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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돈도니 Oct 31. 2021

모래가 나오는 신발이 있었다.

일상 감상문


별안간 이유 없이 모래가 나오는 신발이 생각났다. 십 년 만의 일이다.


십 년 전 겨울 방학 때 친구와 이집트로 여행 갔었다. 카이로에서 피라미드도 보고, 향신료가 잔뜩 든 뭔가를 늘 먹고 다녔던 것 같다. 건조하고 안개 같은 모래가 섞인 대기… 기억이 희미하다.


사막 투어차 시와 사막이라는 곳에 갔었다. 시막 투어는 보통 별들을 보려고 가는 거라 그믐에 많이들 간다는데, 어째 나와 친구는 보름에 갔다. 보름이었어도 별들은 잘 보였다. 아무튼 그렇게 모닥불 앞에서 별들을 보고 허름한 숙소에서 눈을 붙였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주위가 환해져 눈을 떴다. 뭘까 해서 사막으로 나가보니 거기엔 그렇게 큰 달이 가까운 곳에 있었다. 누가 감히 달빛에 눈이 떠졌으리라 생각했을까. 사막엔 아주 큰 달과 나뿐이었다.


계획은 한 달짜리 여행이었는데, 시위 때문에 예정보다 빠르게 귀국했다. 한동안은 꿈만 꾸면 나는 이집트 길거리에 있었다. 숙소 근처의 시장, 음식 냄새, 길거리의 먼지들과 자동차 기름 냄새… 짐은 천천히 풀었다. 옷들은 세탁하고 그리고 시차도 점점 적응됐다. 한동안 별 일없이 지냈다. 그러다 개강을 했고 봄이 돼서 가벼운 옷을 찾다 예의 그 사막에서 입던 옷들을 꺼냈다.


청바지에서 모래가 끊임없이 나왔다. 바지에 손을 쓸데마다 손자국이 남았다. 재밌는 건 그때 신고 간 컨버스 운동화. 걸을 때마다 모래가 흘러나와 발가락을 꼼지락거릴 때마다 모래가 느껴졌다. 그 신발은 그렇게 밑창이 다 떨어질 때까지 모래가 나왔다. 왜 갑자기 그 운동화가 생각났을까. 그 운동화 생각은 처음 해본다. 이집트 여행도 아주 오랜만에 생각났다. 역시 그 운동화를 버리지 말았어야 했다.


기억나는 게 또 있다. 카이로에 도착한 첫날 저녁, 숙소 앞에서 주소를 확인하고 있는데 그 아파트에 사는 걸로 보이는 여자애와 눈이 마주쳤다. 그 친구는 한 손에는 캐리어를 다른 한 손에는 주소가 적힌 종이를 든 이방인에 말없이 볼키스를 해줬다. 환영한다는 뜻이었을까?


계절이 바뀌어 옷가지들 정리했다. 살고 있는 원룸도 이번 겨울을 끝으로 떠난다. 붙박이 장에 붙여 놓은 저 사진들은 또 어떻게 떼어낸담. 대단하지 않았던 날들이었다. 그래도 멋진 날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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