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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볕뉘 Jul 02. 2024

어느 골동품 가게에서의 기분 좋은 만남

덴마크의 첫인상이 되어준 공간과 사람

열린 마음, open-minded라는 단어를 들으면 예전부터 나는 제주도의 돌담집을 떠올렸다. 정확히는 돌담집의 대문인 정낭을. 꽉 걸어잠군 거대한 대문이 아니라, 내부가 들여다보이는 나무 기둥들. 나는 그게 정감있게 느껴졌다. 분명한 경계로서의 역할을 하면서도 위압적이지 않게 느껴져서 열린 마음이 형상화된다면 이런 모양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코펜하겐의 어느 가게에 머무는 동안 자꾸만 이 이미지가 내 안에서 떠올랐다. 


코펜하겐 HAY로 걸어가는 길은 아무래도 메인 거리이다보니 다양한 가게와 식당이 자리하고 있었다. 아직 시간이 일러 미처 문을 열지 않은 곳들도 많았다. 하나둘씩 가게 문을 열고 영업 준비를 하는 사람들을 지나치며 신나게 목적지를 향해 걸었다. 


오래전부터 꼭 방문하리라 다짐했던 HAY다. 그곳만을 생각하며 씩씩하게 발걸음을 옮기던 나는 한 건널목에서 급정거했다. 창가의 유리 공예품과 잡화들이 조명을 받아 차분히 빛을 내고 있는 어느 쇼윈도 때문이었다. 좀 더 기웃대며 들여다보니 쇼윈도 안쪽으로 어느 아주머니가 카운터에서 물건을 구매하시는 모습이 보였다. 앤틱한 공간 속 손님과 점원의 모습에 예쁘다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장면이었다. 도대체 여긴 무슨 가게이지. 정체가 궁금해서 가게 외관을 살폈지만 간판은 없었다. 대신 창에 붙어있는, 아마도 가게 이름일 덴마크어 시트지 스티커는 뜻을 알 수 없었다. 구글맵에 쳐봐도 나오지가 않았다.

정보도 없고 뭐 하는 곳인지 파악이 되지 않으니 에이 그냥 가던 길이나 가자 싶었다. 어차피 구경한다 해도 살 것도 아닌데. 백수인 상황에서도 떠나온 이번 여행에서는 아무리 마음에 들어도 내 상황을 잊지 말고 웬만해선 눈으로만 담아두기로 다짐했었다. 이건 실은 변명 중 하나고 소심이가 작동하기도 한 거다. 다시 발걸음을 떼어 한 블록 정도 걸었다. 그렇지만 또다시 정지. 아니 내가 여길 언제 또 올 줄 알고? 궁금하면 망설이지 말자. 나중에 아쉬워 말고 이번엔 마음 가는 대로 하자는 내면의 아우성을 모른 척할 수가 없어 가던 길을 돌아 가게로 향했다.


낡고 짙은 고동색의 문을 조심스레 열고 들어갔다. 아늑함을 주는 노란 조명 아래에 다소곳하게 자리한 다양한 잡화들. 편집숍인가 브랜드숍인가 알기 어려웠다. 직원 두 분 중 하나와 눈이 마주쳤다. 혹시 구경해도 되나요? 멋진 머플러를 두르고 있던 친절한 미소의 그녀는 내게 마음껏 구경하라 해주었다. 직원분들은 그리곤 각자 할 일을 하시며 나를 내버려두셨다. 덕분에 부담감 없이 자유롭게 구석구석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이미 느끼셨을 수도 있는데, 나는 내향형 인간이다. 특이한 성질은 수줍음이 많고 조용한 동시에 타인과 주변에 대한 관심이 많다는 것. 궁금함을 해소하려면 결국 타인에게 말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 많은데, 이러려면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늘 노력이 필요하다. 어릴 때는 그냥 포기했다. 그러나 그렇게 놓치게 되는 것들이 많다는 걸 깨달으면서 나를 위해 더 서스럼없이 말 거는 연습을 의식적으로 해오고 있다. 그렇지만 늘 내적인 충돌을 이겨내서 먼저 입을 떼기까지가 쉽지 않더라.

가게는 흥미롭고 아름다운 물건들 투성이었다. 가격표도 이름표도 없이 자리하고 있어서 각각의 것들을 더욱 유심히 살피게 되었는데, 보기만 해서는 출처나 의미를 알기 어려운 그림이나 소품들도 있어서 슬슬 마음이 근질거리기 시작했다. 사물의 내력들이 궁금했다. 특히 안쪽의 벽면에는 목걸이가 하나 걸려 있었는데, 낡은 동전과 알록달록한 쨍한 비즈의 조합에 자꾸만 눈길이 갔다. 마음에 들어서 한참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어느새 다가온 스카프 언니가 내 마음의 소리를 들으셨는지 나지막이 웃으며 아쉽게도 이건 파는 게 아니에요-라고 말씀하셨다. 고대 터키 동전으로 만들어진 골동품이라고 했다.


그의 조심스러운 안내에 수줍음이 조금 걷어진 나는 이때다 싶어 목걸이 옆에 있던 A4용지만 한 작은 그림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졌다. 이건 어떤 그림인가요? 덴마크의 떠오르는 젊은 작가의 작품이에요. 주로 거대한 작업을 하는 편인데 이건 그의 작은 작품에 속해요. 색감이 너무 고와요. 참 마음에 드네요. 아쉽게도 이것도 소장품이랍니다.그리고 역시나 이것도 소장품이랍니다. 내가 묻는 것마다 아끼는 소장품인 아이러니. 결국 이곳은 어떤 가게인지 물을 수밖에 없었다. 돌아온 답변은 내 안에 작고 분명한 파동을 일으켰다.

우리가 좋아하는 것 모든 것을 모은 곳이에요. 



좋아하는 모든 것들 중에는 하나뿐인 골동품도 있고, 기성 생활용품도 있고, 예술 작품도 있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귀중히 여기는 것에 대해 소개하는 마음이었다. 판매 여부, 구매 가능성과 관계없이 방문한 이들에게 친절하게 사물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모습. 작품을 만든 이에 대해 알려주고 사물의 서사를 짚어주는 대화. 장사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그 이전에 정말 이 공간에 있는 것들을 소중히 여기는 중이라는 게 느껴졌다. 보기만 해도 즐거운 에너지가 전해지는 태도였고, 나는 그녀의 부담스럽지 않은 에스코트 속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warm-welcoming. 이 단어가 참 잘 어울리는 사람과 공간이었다. 이분들은 모르겠지만 이분들이 내가 덴마크에서 교류한 첫 사람들이었고, 이들이 결국 덴마크의 첫인상이 되었다. 더도 덜도 않고 적당히 무심하고 적당히 친절하다는 인상. 부담스럽지 않은 친절함이 나는 편안했다. 거리를 둘 줄 알지만 환히 맞이 해주는 열린 마음은 갖고 있다. 그런 차분한 환대가 여전히 내 안에 남아있다. 고마운 마음으로 인사를 나누고 가게를 나서는데 기분이 즐거웠다. 여행을 잘 왔다는 생각이 들어 뿌듯했다.


나를 제대로 발견하고 이해해 주기 위해서는 때론 여행이 큰 도움이 된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멀리까지 와서도 결국엔 사람이구나. 나는 사람과의 연결을 참으로도 좋아하고 더 많은 만남을 갈구하는구나. 사람과의 대화. 그 안에서 찾아오는 새로운 이야기들이 늘 반갑다. 그래서 열린 마음이라는 단어를 자주 생각하며 살아왔음을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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