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샤가 전해주는 삶의 작동 매뉴얼 38화
질문자: 저는 제 삶에서 가장 신나는(흥미, 열정) 일이 무엇인지 찾기가 조금 어렵습니다.
바샤: 우선,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그것을 찾기가 어렵다고 창조하고 있습니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입니다. 당신은 가장 신나는 일이 어떤 큰 프로젝트나 특정한 직업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말하는 ‘최고의 신남을 따르는 것’이란 아주 단순한 것에서 시작됩니다.
매 순간 당신에게 주어진 선택지들 중에서, 가장 신나는 것을 선택하면 됩니다. 예를 들어, 지금 이 순간 당신은 저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이는 당신이 이 대화를 흥미롭게 느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대화가 끝난 후에는 또 다른 선택들이 있을 것입니다. 책을 읽을 수도 있고, 친구와 점심을 먹을 수도 있고, 해변을 산책할 수도 있고, 다른 도시에 갈 수도 있죠. 그중에서 당신에게 가장 신나는 것을 선택해서,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해보세요. 그 결과에 대한 기대 없이요.
그리고 그것을 더 이상 할 수 없을 때, 다음으로 가장 신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서 또 행동하세요. 그 일이 이전에 했던 것과 전혀 관련 없어 보이더라도 상관없습니다. 왜냐하면, 신남(excitement)이라는 감정이 바로 그것이 당신에게 연결되어 있다는 신호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계속 신나는 것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에는 더욱 지속적인 신남을 느낄 수 있는 상황으로 인도될 것입니다.
그러니 큰 프로젝트나 직업을 먼저 정하려 하지 말고, 지금 당장 실행할 수 있는 작은 것부터 시작하세요. 그렇게 한 걸음씩 나아가면 됩니다. 당신이 ‘신남’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 신체가 그 감각을 번역한 것입니다. 그것은 당신의 진정한 본질적인 자기(Self)의 진동수(frequency)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매 순간, 당신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가장 신나는 일을 실천하면, 그리고 그 결과가 어떻게 되어야 한다는 기대를 완전히 내려놓으면, 당신은 가장 최적의 길을 걷게 됩니다. 그 길이 어떻게 보이든 상관없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도록 배웠습니다. "나는 A 지점에 있고, Z 지점으로 가고 싶다. 가장 빠른 길은 곧장 가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자신의 신남을 따른다면, 그 길은 복잡하고 우회하는 길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신남을 따르는 길이 당신의 진정한 진동수를 반영하는 길이기 때문에, 그 길에서는 저항 없이 에너지를 빠르게 흐르게 할 수 있습니다. 즉, 신남을 따르는 길은 결국 당신을 더 빠르게 목적지에 도달하게 합니다.
반면, 신남을 따르지 않는 길은 저항이 많고, 마치 밀어붙이듯 힘들게 느껴질 것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더 오래 걸릴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물리학입니다. 당신의 본질적인 진동수와 조화를 이루는 것이 핵심입니다. 우리를 가장 신나게 만드는 것들은 우리가 본래 갖고 있는 고유한 주파수를 반영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가장 신나는 일을 실천하는 것은, 마치 나침반이 당신의 진정한 북쪽(True North)를 가리키는 것과 같습니다. 계속해서 신남을 따르기만 하면, 그 신남이 당신 삶의 동력이 되고, 모든 상황이 조화를 이루게 될 것입니다. 당신이 더 많은 기회를 만나고, 더 큰 신남을 경험하게 되며, 이 과정은 계속해서 확장될 것입니다.
어떤 순간이든, 당신이 실천할 수 있는 여러 선택지가 있을 것입니다. 그중에서 가장 신나는 것을 선택하세요. 그리고 당신이 가장 잘 실행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하세요. 그것을 최선을 다해 실천하세요. 더 이상 실천할 수 없는 순간이 오면, 그다음 가장 신나는 일을 찾아서 실천하세요. 그리고 절대 결과를 기대하지 마세요. 그렇게 하면, 당신의 삶은 기쁨과 동기화(synchronicity)의 폭발적인 흐름이 될 것입니다.
질문: 지난번에 우리가 대화했을 때, 당신은 저에게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해보라고 조언하셨죠. 내가 진정한 나 자신이 되고,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면, 나는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제가 내린 답은 '나는 나 자신을 이루는 모든 조각들이 산산이 부서져 사라질까 봐 두렵다. 나는 나 자신을 너무나 강하게 내 정체성과 동일시하고 있다.' 였습니다.
바샤: 좋아요. 하지만 ‘진정한 자신이 되는 것’이라는 개념을 전체적으로 이해한다면, 왜 자신에게 진정으로 중요한 것을 잃게 된다고 생각하나요? 사라지는 것은 더 이상 당신에게 필요하지 않은 것들일 뿐입니다. 당신은 익숙함을 잃을까 봐 두려워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역설적으로, 당신이 진정한 자신이 될 때 오히려 자신이 누구인지 더 명확하게 알게 될 것이라는 사실과 모순됩니다.
질문자: 이 여정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나"와 실제 "나" 사이의 차이를 강하게 느끼고 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줄 수 있을까요?
바샤: 계속해서 자신이 실제 누구인지 탐구하는 과정을 유지하세요. 스스로에게 충분한 시간과 공간을 허락하세요. 서두를 필요 없습니다. 어차피 당신의 삶 자체가 이 과정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원하는 만큼 탐구하세요. 그리고 우리가 자주 제안하는 것처럼, '공식(the formula)'을 따르세요. 그 공식 안에는 당신이 바라봐야 할 것, 처리해야 할 것, 놓아야 할 모든 것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공식은 당신이 점점 더 자신이 되어가는 과정을 점진적으로 혹은 빠르게 도울 것입니다. 그러니 서두르지 마세요. 당신은 시간과 경쟁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은 영원하고 불멸하며, 결코 파괴될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니, 그렇게 급할 것이 무엇인가요?
질문자: 맞아요. 그렇다면 두 번째 질문인데요, 저는 판단하지 않는 연습을 하고 싶습니다. 사람뿐만 아니라 상황에 대해서도요. 저는 "모든 것은 나에게 이득이 된다"는 원칙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사람, 장소, 사물 등을 '좋다' 혹은 '나쁘다'라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판단을 내려놓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조언이 있을까요?
바샤: 좋아요. 하지만 사실 당신은 이미 스스로에게 답을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모순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죠. 그 모순 자체가 하나의 신념입니다. 당신은 방금, "모든 것은 나에게 이득이 된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판단"할 필요가 있나요? "판단"이라는 선택지가 존재할 이유가 없겠죠. 그런데도 당신이 여전히 판단을 하고 있다는 것은, 당신이 그 개념을 완전히 이해하거나 믿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질문자: 맞아요, 제가 아직 완전히 믿고 있지는 않은 것 같아요. 그렇다면, 그 개념을 더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조언이 있을까요?
바샤: 네, 더 이상 외부의 조언을 구하지 마세요. 그리고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하세요. "나는 이미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이 이해하고 있다." 그저 그것을 실천하세요." _ 바샤와의 대화
안다는 것은 여러번 듣고 여러번 읽었다고 생기는 것이 아닙가 봅니다. 몸으로 눈밭을 뒹굴어봐야 그 차가움이 온 몸으로 느껴지는 것처럼 직접 실천하고 살아봐야 제대로 '안다고' 얘기할 수 있겠죠.
아침에 눈을 뜨면 어떤 생각을 하시나요? 하루의 무게가 먼저 다가올 것입니다. 가벼운 날이 있고 무거운 날이 있겠죠. 출근을 하고 하기 싫은 일을 하고, 만나기 싫은 사람을 만나야 하는 사람은 어떤 선택을 해야 바샤가 말한 신남 (흥분, 열정)을 따라가는 하루를 보냈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요?
'일어나는 모든 일은 나에게 이득이 된다', 이런 믿음을 가져야 일어나는 상황에 내가 관여할 여지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도 제일 신나는 일을 찾아 일요일 오후와 밤 늦게까지 넥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를 보고 웃고 울었습니다. 이 드라마의 영어 제목은 '삶이 당신에게 귤을 줄 때When Life Gives You Tangerines'입니다. 원래 '삶이 당신에게 레몬을 주면, 레모네이드를 만들어라'라는 영어 속담에서 비롯된 제목이라고 합니다. 제주도를 배경으로 해서 레몬 대신 귤로 바뀌었죠. 삶에서 주어지는 신 레몬 같은 모든 어려움을 활용해서 레모네이드 같은 달콤하고 시원한 삶의 정수를 뽑아내라, 역경 속에서 삶을 네 편으로 만들어라는 말입니다.
이 드라마의 제목처럼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역경을 우리의 귀엽고 애달픈 귤 커플은 잘 이겨나갑니다. 살면 살아진다는 말대로 서로의 따뜻한 품이 있기에, 내가 아니라 너가 있기에 어려움을 견뎌내고 삶을 향해 나아갑니다. 우리 부모님의, 그리고 우리 세대의 이야기였기에 울면서 웃고, 웃으면서 울음을 참고 드라마를 보았습니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자신만을 위한 선택을 하지 않습니다. 신남을 따라가는 삶이란 내가 혼자 즐겁고 내가 혼자 신나고 내가 혼자 나를 위해 열정에 불타는 선택이 아닙니다. 옆에 있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싶고, 웃게 해주고 싶고, 힘들지 않게 해주고 싶고, 함께 있도록 해주는 선택이 가장 즐겁고 기쁘고 신나는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자식의 꿈을 위해 엄마의 따스한 품 같던 집도 팔 수 있었던 애순이와 관식이처럼요. 어려움을 견디면 햇살 같은 날이 쏟아집니다. 레몬 같은 삶이 네모네이드가 되는 순간이 오니까요.
오늘 하루도 피곤한 몸을 깨워 일어나 직장으로 가는 것은 나만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가족들이 웃는 햇살같은 순간을 위해 우리는 자발적으로 일어나 하루의 고난을 껴안습니다. 억지로가 아닌 스스로의 선택입니다. 관식이가 손이 찢기고, 발목을 차이고, 모욕을 당하면서도 가족을 위해 하루를 견뎌내었듯 때로 우리는 하루의 생채기와 상처를 묵묵히 견뎌내는 선택을 합니다.
한편으론 스스로를 아끼는 선택을 해야 내 옆의 사람들이 행복해지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모욕과 폭력을 묵묵히 견뎌내는 삶을 사는 것을 묵인할 사람이 어디있을까요? 남편을 위해 먼저 앞에 나서서 뱃일을 그만두게 만드는 애순이처럼 사랑하는 사람의 존엄을 위해 우리는 고난을 같이 겪어낼 선택을 자발적으로 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랑의 선택이 때로는 다음 삶이 열리는 돌파구를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애순이와 관식에게 자신들의 배가 생기는 것처럼요.
진정한 자신이 된다는 것은 자신의 행동과 자신의 선택에서 스스로가 부여하는 가치를 찾아낸다는 말일 것입니다. 사랑이 있으면 스스로를 위한 행동 보다 사랑하는 이를 위한 행동을 통해 스스로를 밝히는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 사랑하는 이와 나를 위한 선택을 합니다. 나를 밝히는 선택을 하면 그 가벼워진 무게만큼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공간과 사랑이 커지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