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크루엘라>를 보고서
집 앞에 영화관이 있어서 좋은 점 하나 : 슬리퍼를 끌고 영화관에 갈 수 있다. 덤으로 누구도 만나지 않을 수 있음! 오랜만에 영화관에 갔다. 예전엔 직원이 표를 확인하고 입장을 안내했던 것 같은데, 오늘은 입장 전 키오스크에 QR코드를 스캔하니 미리 녹음된 전자음성이 내 상영관을 알려줬다. (그 많던 영화관 알바생들은 모두 어디로 간 걸까?)
내 삶의 추진력은 어디서부터 나오는 걸까. 중요한 건 부모님으로부터 우리가 인지하지도 못 할 만큼 영향을 받는다는 거다. 어떤 영화에서는 "아버지의 복수...!" 라 외치며 외나무다리에서 막 칼 뽑고 그러는 장면이 나오지 않나, 이건 아빠 영향받은 것. (아무리 그래도 아빠 복수한다고 내 인생과 목숨까지 거는 건 아빠도 원하지 않으실 거 같다. 적어도 우리 아빠 같은 스타일이라면) 또 누군가는 자소서에 존경하는 사람 항목에다 부모님을 쓰기도 한다. 영화 <크루엘라>는 101마리 달마시안에 나오는 빌런 크루엘라의 성장 스토리이다. 주인공의 삶의 목표는 엄마와의 관계로부터 기인한다.
우리의 인격 형성은 엄마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물론 당연한 이야기다. 기억하지도 못 할 자궁에 있는 시간을 포함해 집을 떠나기 전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어머니일 테니.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모친으로부터 무조건적인 영향력을 받아 그렇게 어른이 된다. 그래서 좋든 싫든 엄마의 어떤 점을 닮는다.
내 경우엔 집요함. 엄청 집요하고 끝을 봐야 하는 성격이다. 목표를 설정하면 되게 해야 했고, 안 되면 나 스스로 납득할 수 있어야 했다. 그래서 남자와의 관계도 내가 쓸 수 있는 카드 다 쓰고 차여야 납득이 됐다. 방금 든 예시는 적절하지 못한 거 같지만 뭐 이건 좋은 점에 속하는 편이다. 그래서 입시도 4년을 존버 해서 해냈다. (엄마 닮아서 머리는 좋지 않은 것 같다.) 이런 성격이 엄마를 닮았다. 울 엄마가 그렇게 하나를 파고든다. 엄마는 내게 집요함과 더불어 변덕을 물려줬다. 내 취미는 한 열 가지쯤 되는데 (클라이밍, 여행, 사진, 그림, 영화 및 독서 감상, 글쓰기 등) 이렇게 엄청 많아진 것도 변덕이 심해서다. 물론 엄마의 이런 변덕의 대상이 나일 때도 있어서, 엄마랑 크게 싸운 날엔 방문 잠그고 혼자 훌쩍였던 일도 적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아침에 엄마 피하려고 시험 기간도 아닌데 새벽 6시에 캠퍼스에 간 적도 있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 재능 조차도 엄마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란 걸. 그리고 양날의 검같은 성격이 내 재능을 성장시키는 게 아닐까. 이것저것 해봤기 때문에 글감이 풍부해졌고, 집요함으로 글 하나를 완성시킨다. (누가 볼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내가 변덕이 심해 이것저것 해본다 할 때 엄마는 잔소리는커녕, 다른 것도 더 해보라고 권했다. 예전에 학과 동기들과 서핑을 갔을 때도 엄마가 권해서 간 거였다.
엄마가 가끔 나보고 잘 커줘서 고맙다고 한다. 그럼 내가 그런다, "내가 누구 딸인데?!". 나는 엄마 닮아서 좀 별론데 또 잘났다. 그래서 크루엘라를 보면서 마스크 젖는 줄도 모르고 그렇게 울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