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카 마티니 흔들지 말고 저어서

영화 <노타임 투 다이>를 보고서

by DD


다니엘 크레이그가 연기한 제임스 본드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2006년 카지노 로열을 시작으로 2008년 퀀텀 오브 솔러스, 2012년 스카이폴, 2015년 스펙터 그리고 올해 노 타임 투 다이까지. 이번 시리즈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예정대로라면 작년 상반기에 개봉했어야 했는데, 코로나로 밀려 무려 올 하반기에 극장가로 돌아왔다. 그동안 나는 영화 오프닝 곡을( 빌리 아일리쉬의 노 타임 투 다이) 예습하고, 다니엘 크레이그 주연의 007을 복습했더랬다. 그리고 9월 29일, 개봉 당일 보러 갔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캐릭터


노타임투다이는 007의 이전 네 편의 작품들을 ‘몰아서’ 보지 않는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들지 않을까. 이번 작품은 지난 네 편의 시리즈를 아우른다. 그래서인지 이전 시리즈와 연관된 이름이 대거 등장하는데 , 어째 난 앞의 네 편을 추석 연휴에 몰아서 보고 갔는데도 영화 보는 중간에 ‘아 이게 그래서 그거였네.’하면서 별도의 추론 타임을 가졌더랬다. 그럼 나처럼 다니엘 크레이그 주연의 007 팬이라면? 그럼 좀 아쉬움이 남을 수 있다. 007 팬들을 위해 총평도 스포가 될지 몰라 이쯤에서 패스.


15년간 다섯 번의 제임스 본드 역을 맡은 다니엘 크레이그. 007 시리즈를 몰아보며 제임스 본드도 늙는구나 싶다가도, 똑같은 시간이 나한테도 흘렀구나 싶다. 중학생이었던 나는 어쩌다 다니엘 크레이그 주연의 007에 빠지게 된 걸까. 세계적인 관광지가 로케이션인 거? 카지노 로열에서는 베니스, 스펙터는 멕시코시티 그리고 노타임투다이에서는 마테라가 나온다. 요즘처럼 여행이 간절할 땐 영화만 봐도 ‘아 여기 진짜 좋았는데’라는 생각이 들면서 어느 정도 대리만족된다. 사실 나는 본스식으로 말하자면 여행지에선 관작에서 자는 게 나은 그런 숙소에서 자는 편이라 영화에 나오는 로열 스위트룸도 실제론 존재하지 않는, 영화 세트의 일부 같다.


그리고 제임스 본드가 멋쟁이라는 점이 내가 빠진 이유 아닐까. 구글에 본드 슈트, 본드 워치, 본드 카라고 치면 시리즈 별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놓은 걸 확인할 수 있다. (보스, 오메가, 애스턴 마틴) 그리고 성격은 또 어떤가. 자기는 윗사람 말 안 들으면서 상관한테는 자기 말 잘 듣게 하고, 이성한테는 매력 넘치지만 순애보도 있다. 또 뭐 있냐 그래, 슈트 빨 잘 받고 한 손으로 운전까지 잘한다. 뭐 한 손으로 운전만 잘하나 운전하면서 총도 잘 쏘고 심지어 맞지도 않는걸. 이쯤 돼서 제임스 본드 mbti가 궁금해서 검색해 봤더니 ISTP였다.


ISTP 특징, 위키트리


그러나 무엇보다 내가 본드를 좋아하는 이유는 ‘뭐 어쩔 건데? 내가 해냈잖아’하는 식의 마인드. 본드는 말하자면 일을 찾아서 하는 타입이다. 그리고 그 일에 ’ 목숨 걸고’하면서 자기 방식이 옳았음을 보인다. 우리는? 007처럼 살인 면허가 없는 우리는, 영화 러닝 타임보다 더 긴 우리의 인생에서 각자의 삶이 저마다 의미가 있음을 보이는 수밖에. 아니 사실은 보일 필요도 없다. 저마다의 의미인데 증명할 건 또 뭔가. 좋아하는 일을 그냥 재미있게 또 어떤 날엔 끈질기게 버텨내게 하는 게 자신을 주연 배우로 삼고 있는 배우이자 감독인 우리가 자신에게 요구할 일이다.


본드가 바텐더에게 늘 하는 말이 있다. 보드카 마티니 흔들지 말고 저어서. 어쩌다 보니 시간이 흘러 보드카를 마시는 게 어색하지 않은 나이가 되었다. 현실은 마티니는 무슨 샤워하고 맥주 한 캔 했다. 어릴 땐 제임스 본드를 좋아하는 이유가 그런 남자를 만나고 싶은 거라 생각했는데, 15년이 지난 지금에야 알겠다. 내가 제임스 본스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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