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를 보고서
나는 샤워하고 머리 말리는 시간을 적극 활용하는 타입이다. 주로 밀린 설거지나 빨래를 돌리고 분리수거를 하는데, 이러면 시간을 번거 같아 나 자신이 대견하고 그렇다. 아니면 맥주나 편의점표 와인 같은 걸 마시며 영화를 본다. 어제는 오래전부터 보고 싶었던 영화를 봤다. 왜 그걸 이제 봤냐면… 실은 내가 뭘 보고 싶어 하는지 몰랐다. 그래서 방황하는 동안 봤던 영화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2018)>, <무드 인디고 Mood Indigo, (2013)> 그리고 <콘택트 Contact, (1997)>. <콘택트>를 보고 나서야 보고 싶은 영화가 떠올랐다.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Lost in Translation , (2003)>
우리는 비슷한 고민을 하며 사는 것 같은데 주변엔 꽤나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관심사도 다르고 나이도 달라서 (때로는 언어도 지역도 다르다) 말이 통할까 싶다. 내가 “사과(apple)”라 말하면 “사과(apology)”라 들릴 때도 적지 않았다. 아니면 “요즘 어떻게 지내?”라는 질문에 “잘 지내”라는 답을 하면 사실은 전혀 잘 지내지 않지만 대답만 예의상 그렇게 할 뿐이고 상대방은 내 말에서 풍겨오는 뉘앙스 같은 걸 캐치해서 거기에 잘 어울리는 후속 질문을 해주거나 아님 뭐 아무튼 따뜻한 위로의 뭔가를 건네는 그런 걸 기대하기도 한다. 고작 잘 지내냐고 묻는 사람한테 과도한 걸 기대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나는 상대방이 그런 신기를 갖길 바라본다. 야속하게도 내 주변 사람들은 그런 무당은 못 되는 것 같다.
영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에선 남편 출장차 따라온 샬롯(스칼렛 요한슨)과 일 때문에 온 밥(빌 머레이)이 우연히 도쿄의 같은 호텔에 묵는다. 나이도 성별도 다른데 말이 통하지 않는 나라에 있어서 그런지 둘은 전우애(?) 같은 게 생긴다. 말이 통하지 않는 나라의 고립감이라…. 전에 파리 갔었을 때 어딘지는 기억 안 나는데 온통 외국인들뿐이었다. 거기서 엄청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어떤 중국인으로 보이는 여자가 말을 걸었다. 한국인도 아니고 그저 아시아인일 뿐인데 심지어 영어로 말을 걸었는데 그렇게 반가웠던 적이, 아니 솔직히 살 것 같다고 느낀 적이 처음이었다. 그 둘도 그런 느낌이 들었던 걸까.
샬롯은 대학을 막 졸업하고 진로를 고민하고 있고, 밥은 결혼 25년 차 중년의 위기를 겪고 있다. 둘이서 엄청 고민 상담하고 그러진 않아도 그냥 이런저런 이야기만 해도 위로가 된다. 그리고 그걸 보고 있는 나도. 사람은 늘 고민하고 사는 건가 보다. 나도 샬롯처럼 진로 고민으로 속앓이를 했던 적이 있다. 그게 이십 대 중반. 한 4년 넘게 진로와 그 준비로 시간을 보냈네. 그리고 그 전엔? 대학 입시로 고민했고, 그리고 그 전엔…. 그전엔 …. 고민은 끝이 없었다. 샬롯이나 밥이나 나나 따지고 보면 그 나이대에 할법한 그런 고민들을 했다. 그래서 영화 마지막에 밥이 샬롯에 귀에 속삭일 때 무슨 말을 했을지 궁금하면서도, 실은 무슨 말이든 상관없기도 했다.
내 고민은 남이 이해 못하니 내 우울과 고독감은 어쩔 수 없어라는 식은 지나치게 염세적인 건 아닐는지. 고민은 혼자 해도 혼자 사는 건 아닌 세상이다. 앞서 내가 말한 ‘사과나무 열매’를 ‘미안함’이라 이해해도 나는 상대방이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구나에서 실망하는 게 아닌, 나를 이해하려 노력했구나라 생각한다. 그리고 상대방도 내가 사과나무 열매든 뭐 다른 열매로 알아 들어도 내가 진심으로 당신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적당히 서로 말귀 못 알아먹고 있다는 게 암묵적인 룰인 걸로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아니 오히려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