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을 보고서
내가 다니는 암장은 집에서 약 90분 거리, 물론 안 막힐때 이야기다. 꽤 멀긴한데 버스에서 유튜브를 보고, 지하철로 갈아타 음악을 듣다보면 어느새 도착해있다. 이쯤되면 난 대중교통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게 좋아 그렇게 먼 곳까지 운동하러 다니는 게 아닐까. 무튼 지하철을 타면 어느 역부터는 지상으로 올라오는데, 그 시간이 딱 땅거미가 질때다. 타이밍만 잘 맞으면, 열차 창문 너머로 주황색 도심이 펼쳐진다.
오랜만에 영화를 봤다. <그 남자 작곡 그 여자 작사> 영화 제목에 남/여 순서가 저게 맞았던가. 가끔은 영화를 보고 싶다기 보단 그냥 틀어 놓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러니까 오늘 밤이 꼭 그런 날이었다. 그럴 땐 보통 지브리 스튜디오나 디즈니 영화를 트는데, 왓챠엔 어째 귀멸의 칼날이랑 짱구 밖에 없었다. 그러다 문득 이 영화가 떠올랐다. 줄거리나 영화 본 뒤에 기분이 생각난 건 아닌데, 문득 이 영화의 따뜻함이 기억났다. 오랜만에 다시 보니, 내가 기억한 온기는 알렉스가 놀이공원 무대행사를 뛰는 장면 그러니까 그 인물들이 있는 그 공간이었다. 노을이 지고 배경이 예쁜 오렌지빛으로 물드는, 평화롭고 소박한 즐거움이 느껴지는 시간.
우린 자기 삶에 비례하는 저마다의 족적이 있다. 지상에 있는 시간이 길 수록 그 족적도 다채롭다. 맵고 짜고 단. 그리고 이 끝나지 않는 우리 드라마의 한 에피소드는 이렇다. 현재를 살아가는 주인공이 과거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 하거나 (영화 속 소피), 때론 과거의 달콤한 영화에 취해 살아간다. (영화 속 알렉스) 행복했던 기억들은 시간이 지날 수록 희미한 맛으로 느껴지는데, 어째 구렸던 기억은 시간이 갈 수록 강한 맛이 날까. 이렇게 기억을 반추하다간 내 인생의 미각은 점점 구린쪽으로 발달하는 걸지도 모를일.
그래도 내가 미각을 잃지 않고, 나름 미식가(?)로 살아갈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온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물리적인 온도. 그 사람들이 구체적으로 힘을내라 말할 때도 있었다. 그런데 난 그 사람들이 그냥 내 주위 어딘가에 있었던 것, 그래서 나는 무슨 적외선 탐지기가 된 것 마냥 그렇게 그들이 곁에 있다는 걸 아는 것만으로 괜찮았다. 그 덕에 난 인생의 구린 부분을 어째저째 넘겼고, 구린 기억이 지금도 내 한 켠에서 악취를 풍기고 있어도 삶의 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어쩌면 우리 인생의 미각도 무슨 아이스크림 브랜드처럼 31가지가 있을지도. 왜 아메리카노도 산미가 있는 쌉싸름함이 있는가 하면, 너티하고 바디감이 좋은 커피도 있지 않나. 오늘은 출근하자마자 드립백 커피를 한 잔 마셨다. 실장님이 어머 향기 좋네요라시길래 괜시리 내 기분도 좋았다. 따뜻한 게 좋은 게 이런 거다, 향기가 나는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