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감상문
다음 보기 중 여름에 제일 열받는 것을 모두 고르시오
1. 막 샤워하고 나와서 옷 갈아입는데 땀이 남
2. 오후 세시 길거리, 더워 죽겠는데 어디서 뜨거운 김이 나서 돌아보니 에어컨 실외기
3. 시원한 곳에 있다가 실외에 주차된 차를 타야하는 상황
4. 자려고 하는데 모기 소리만 나고 나는 못 잡고 물리고 밤샘
감히 자웅을 가리기 힘든 보기들이 아닐까싶다. 그래도 이 무더운 날씨에 올림픽이라는 즐길 거리라도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요사이다.
인생을 오롯이 한 분야에 바쳐온 이들의 모습은 경이롭다. 삼십대가 되어 보니 그게 얼마나 엄청난 일인가 새삼스레 깨닫는다. 일전에 친구가 나이 먹어서 좋냐며 내게 급발진한적이 있는데, 답은 그렇다이다. 내 경우엔 안 보이던게 좀 보이고, 감동할 수 있는 것들이 늘었다. 뭐 나이를 썩 많이 먹은 것도 아니지만. 무튼 난 카페에 있다가 나갈 생각만 해도 화가 치밀어 오르던데, 가까운 곳에선 국기가 새겨진 옷을 입은 선수들이 피 땀 눈물을 흘리며 경기에 임한다. 그래서 이상하게 들릴진 몰라도, 스포츠 게임을 보면 전율이 이는 동시에 이상한 애잔함도인다.
클래식도 그렇다. 나는 클래식이 주는 직관적인 전율이 좋다. 엄밀히 말하면, 클래식 음악에서 느껴지는 충만함. 이걸 무아지경이고 표현하면 좀 오바스러울까. 그 무아지경에 이르는 레시피는 다음과 같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아주 크게 튼다.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도 좋다. 한 참 듣다보면 음파가 고막을 진동하다 못 해 나까지 진동시킨다. 끝으로 연주를 뒤따르는 박수 소리까지 들으면서, 여운과 함께 찾아오는 먹먹함이 스포츠 게임과 별반 다르지 않을까싶다.
Seong-jin Cho - 2018.05.25 RACHMANINOV: Piano Concerto No. 2 (Frankfurt, Germany)
Seong-Jin Cho - Tchaikovsky Piano Concerto No. 1 in B-flat minor, Op. 23 (2011)
올림픽도 클래식만큼이나 고전이다. 최초의 올림픽은 기원 전이고, 지금같이 4년에 한 번 국제 대회의 성격을 갖게된 건 1896년, 지금과 같은 하계 올림픽. 클래식 하면 바흐나 베토벤 생각에 영겁의 시간 속 음악일 것 같지만, 막상 쇼스타코비치만 해도 20세기 사람이다. 이렇게 보니 사람들이 참 다양한 고전을 즐기고 있구나싶다.
비발디 사계 중 여름의 presto는 올 여름을 잘 표현한다. 그 어느때보다 다이나믹한 썸머가 지금 이순간이다. 식물들은 이 시기를 놓칠세라 매섭게 자라고 있고, 운동장에서는 선수들이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뽐내고 있다.
Sarah Chang: Summer mvt.3 from Vivaldi's Four seasons
성장을 위한 계절은 따로 없겠지만, 그 성장이 잘 보이는 시기는 있지 않을까. 그게 우리가 코로나로 모든 움직임을 멈춘 이 순간, 다른 한편에선 그 어떤 역동성도 비길 수 없는 움직임을 하고 있는 바로 올 여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