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감상문
방학인데도 불구하고 어제는 알람을 맞춰놓고 잤다. 아침 여섯시 반. 그 프랜차이즈 카페의 프리퀀시 증정품 예약 오픈이 오전 일곱시인바람에… 카페에서 커피만 마시는 나지만, 증정품을 위해 몇 일전부터 프라푸치노와 블렌디드를 먹는 수고도 아끼지 않았다. 접속 폭주로 기다리는 동안엔 하지도 않던 모닝 운동도 하면서. 스쿼트 100개 하고 웨이팅 시간보고, 레그레이즈 100개 하고 시간 보고…. 그런 우여곡절 끝에 증정품 획득 성공.
누군가는 왜 그렇게 스벅 프리퀀시 증정품에 목매다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엥? 진짜 모르는 가?? 재미있잖아! 사람들은 스토리텔링을 좋아한다. 증정품 하나를 갖기위해 17잔의 음료를 마시고, (때로는 지인에게 프리퀀시 스티커를 받기도하면서) 인스타에 인증하고, 기사화되고…. 증정품 하나가 파생시키는 이야기가 이렇다. 그리고 무엇보다 철저히 비생산적이다. (리셀은 제외)
난 기계에나 쓰일법한 단어를 사람한테 쓰는 게 영 내키지 않는다. 예를 들면 ‘생산성’. 물론 내가 생산적인 사람이 아니기도하고. 단위 시간 투자한 노동력 대비 생산물이라는 개념을 개인에 적용하는게 마음에 걸린다. 그런 맥락에서 ‘스펙’도. 언제부터인가 기계한테나 쓰는 단어를 사람한테 쓰는게 왕왕 보인다. 그 반대의 경우는 드문편. 아이패드를 보고서 ‘활용도가 높다’라 말하지 ‘다재다능’하다고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 않나. 기업이 직원의 역량을 평가하거나 채용시에 뭐 이렇다할 어휘가 없어서 저 단어를 차용하나 싶기도 하지만, 그런데 우리 모두가 인사 담당자인 건 아니다. 설령 이 글을 읽고 있는 친애하는 당신이 인사 담당이라 할지라도 나는 같은 회사 직원은 아니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의 생산성이라는 것도 타인을 이해하는 바로미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여러 바로미터 중 하나로. 그리고 그 생산성 이라는 영역을 벗어나면, 정말 수 많은 비생산적인 것들이 펼쳐져 있다. 예를 들어 얼마나 가식이 없는지, 실패했을 때 그 다음 도전에서 어떤 자세로 임하는지, 취미로 뭘 하는지…. 우린 그런 사람들을 순서대로 ‘솔직하다’, ‘도전정신이 뛰어나다’ 그리고 ‘재미있다’와 같이 표현한다. 우린 이렇게 좀 다른 단어로 표현될 필요가 있다. 물론 이게 세상이 나를 바라봐줬으면 하는 방식이기도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