. 여유는 사치일까.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지레 겁먹어 눈치를 보게 되는 걸까. 어쨌거나 나는 여유롭고 단정한 사람이고 싶은데. 아무리 압박된 환경 속에서도 내가 쪼그라들지 않도록 외압을 밀어내서 나의 형태를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힘이 바로 여유인 것 같은데. 그런 넉넉한 마음의 태도를 언제든지 내 안에서 찾아낼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겠다는 다짐을 가면 갈수록 더 자주 하게 되더라.


실은 여유로워지면 관대해지기도 한다. 나에게도 주변에게도 포용력이 커진다.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어 보일 수 있는 사람일 때의 내가 나는 멋지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 측면에서도 내가 각박하고 옹졸한 인간이 되는 것도 싫었다. 타인은 무슨. 나를 챙길 여력도 없이 건포도처럼 굳어버린 자신을 또다시 옹색하게 여기려던 찰나 코펜하겐에 당도한 듯하다.



이번에는 내가 마음에 안 든다고 속으로 나한테 야유를 퍼붓기가 싫다. 이곳에서의 시간으로 내가 좀 더 커졌으면 좋겠다 싶다. 팔로 감싸 안을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아름드리 나무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여행자라는 신분과 도시의 분위기가 합쳐져 여기서는 마음껏 나의 속도로 지내도 된다는 편안함 같은 게 찾아온다. 그렇다면. 기왕이면 제대로 여유를 충전해 보기로 했다. 쪼그라든 내 안에 여유의 공기를 후후 불어 담자. 위축된 마음을 빵빵하게 채워보자.


제대로 누리다 보면 어느새 건포도가 탱글한 포도알이 되어 있을 것만 같아. 


그리고 나의 다짐처럼 내게 생기를 불어넣어 주는 사람들의 친절을 우연히 마주할 수 있었던 행운이었다.




추신. 공원 산책을 담아온 영상이 있습니다. 글을 적기 한참 전에 찍어온 영상들로 만들어 두었었는데요.

글을 읽으신 분들께도 전달해드리고 싶어서 첨부해봅니다! 글이 건빵이라면 영상이 별사탕이면 좋겠는 마음이랄까요.


https://www.youtube.com/watch?v=bkr7a8xarkA&t=13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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