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레이니 데인 인 뉴욕>을 보고서
작년 가을에도 이렇게 비가 많이 내렸었나? 비가 내리다 말기도 일주일째, 기상청을 보며 세탁 타이밍만 재다가 샤워 후 깨끗한 수건이 두장뿐인 걸 확인하고서야 세탁기를 돌렸다. 세탁 모드를 표준으로 맞추고 세제를 넣고동작 버튼을 누르면 세탁 완료까지 걸리는 시간 한 시간 사십분, 영화 한 편보기 딱 좋은 시간이다.
올해 여름엔 뉴욕, 그러니까 맨하튼에 여행 가려고 했다. 중학생 때 부모님 몰래 드리마 <섹스 앤 더 시티 (Sex And The City), 1998> 를 보면서 맨하튼에 대한 동경을 키웠으니까. 지금봐도 세련된 패션, 커리어, 남자관계… 그 땐 나도 서른 언저리쯤이면 캐리처럼 지미추를 신고 빌딩숲 속의 어느 스타벅스에서 맥북으로 작업하는 그런 멋쟁이가 될 줄 알았다. 현실은 여행 가는 건 고사하고 이렇게 맨하튼이 배경인 영화를 본 게 다이지만.
영화 <레이니 데이 인 뉴욕 (A Rainy Day in New York), 2018>은 구석구석 즐길 게 많은 영화다. 패션, 음악 그리고 뉴욕까지. 내가 캐리, 샤일롯, 미란다, 사만다의 패션에 빠져서 <섹스 앤 더 시티>를 본 것처럼 이 영화도 네명의 인물의 의상에서 시선을 땔 수 없었다.
애슐리 : 고야드 팩팩
영화는 해질녁 야들리 대학 캠퍼스에서 캐츠비와 애슐리의 등장으로 시작한다. 애슐리는 분홍색 스웨터에 체크무늬 플리츠 스커트를 입고, 개츠비 역시 체크무늬 남방 위에 고동색 스웨터를 받쳐 입어 전형적인 아이비리그 스타일을 연출한다. 이 둘의 옷은 캠퍼스에 내린 오렌지색 석양과 잘 어울려 포근한 느낌을 준다. 재미있는 점은 애슐리의 백백인데, 고야드다. 이런 디테일이 애슐리의 수저 색깔( 애슐리네 아빠는 애리조나에 은행이 여러개 있다.)을 더 빛내준다랄까.
개츠비 : 해링본 자켓
둘은 애슐리의 롤란 폴란드 감독의 인터뷰차 맨허튼으로 여행간다. (사실 롤란 폴라드라는 이름이도 엄청 흥미로운데, 흡사 로만 폴란스키가 떠오른다. 롤란 폴라드는 영화 속에서 천재 감독으로 나온다.) 맨하튼에서 애슐리는 캠퍼스에서 입었던 것과 비슷한 옷을 입는다. 하늘색 스웨터에 체크무늬 스커트. 특이한 건 감독이랑 인터뷰하는 자리인데 분홍색 망사 스타킹을 신고 있다. 눈여겨 본 건 애슐리의 스타킹이 아닌 개츠비의 옷. 셔츠 위로 헤링본 자켓을 입는다. 랄프로렌의 어느 FW 시즌 옷인가해서 검색해봤더니 2017년 프라다 FW였다. 영화 속에서 개츠비가 20대 초반인 걸 감안할 때, 영화 <과거로부터 (Out of the Past),1947>와 찰리 파커를 좋아하는 그런 옛스러운 취향과 퍽 어울린다. 더불어 개츠비는 팔자 걸음에 약간 구부정한 자세인데 이런 모든 게 개츠비의 약간의 허영과 이른바 재수없음(?)과 잘 어울린다.
챈 : 보머 자켓
애슐리의 당초 계획이었던 감독과의 인터뷰는 어쩌다보니 각본가 그리고 배우와 데이트로 이어지며 남자친구 개츠비와의 데이트는 뒷전이된다. 홀로 맨허튼을 배회하던 개츠비는 비를 피해 탄 택시에서 아까 영화 촬영장에서 만났던 전여친의 여동생 챈을 만난다. 챈은 여기서 청바지에 흰 티를 입고 빨간 보머 자켓을 입고 나온다. 개츠비와 애슐리의 스타일에 비해 캐주얼한 챈의 스타일은 활동적이고 외향적인 느낌을 넘어서 뭔가 다른 게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감까지 준다. 나는 챈의 옷을 보고서야 이 영화의 배경이 90년대 혹은 그 이전이 아닌 동시대라는 걸 실감했다.

테리 : 슬립 드레스
개츠비는 그의 어머니가 주최하는 파티에 가기 전 호텔 바에서 테리를 만난다. 테리의 직업은 ‘남자들의 꿈을 이뤄주는(?)’ 일. 그녀는 광택이 있는 크림색 슬립 드레스를 입고 관능미를 뽐낸다. 섹스 앤 더 시티의 사만다가 떠오르는 부분. 슬립 드레스든 사만다든 90년대를 연상시키는 건 매한가지. 그녀가 입은 옷의 광택과 원단의 가벼움이 개츠비가 입은 자켓의 질감과 무게와 대조되는 건 우연일까.
밀어서 잠금 해제
패션 외적인 부분을 보자면 여기서 개츠비는 어머니의 전화를 받는데, 아니 글쎄 전화를 받기전 밀어서 잠금해제를 하는 게 아닌가. 아이폰 3인가 싶어서 여러번 돌려봤는데 아이폰 4였다. 애슐리도 역시 동일한 폰을 쓴다. 흰 색인것만 빼면. (휴대폰이 모토로라 레이저였음 어땠을까도 상상해봤는데, 느닫없이 레이저가 나오면 모든 시선이 휴대폰으로 가 산만해질 것 같기도하다.) 덧붙여 테이블 위에 있는 카르텔 조명까지 아주 좋았다.
영화를 재미있게 봤긴하지만 마냥 칭찬만 할 수 없는게, 이 영화는 감독의 성추문 문제로 북미 개봉이 연기되었었다.
영화의 구조나 인물 설정에 있어서는 <미드나잇 인 파리 (Midnight In Paris, 2011>와 매우 비슷하다는 평이있는데 (미드나잇 인 파리의 주인공 길이 뉴욕에 등장한다면, 레이니데이 인 뉴욕의 개츠비가 되지않을까!) 내가 보기엔 <카페 소사이어티 (Cafe Society), 2016>와도 닮았다. 아무래도 작품에 감독 자신이 출연하거나 감독의 분신인 캐릭터가 등장하고, 작품의 테마가 과거에 대한 노스텔지어가 많다보니 피할 수 없는 문제인 거 같다.
그래도 가을비와 잘 어울리는 영화다. 음악도 좋다. 개츠비가 챈의 집에서 부르는 Everything Happens to me는 2분 남짓한 클립영상으로 유튜브에 올라가있다. 세탁기도 돌아갔겠다 에어컨을 켜고 빨래나 널어야지.
눈과 귀가 즐거워지는 Everyting Happens To Me - Timothee Chalamet [티모시샬라메/가사/자막/번역/팝송/해석/lyric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